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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세계속으로] ‘화이트 가운’의 세계적 유목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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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18 22:26:53 수정 : 2020-05-18 22: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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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간호사 국제 이주 속 ‘불편한 진실’ / 우수한 의료 인력 잘 지켜낼 수 있어야

이번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화이트 가운을 입은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에게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건강한 일상에서 의사의 중요성을 잊고 지내다 사고나 질병이 닥치면 그 소중함을 깨닫듯이, 평상시 그늘에서 묵묵히 일하던 의료진이 코로나 사태로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이다. 유럽에서는 하루 한 번씩 의료진에 감사를 표하는 시간을 갖고 있으며, 한국도 ‘엄지 척’ 손동작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어두운 현실에 조명을 비추면 숨었던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2020년 세계는 바이러스만 신속하게 확산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상품이 광범위하게 국경을 넘나드는 세상이다. 이에 더해 의사나 간호사 같은 전문 인력의 국제 이주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중이다. 화이트 가운의 이동은 세상의 다양한 불평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프랑스 르몽드지 보도에 따르면 세계 부자 나라의 집단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의사의 4분의 1이 외국 출신이다. 아직 소수이긴 하지만 환자와의 소통이 결정적인 의료 서비스 부문에서 이 정도의 수치도 놀라운 수준이다. 게다가 이주의 방향은 대개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향한다. 인도의 경우 무려 10만명에 가까운 의사가 이미 외국으로 떠났다. 아프리카의 세네갈이나 카메룬의 경우 전체 의사 3분의 1 이상이 외국으로 이주해 버렸다. 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기껏 의사를 양성하더라도 결국 선진국으로 가버리니 남 좋은 일만 시키는 형국이다.

선진국이라고 안심할 수만은 없다. 의사와 간호사 등 고급인력은 소득은 물론, 일하는 환경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의사의 수출입이 모두 활발한 특이한 나라다. 영국이 키워낸 의사들은 소득도 환경도 뛰어난 미국으로 대거 이주하는 한편, 인도와 파키스탄 등지의 의사들이 영국으로 이동해 오기 때문이다. 영국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이처럼 자국 의사는 수출하고 외국 의사를 수입하고 있다.

높은 소득과 훌륭한 환경을 제공하는 미국은 세계 의료진을 수입만 하는 블랙홀이다. 미국 출신 의사 가운데 외국에서 활동하는 경우는 1%로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는 의사의 30%에 달하는 29만명은 외국 출신이다. 국민의료시스템조차 없고 의료비가 높은 미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의사들에게는 천국인 셈이다.

이런 화이트 가운의 유목 시대에 일부 국가는 의료 인력 교육의 허브로 부상하는 중이다. 유럽의 경우 아일랜드, 폴란드, 루마니아 등이 외국 학생을 받아 의사로 키우는 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특히 루마니아는 영어와 프랑스어로 의학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유럽연합 내부에서는 의사자격증을 상호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다. 아시아의 필리핀은 간호사 교육으로 특화하여 2016년 현재 23만 명 이상이 해외로 진출해 일하고 있다.

대입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은 인재들이 의료 분야로 몰린다. 또 이번 코로나 위기에서 보았듯 한국은 평등한 국민 의료 시스템과 양질 의료진의 균형을 잘 갖춘 드문 나라 가운데 하나다. 다만 화이트 가운의 세계적 유목 시대에 과연 한국의 훌륭한 의사와 간호사들을 앞으로도 계속 지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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