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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 운전자에 참변… 50대 가장의 치킨 배달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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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18 15:00:00 수정 : 2020-09-18 13: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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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역주행에 배달원 숨져 ‘국민 공분’
“평생 단 한 번도 열심히 안 사신 적이 없다”
法 “도주 우려”… 사고 차량 운전자, 檢 송치
동승자, 합의금 조건으로 운전자 회유 의혹도
지난 9일 인천 중구 을왕동의 편도 2차로에서 만취한 여성이 몰던 벤츠에 오토바이를 타고 치킨 배달 중이던 50대 가장이 치여 숨진 사고 현장 모습. 영종소방서 제공

‘만취 운전자에 참변… 50대 가장의 치킨 배달은 그렇게 끝났다.’

 

지난 9일 0시55분쯤 인천시 중구 을왕리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만취 상태로 운전대를 잡은 30대 여성이 치킨 배달을 가던 오토바이를 치여 50대 가장 A씨가 숨졌다. 음주운전에 역주행까지 벌여 한 가정이 파탄난 그야말로 충격적인 이번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 혐의로 구속된 사고 차량의 운전자는 검찰에 송치됐으며, 동승자는 음주운전을 방조한 혐의로 입건됐다. A씨의 딸이 이달 1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에는 60만명이 넘게 동의했다. 딸은 “하얀 천으로 돌돌 말려있는데 피가 너무 많았습니다. 얼굴을 들쳐봤는데 진짜 우리 아빠였습니다”라고 눈물로 글을 써 내려갔다.

 

◆치킨집 사장님은 배달도 항상 직접했다

 

대학생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이던 A씨는 중구 을왕동에서 작은 치킨집을 운영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특히나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매출이 크게 줄어 아르바이트를 쓰기도 어려웠다. 차디찬 주검이 되기 전 그는 가족에게 마지막 배달이라고 하며 오토바이의 시동을 켰다. 그날 오후부터 주문이 많아 저녁 식사도 거른 채였다. A씨의 아내는 배달을 나간지 오래됐는데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마중하러 가게 문을 닫았다. 아내는 “순간 119가 지나갔고 2㎞ 근방에서 저희 오토바이가 덩그러니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구급차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병원 영안실에서 시신을 확인하라는 통보였다. 새벽 시간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딸은 ‘미친 사람처럼 울면서 얼굴을 들쳐봤다’고 했다. 그렇게 하염 없이 울고 있는데 경찰서에 출석하라고 했다. 사망 사건 진술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딸은 경찰서에서 한 젊은 여성과 마주치며 또한번의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가해차량 운전자인가요”라고 물었더니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이다. 딸은 ‘평생 단한번도 열심히 안 사신 적이 없다. 이렇게 보내기엔 너무 해드리지 못한 게 많다. 제발 마지막으로 살인자가 법을 악용해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지 않게 부탁한다’고 청원글을 끝냈다. A씨의 이웃들은 그를 “성실하고 가정적이었다. 과속 안하고, 신호도 다 지키면서 그렇게 배달을 다녔다”고 기억했다. 치킨집을 연 이후로 줄곧 손님에게 직접 치킨을 전했던 50대 가장의 배달은 그렇게 끝났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사고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게시판에는 당시 A씨 가게에 치킨을 주문했던 고객의 항의와 딸이 사과하는 내용으로 추정되는 배달앱 캡처 사진이 공개됐다. 고객은 “배달 시간이 한참 지나고 연락 받지도, 오지도 않고, 못 온다는 연락도 없고, 전화는 왜 안 받는지 모르겠다”면서 “300m 거리인데 특수지역의 텃세냐”라고 항의했다.

 

이에 A씨의 딸로 추정되는 인물은 “우선 너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손님 배달을 가다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참변을 당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치킨이 안 와서 속상하셨을 텐데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 내용을 접한 네티즌들은 “너무 슬퍼 읽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글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 고개를 돌렸다”며 애도를 표했다.

 

◆벤츠 운전자와 동승자는 어떤 관계

 

“검은색 벤츠 차량이 중앙선을 넘은 상태로 멈춰 있더라고요. 앞에는 오토바이 잔해들이 있었고, 뒤쪽으로 사람이 엎어져 있었고요. 가해 차량 쪽으로 갔어요. 그런데 아무런 조치 없이 멀쩡하게 차 안에만 있더라고요. 저희가 신고를 하고 구급차가 왔어요. 그제서야 가해자와 동승자가 차에서 내렸어요. 두 발로 멀쩡하게요. 겉으로 보기에도 술에 취한 상태였어요. 계속 횡설수설하면서 오히려 저희한테 ‘누가 중앙선을 침범한 거에요(?)’라면서 되물었어요. 가해 여성은 경찰한테도 횡설수설했어요. 동승자 남성은 변호사한테 연락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변호사님 이러면서요.”

 

사고 목격자이자 최초 신고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현장을 이렇게 전했다. 술에 취한 채 벤츠 승용차를 몰다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은 30대 B씨는 지난 14일 경찰에 구속됐다. 영장심사를 위한 법원 출석에 앞서 경찰서를 나오면서 취재진을 향해 죄송하단 말 한마디 없었다. 재판부는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B씨는 경찰 조사 때에도 두통과 어지럼증을 거듭 호소했고 “숨을 못 쉬겠다”며 두 차례 병원 치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B씨 구속에 더해 경찰은 동승자인 40대 후반의 남성 C씨를 음주운전방조 혐의를 적용해 입건했다. C씨가 회사 법인 소유이던 벤츠 차량이 출발하기 전 리모컨으로 직접 문을 열어주는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윤창호법) 혐의로 입건된 A씨(33·여)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지난 14일 오후 인천 중부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스1

B씨와 C씨는 사고 전날 처음 만나 저녁식사 자리에 동석하게 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알고 지내던 다른 남녀 2명과 함께 을왕리 바닷가 앞 횟집에서 1차 술자리를 가졌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오후 9시에 식당이 문을 닫자 인근 편의점으로 향했다고 한다. 술과 안주를 산 이들은 숙박업소에서 2차를 즐기다 일행과 다툼이 나자 승용차를 끌고 나가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를 낸 것으로 밝혀졌다.

 

C씨는 피해자에게 지급할 합의금을 대신 내주는 조건을 내세워 운전자인 B씨를 회유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B씨가 경찰 조사 때마다 동행한 것으로 전해진 지인이 최근 경찰을 찾아 “동승자 측에서 자꾸 만나자고 한다. 계속 거부하니 (사고 전 함께 술을 마신) 일행여성을 통해 B씨에게 계속 연락을 했다”며 문자 메시지를 제출했다. 일행여성은 문자로 ‘지금 너 합의를 도와줄 수 있는 건 쥐뿔 없는 내가 아니야. 너의 형을 줄이기 위해서… 그 오빠가 도와준다고 할 때 속 타는 내 마음 좀 알고 협조 좀 하자’라고 적어 보냈다. 또 ‘합의금이 얼마가 됐든 너 할 능력 안 되잖아. 네가 (오빠의) 변호사를 만나야 된다’라고도 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대리(운전기사)를 부르자고 했는데 C씨가 ‘네가 술을 덜 마셨으니 운전하라’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입건한 C씨에게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 방조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곧 검찰에 따로 송치할 방침이다. 음주운전 방조죄의 경우 통상 벌금형이 나오지만 윤창호법인 특가법까지 적용되면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있다.

 

인천=강승훈 기자 shk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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