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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죽어서 나오겠죠”…죽음의 블랙홀 테트라포트 낚시 [김기자의 현장+]

입력 : 2020-05-17 09:00:00 수정 : 2020-05-17 13: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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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하는 순간 사라지는 죽음의 테트라포트 낚시’ /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추락…빠지면 스스로 나오기 힘든 구조 / 구명조끼 등 안전 장구 착용하는 습관이 중요 / 테트라포드 표면 이끼나 해초로 형성 ‘미끄럽고 잡을 곳도 없어’…들어가지 말아야
지난달 5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한 방파제에서 거친 파도에도 불구하고 낚시꾼들이 테트라포트(TTP)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다.

 

“들어가지 말라고 해도 들어갑니다. 뭐~어떡합니까? 언젠가 죽어서 나오겠죠.”

 

낚시 전성시대다. 참여형 낚시 예능 프로그램 인기와 주 52시간 근무제 영향으로 낚시 인구가 매년 크게 늘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국내 낚시 인구는 2010년 652만 명, 2015년 677만 명, 2016년 767만 명, 2018년 800만 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동안 가족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금요일 저녁이면 낚시를 손질하던 아버지 모습에서 이제는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바뀌고 있다.

 

날씨가 풀리면서 낚시꾼들은 명당을 찾아 바다로 모여들고 있다. 일부 낚시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테트라포트‘에서 낚시를 즐기기도 한다.

 

지난달 5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한 방파제에서 거친 파도에도 불구하고 낚시꾼들이 테트라포트(TTP)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다.

 

‘테트라포트’는 바다 방파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4개 뿔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이 구조물은 파랑(波浪:바람에 의해 생긴 수면상의 풍랑과 풍랑이 다른 해역까지 진행하면서 감쇠해 생긴 너울)으로부터 방파제 구조물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했다. 일부 낚시꾼들은 무단으로 드나들면서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간 큰 낚시꾼

 

지난 9일 오후 찾은 강원도 동해 한 방파제. 방파제 주변으로 사람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었고, 한 낚시꾼들은 텐트에서 준비 해 온 라면과 음식물을 나눠 먹고 있었다. 대부분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다. 이들은 미끄러운 테트라포드 분주히 뛰어다니며 명당자리를 찾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위험했다. 말리는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 다른 낚시꾼은 왼손은 낚싯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밑밥을 던지고 있었다.

 

지난 9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한 방파제. 낚시꾼들이 먹고 버린 음식물 포장용기를 비롯해 낚시줄 같은 각종 낚시용품이 버려진 채 방치돼 있다.

 

방파제 주변에는 술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낚시꾼 일행이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준비 해 온 고기를 숯불에 굽고 있었다. 이들은 술과 음식물을 먹으면서 좁은 방파제 주변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한 낚시꾼은 “보기보다 위험하지 않아요”라며 “손맛에 빠지면 또 올 수밖에 없어요”라며 웃으면서 답하기도 했다.

 

방파제 주변에는 버려진 낚시용품 및 숯불용 도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생활 쓰레기도 눈에 띄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아닙니라’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 아래에는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한 막대한 양의 쓰레기가 주차장 한편에 쌓였고, 오랫동안 방치된 듯 했다. 낚시 명소로 알려지면서 지역 일대는 무단으로 투기된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 테트라포트…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추락

 

테트라포트는 파도나 해일을 막기 위해 설치됐다. 1개의 높이는 대략 대·중·소로 나눠 1∼5m 정도 된다. 네 개의 원통형 기둥이 중심에서 밖으로 돌출된 형태다. 낚시꾼들이 테트라포드를 즐겨 찾는 이유는 각종 갑각류, 새우, 해조류가 있어 감성돔의 주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상위 포식자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는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5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한 방파제. 거친 파도에도 불구하고 한 낚시꾼이 테트라포트(TTP) 를 밟고 아슬아슬하게 이동하고 있다.

 

낚시에 빠진 낚시꾼들이 늦은 밤까지 아무런 제재 없이 쉽게 출입하는 것을 불 수 있다. 일부는 음주까지 일삼아 사고를 유발한다. 낚시 명당으로 알려진 곳마다 낚시꾼들이 몰려 실족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테트라포드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얼기설기 엮여 있어 추락할 경우 스스로 빠져나오기 어렵다. 또한 표면에는 이끼나 해초로 미끄럽고 잡을 곳도 없어 매우 위험하다. 테트라포트에서 낚시도구를 옮길 경우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표면이 편평하지 않을뿐더러 파도와 부딪히며 형성된 얇은 해초 막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럽다. 눈으로 보는 것과 달라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추락하기 쉽다.

 

안전장구를 착용한 채 낚시를 즐기는 이모(65)씨 “초보자들이나 인근 주민들이 쉽게 생각해서 낚시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안전장구를 착용해도 위험한 게 바다낚시다”며 “무엇보다 욕심을 버리고, 구명조끼 등 안전 장구 착용하는 습관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5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한 방파제. 거친 파도에도 불구하고 한 낚시꾼이 테트라포트(TTP) 밟고 아슬아슬하게 이동하고 있다.

 

위험한 구조물이지만 테트라포드 출입을 규제할 방법은 딱히 없는 실정. 출입 및 낚시금지 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라면 경범죄처벌법상 무단침입 혐의를 적용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게 거의 유일한 단속 규정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통상 1차 계도를 거치고 재발 시 과태료 처분을 내리는데 민원 등의 이유로 실행하기가 쉽지가 않다. 출입을 통제할 뚜렷한 근거가 없으니 사고지점에는 추락 위험을 알리는 경고문 외에 다른 시설은 없는 실정이다.

 

목숨 건 짜릿한 손맛

 

낚시꾼들은 짜릿한 손맛을 즐기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테트라포드’에서 낚시를 즐긴다. ‘난 괜찮겠지?’ 라는 안일한 안전의식 탓에 테트라포트 인명사고가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테트라포드는 한번 빠지면 나오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구조요원의 접근이 쉽지 않다.

 

지난달 5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한 방파제. 거친 파도에도 불구하고 낚시꾼들이 테트라포트(TTP)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다.

 

테트라포드가 개당 1~5m가 된다. 4~5개를 겹겹이 쌓아 올리면 건물 5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다는 게 해경의 설명 했다. 원기둥 형태로 콘크리트로 제조된 것 ‘발’과 닿는 부분이 평면이 아니어서 이동 중에 실족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2016년의 경우 해안가 주변 사망자는 145명에 이른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3년간 발생한 연안 사고는 2874건이며 사망자는 391명으로 연평균 130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연안사고는 2013년 1013건(133명 사망) 발생했지만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여파로 747건(113명 사망)으로 줄었다. 그러나 2015는 1114건(145명)으로 다시 늘었다.

 

지난 9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한 방파제. '공사안내 접근금지' 안내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낚시꾼들은 방파제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다.

 

올해도 연안 사고가 잇따랐다. 지난 4일 오전 11시 24분쯤 부산 서구 남항대교 아래 테트라포트 사이 해상에 50대 A씨가 추락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과 119구조대는 수색을 벌인 끝에 테트라포드 사이 해상에 떨어진 A씨를 구조한 이후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다. 구조 당시 A씨는 의식불명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해경은 A씨가 낚시를 하기 위해 테트라포드 위에 올라갔다가 실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20일 오후 1시 7분쯤 강원 고성군 거진항 방파제에서 이모씨(60대·강릉)가 숨진 채 발견됐다. 속초해양경찰서는 이씨를 발견한 지역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테트라포트 사이에서 이씨를 인양했다.

 

해양경찰에 따르면 2019년 방파제 사고는 85건 발생, 총 17명 사망했다. 2020년 3월 말 기준 전국 방파제 사고는 12건, 사망 3명 발생했다.

 

해경 한 관계자는 “방파제의 테트라포드는 미끄러워 추락사고의 위험성이 높고, 특히 음주시나 야간에는 더욱 위험하다”며 “최근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테트라포드에 들어가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아 추락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9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한 방파제. '위헙! 접근금지' 안내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낚시꾼들은 방파제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다.

 

그러면서 해경은 “해양경찰은 인명사고가 자주 발생하거나 발생우려가 높은 테트라포드를 포함한 방파제를 출입통제장소로 지정하여 출입을 금지하고 무단 출입자에 대해서는 단속하고 있다”며 “위험성이 높은 방파제에 출입자에 대해서는 수시 순찰을 통해 계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경은 사고 위험이 높은 테트라포드와 갯바위에 들어갈 때는 미끄러지지 않는 운동화를 신고 정품 구명조끼를 반듯이 착용하고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족해 바다에 빠졌다 하더라도 구명조끼는 상당 시간 바다에서 버틸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한 방파제. 낚시꾼들이 버린 각종 낚시용품이 콘트리트 사이에 버려진 채 방치돼 있다.

 

이어 해경은 “국민께서는 출입 통제하거나 위험한 방파제 출입을 삼가해 주시고, 바위나 항포구에서 낚시할 경우 구명조끼를 반드시 착용하는 등 스스로 안전을 지켜주실 것”을 당부했다.

 

글·사진(양양)=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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