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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시드니에 부는 문학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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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2-21 23:40:08 수정 : 2020-02-21 23: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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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교민 상대 4년째 문학 특강 / 2주 10회 강의… 출석률 90% 넘어 / 교민들 어려운 환경 속 열정 대단 / 고국 추억 말할 때 제일 신나해

호주 시드니에 있는 맥쿼리 대학의 몰링 칼리지에 모인 한인 교민들의 수는 38명, 모두 단국대 박덕규 교수와 나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박 교수가 수필과 소설 창작을, 내가 시 창작을 2주 동안 10회에 걸쳐 강의하는 동안 출석률 90프로 이상, 오후 4시 반부터 9시까지의 강의라 가게를 닫고 오는 경우가 있었고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오는 일을 남편 대신 해야만 해서 못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매일 35명의 수강생들은 강의를 듣는 태도가 너무나 진지했고 글을 쓰려는 목표가 확고했다.

이승하 중앙대 교수·시인

외교통상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이민자의 수가 750만을 넘어섰다. 세계 곳곳, 한국인이 가 있지 않은 곳이 없다. 호주도 베트남전쟁 종전 이후 백호주의를 철회하면서 보트피플 난민을 받아들인 이후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 투자이민을 허용하였다. 우리 교민은 시드니를 중심으로 15만명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문학동인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이는 150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들 중 고국의 문단에 등단한 이는 소수이고 습작을 해도 작품의 수준을 가늠할 수 없었다. 동인별로 행해지는 월례회 합평 때마다 작품을 들고 나가 의견을 나눠보지만 작품의 질적 향상은 쉬운 게 아니었다.

글을 쓰고 싶기는 한데, 가시적인 발전이 이뤄지지 않자 문학동인 캥거루·동그라미문학회·글무늬 문학사랑회 등 동인단체가 후원회를 구성해 고국의 문인을 초청하기에 이르렀고, 박 교수와 나는 4년째 설을 전후해 시드니에 가 있게 되었다. 그간 고국 문단의 유명 문인이 와서 특강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작품을 보여 첨삭지도를 받은 경우는 없어서 그들의 갈증은 대단했다.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유명해지고 싶은 세속적 욕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떤 경로로 이민 대열에 서게 되었든지 간에 그들의 삶은 고달팠다. 태어나면서부터 영어를 한 이민 2세대가 아닌 1세대는 유학 가서 정착하게 되었다면 20대에, 사업을 하다 가게 되었다면 3040대에 이민을 가게 된다. 일단 언어에 장벽을 느끼면서 살아가게 된다. 한국어로 말하는 시간보다 영어로 말하는 시간이 확연히 늘어난 사회에서 직업을 갖고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말이 아닌 글로라도 우리말을 구사하고 싶은 것이다. 고국에서의 나날이 그립고 부모형제가 그립고 친구가 그립고…. 마음속이 온통 그리움으로 충만해져 그들은 펜을 들었다. 시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한 글을 쓰면서 그들은 시름을 달랬고 울음을 삼켰다.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허파 간 심장/ 우는 모습 들킬까봐/ 더 힘차게 휘젓고 있는 엄마// 국밥 테두리에 서린 노동자의 입김/ 연탄불에 그을린 그녀의 호흡.”(‘엄마의 새벽길’에서) 새벽에 일어나 국밥을 만들어 팔던 어머니의 모습을 회상한 시다. “북녘에 탯줄 묻혀 있건만/ 남녘에 운명을 걸고 살아온 생// 이제는 이역만리 새 나라에 정들어 가며/ 이곳이 마지막 고향이라 깃발을 높이 들고/ 가을걷이 한창인 당산나무.”(‘당산나무’에서) 분단의 비극을 겪은 한 사람의 인생이 당산나무에 빗대어 노래되고 있다.

그들의 시에는 호주의 산불이 종종 나왔고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걱정도 내비쳤다. 고국에서의 추억담을 털어놓을 때 제일 신이 났다. 그들은 그 추억의 힘으로 호주 사회에서 나름대로 성공했다. 퓨전일식집 체인점을 10개나 거느린 이도 있고 어느 분의 만두집은 줄을 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 변호사업, 부동산중개업, 건축업, 청과물 공급 등 그들은 억척같이 일하며 영어권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어릴 때 떠나온 1.5세대와 호주에서 태어난 2세대는 호주 사회에 잘 적응해 좋은 대학에 가거나 좋은 직장을 잡았다. 이민 1세대는 자리를 잡기까지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했다.

호주의 이민문학은 이제 태동기다. 하지만 김동호(돈오 김) 같은 호주 주류문단의 인정을 받는 작가도 배출했고 이효정과 윤필립 같은 이가 많은 후학을 길러내어 이제는 자립의 경지에 이르렀다. 호주의 교민문학이 일본, 미주, 중국, 중앙아시아 등에서 산출된 이민문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승하 중앙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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