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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사라지는 ‘#With you’… 스쿨미투 ‘외로운 싸움’ [미투, 그 이후의 삶]

, 미투, 그 이후의 삶

입력 : 2020-08-03 20:20:04 수정 : 2020-08-04 09: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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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용화여고 학생들 피해 폭로
초기 친구·후배들 지지·공감 큰 힘
복잡한 절차 등에 진술 동참자 줄어
주변서 “아직도 안 끝났냐” 묻기도

미투는 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8년 4월 서울 용화여고에서 학교의 수직적 위계구조 아래서 침묵하고 있던 학생들이 입을 열고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자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스쿨 미투’의 시작이다. 이후 전국 100여곳에서 비슷한 폭로가 이어졌다. 학생들을 돕기 위해 시민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그로부터 2년. 스쿨 미투의 열기가 식어간 시간만큼 대중의 관심도 떠나갔다. 모두의 공분을 샀던 교내 성폭력은 점점 피해 학생들만의 짐으로 남았다. 사람들의 관심이 떠나간 사이 스쿨 미투의 경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용화여고 졸업생으로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스쿨 미투 참여자 두 명을 만나 미투 이후 그들의 삶은 어떠한지 직접 들어봤다.

◆“아직도 안 끝났냐”는 그 말

“미투가 이뤄진 초기만 해도 진술하려는 학생도 많고 피해 기억들도 생생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 교육청, 수사기관 등 여러 곳에서 피해 사실을 반복 진술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복잡한 법적 절차에 피로감을 느낀 친구들이 하나둘 더는 참여하고 싶지 않다며 떠나갔죠. 특히 그해 12월 첫 수사가 불기소 처분으로 끝나며 무력감을 느껴 떠난 학생들이 많았어요. 참여자 대다수가 미성년자나 20대 초반이다 보니 수사나 법적 절차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고요.”

용화여고 스쿨미투를 이끌어낸 졸업생 중 한 명이었던 오예진(25)씨는 미투 직후 대응과정에 아쉬움이 컸다고 회상했다. 만연한 교내 성폭력에 부당함을 느껴 미투를 벌이긴 했지만 이후 과정을 처리하는 건 학생들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형사절차가 시작되고 교육행정과 사법행정에서 별도로 조사가 진행된 탓에 수차례 중복진술을 해야 하는 것도 피해자들에겐 고통이었다.

불기소 처분으로 멈춰섰던 용화여고 스쿨 미투 수사는 지난해 시민단체에서 진정서를 제기하며 비로소 재개됐다. 지난 5월에는 성추행 가해의 주범으로 꼽혀 파면 처분을 받은 용화여고 전 교사가 불구속기소됐다. 첫 재판은 6월에 열렸다. 해당 교사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봤다는 증언이 100여건에 달했음에도 미투 이후 2년2개월 만에야 처음으로 가해자를 법정에 세울 수 있었다. 그나마도 학교 교원징계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은 교사 18명 중 법정에 선 건 단 한 명뿐이었다. 징계를 받은 18명 중 15명은 이미 학교로 돌아갔다.

법적 절차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주변에서는 “아직도 안 끝났냐”고 말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오씨는 “저희는 그나마 많이 알려진 경우인데도 이렇게 관심 없는 반응이 나올 정도니 잘 알려지지 않고 혼자 싸우고 있는 미투 참여자들은 고립무원 상태라고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또 다른 미투 참여자 A씨도 주위의 관심과 지지가 떠나가자 교내 성폭력에 맞서 끝까지 싸우는 일이 힘들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A씨는 “사건이 장기화하며 점점 분위기가 바뀌었다. 면학 분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미투가 학교 이름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워 대입 등에서 불리하게 작용할까 걱정하는 사람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죄책감도 미투 참여자들의 몫이었다. A씨는 “미투 대상이 된 교사 여러 명이 파면되는 등 학교 상황이 급변해 재학생들이 혼란을 겪을까 미안했다. 가해자는 미안해하지 않는데 오히려 피해자들이 학생들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고 말했다.

◆‘투명한 문제 해결’ 약속은 어디로

처음 미투를 시작했을 때 A씨는 학교 창문에 포스트잇으로 ‘#With you(위드 유·당신과 함께)’를 붙이며 지지와 공감을 뜻을 드러내는 후배들을 보며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슬펐다. 그는 “‘저렇게 많이들 공감할 만큼 지금도 학교는 변한 것이 없구나’ 싶어 더욱 미투 이후 처리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되길 바랐다”며 “대물림되는 교내 성폭력 문제를 뿌리 뽑으려면 조사 과정과 징계 결과가 명확히 공개돼 학교 조직이 더 깨끗한 곳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투명한 문제 해결을 약속했지만 정작 스쿨 미투 처리와 관련해 공개되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피해 당사자들조차 가해 교사의 징계 결과를 통지받지 못했다. 피·가해자 분리 여부, 가해 교사 직위해제 여부, 교육청 징계 결과 등이 가해 교사의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비공개처리됐다. 오씨는 “미투 초기에는 장관, 교육감 등 높은 사람들이 우리를 불러 간담회를 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써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일회성 만남에 그치고 이후로 어떤 소식이나 진척도 저희에게 전달되지 않다 보니 그 모든 게 ‘보여주기 식’이었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스쿨미투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에서는 신상 정보가 아니라 가해에 따른 처리 결과를 알려달라는 것뿐이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을 내 승소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교육청 김종미 장학관은 “스쿨미투 가해 교원을 감싸기 위해 항소를 제기한 것은 아니다”라며 “관련 교사와 학생의 개인정보가 알려진다면 2차 피해가 발생하거나 징계 정보가 노출돼 교육 활동 전반이 위축될 소지가 있어 항소를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내 성폭력 근절… 지금 학교는?

지난해 말 정의당 여영국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성 비위로 징계를 받은 교원은 총 686명에 달한다. 미투 이후 2019년 징계 교원 수가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100명에 가까운 교원이 성비위로 징계를 받아 성폭력 근절이 됐다고 말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중고등학교 양성평등 의식 및 성희롱·성폭력 실태연구’ 결과도 미투 이후 교내 성폭력 문제 개선 효과를 학생들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연구에 따르면 4898명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스쿨 미투 이후 학교의 변화에 대해 학생의 65%가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 중고등학생 14만447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스쿨 미투 이후에도 전체의 27.8%가 학교생활 중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투 이후 교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과 관련해 스쿨 미투 참여자들은 가해자가 엄벌받는다는 사실부터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면 성폭력 근절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A씨는 “복잡한 대책보다도 가해자는 엄벌을 받는다는 기본적인 원칙부터 바로 세워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예진씨도 “교내 성폭력은 피해자 연령이 어리고 오랜 기간에 걸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행된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위축되지 않고 피해 사실을 밝힐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청 등 관련 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화여고 스쿨미투 피해자 변호를 맡은 서홍택 변호사는 “교사가 성추행으로 징계를 받는 경우 관할 교육청이 주체가 돼 해당 교사의 징계 사유 및 관련 증거 일체를 첨부해 관할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하는 식으로 사건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안용성·윤지로·정지혜·박지원·배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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