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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잠시 유체이탈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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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04 22:32:06 수정 : 2020-09-04 22: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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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영화 ‘아바타’ 처럼
유체이탈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체험도 결국 돈에 좌우돼
유체이탈 해봐도 별 수 없을 듯

전염병에 취약한 내 몸뚱이를 집에 안전하게 잠재워두고, 감염 우려가 없는 대리 몸속으로 들어가 어디로든 자유롭게 활보해보고 싶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2009년 영화 ‘아바타’처럼 말이다. 영화계 소식란을 보니, 아바타의 후속편이 내후년쯤 개봉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10년 전쯤에 본 공상과학영화 속 장면들이 요즘 들어 하나둘 현실화되는 조짐으로 볼 때, 아바타 속의 유체이탈도 언젠가는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사실 유체이탈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문화 속에 존재해왔던 개념이다. 인간이 육체를 초월하여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열망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천국에 가려면 영혼은 육체를 떠나야 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의 경험도 육체의 번뇌에서 벗어나는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주은 건국대 교수·미술사

유체이탈이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가능해진 것은 19세기이다. 19세기의 유럽은 만국박람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세계 각지로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가 극치에 이르던 때였다. 이 시기에 먼 거리를 이동하게 해 준 것은 자동차나 기차만은 아니었다. 입체경이나 디오라마 같은 시각장치들이 등장하여 간접적으로 멀리 다녀온 것 같은 효과를 주었다.

요즘에는 마치 실제 공간을 거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가상현실 또는 증강현실 프로그램들이 선보이고 있다. 테크놀로지가 우리에게 오백년 전에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배당의 천장화를 구석구석 자기 방에서 감상할 수 있는 놀라운 이동성을 선물해준 셈이다.

가상현실이라는 어려운 용어가 사람들 입에 공공연히 오르내리게 된 때는 1980년대였다. 윌리엄 깁슨은 소설 ‘뉴로맨서 Neuromancer’(1984)에서 몸은 고깃덩이나 다름없으며 사이버공간으로의 여행에서는 불필요한 짐이 될 뿐이라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그 시절에 사람들끼리 접촉을 꺼리고 몸을 사리게 하며 공포의 분위기를 퍼뜨렸던 전염성 질병은 후천성면역결핍증, 에이즈(AIDS)였다. 에이즈로 인해 자기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최고조였을 때 유행한 개념이 가상현실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몸으로부터 도피할 궁리를 했던 것이다.

언젠가는 정말로 몸을 짐처럼 벗었다가 다시 입었다가 하며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날이 와도 과연 내가 꽤 근사한 아바타를 구입할 재력이 될지 걱정스럽다. 돈이 없으면 아바타 없이 달랑 타고난 몸 하나만으로 온갖 질병과 바이러스에 노출된 채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야 할 것이 확실하다. 아바타는 가상현실의 인물이지만 인간 세상의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에 결국 돈의 메커니즘을 탈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돈을 더 내면 더 괜찮은 아바타를 선택할 수 있고, 그 맞춤형 대리 몸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완전히 새롭게 탄생할 수는 있다. 하지만 곧 그 대리 몸이 얼마나 실감 나는 체험 효과를 제공하는지가 상품화되고, 그러다 보면 점점 실제 현실에서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영역이 광범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 비싼 값으로 구입한 몸은 특권을 누리는 위치에 놓일 것이다. 그 자리는 아마도 최첨단 특수기능을 구비한 완벽한 아바타가 차지하지 않을까. 아무 장치도 장착하지 않은 채 내복만 입은 아바타로는 가상세계에서조차 자유로운 외출이 허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바타가 나의 바람을 대신하게 하는 삶은 일시적인 만족을 약속하기는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또 돈의 섭리에 따라 상향 버전의 제품을 구입하도록 몰리게 될 뿐이다. 유체이탈의 상상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만, 유체이탈 해봐도 뭐 별수 없기는 매한가지라는 결론이다. 차라리 전설적인 영국의 록밴드, 퀸의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을 듣기로 하자. 프레디 머큐리는 에이즈로 죽음을 몇 주 앞두고도 자기 생애 최고의 음역대로 그 노래를 열창하지 않았던가.

 

이주은 건국대 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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