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계타워] 박원순 시장의 죽음 이후

관련이슈 세계타워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0-07-22 22:47:52 수정 : 2020-07-22 22:47:4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고인에 대한 객관적 평가의 책임이 남았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종 신고가 접수되기 불과 사흘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3선 서울시장으로서 ‘소명’을 강조했던 그였다. 박원순 전 시장은 지난 9년의 재임기간을 “소명감을 갖고, 도시 가장자리로 밀려났던 시민들의 삶과 꿈을 회복시키려 했던 시간”이라고 했다.

대권 주자로서의 지지율은 초라했지만 그는 우리 사회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적 약자 편에 섰던 인권 변호사, 한국사회의 구조적·제도적 모순 타파에 나섰던 시민운동가, 사상 첫 3선 서울시장 등 화려한 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예비 출정식 같은 자리에서 막스 베버와 ‘조용한 혁명’을 거론하는 정치인은 그가 처음이었다.

송민섭 사회2부 차장

11년 전 일이 떠올랐다. 식인 멧돼지가 등장하는 영화 ‘차우’ 시사회를 본 후 “재미있네요”라며 공감을 구하는 내게 선배 기자는 “참 이기적인 감독”이라고 쏘아붙였다. 러닝타임 내내 키득거리게 만들지 않았느냐고 되묻자 선배는 “영화에 딸린 식구가 몇 명인데”라며 혀를 찼다. 이어 “블록버스터급 제작비(87억원)를 들였으면서 손익분기점(300만명)도 넘기기 힘든 ‘B급 코미디’를 만든 것 같다”고 혹평했다.

박 전 시장이 끝내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접한 뒤 이처럼 여러 생각과 감정이 들고 나갔다. 서울시장은 시 공무원 4만5000명가량을 이끌며 시민 1000만명의 삶을 보살펴야 하는 책임이 막중한 자리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은 “내 삶에서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며 “모두 안녕”이라는 말과 함께 그 자리도 삶도 단번에 내려놓았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무책임한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극단적 선택의 계기가 성추행 피해자의 고소와 무관치 않은 정황이 잇따르는 것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는 과거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 당시 여성 피해자를 변호하고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젠더특별보좌관을 두는 등 누구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뛰어났고 양성평등 사회를 위해 힘쓴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성추행 가해자였다니 화가 난다. 죽음도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실망감이 크다.

박 전 시장이 떠난 후 세상은 살풍경이다. 진영이나 지지 여부에 따라 애도 분위기와 공과에 대한 평가가 확연히 갈린다.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통칭했던 집권여당의 한 국회의원이 “죽음으로 미투(#MeToo) 처리 전범(典範)을 실천했다”고 하는 등 2차 가해도 난무했다.

스위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부정과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박 전 시장의 죽음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분노와 우울에 휩싸여 고인 혹은 상대 진영에 악다구니를 퍼붓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피해자를 보호하면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을 둘러싼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는 게 중요하다. 고인 외에도 책임져야 할 인사들에겐 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박 전 시장에 대한 객관적 탐구와 평가가 가능해지고, ‘박원순 사건’이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을 딛고 정의를 바라는 사람들은 살아남아서 다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야 하지 않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렸던 박 전 시장의 추도사가 새롭게 들린다.

 

송민섭 사회2부 차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