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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과학의 만남… 바야흐로 ‘아트사이’ 시대

입력 : 2020-02-22 03:00:00 수정 : 2020-02-21 20: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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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 차용한 예술, 한계 넘어서 / 예술 영감받은 과학, AI로 그림·작곡 / 50여년간 서로 영향 주고받으며 발전 / ‘미디어 아트’ 통해 예술가·과학자 융합 / 저자 “예술 정의·미학 개념 모두 변화 / 예술·과학 융합 ‘제3의 문화’ 나올 것”
아서 I 밀러/구계원/문학동네/2만2000원

충돌하는 세계/아서 I 밀러/구계원/문학동네/2만2000원

 

“과학과 예술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1966년 10월 13일 미국 뉴욕 맨해튼 렉싱턴가 주방위군 본부 건물에서 ‘아홉 개의 밤: 연극과 공학’ 행사가 열렸다. 당시 행사에는 선글라스를 쓰고 가죽 재킷을 착용한 앤디 워홀, 현대예술운동을 촉발한 마르셀 뒤샹, 행사가 성사되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로버트 라우션버그, 음악에 우연적 요소를 도입한 ‘4분 33초’를 작곡한 존 케이지, ‘비트제너레이션’을 대표하는 시인 앨런 긴즈버그 등 10명의 예술가와 30명의 공학자가 참석했다.

대중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개막일부터 1727장의 티켓이 매진됐고, 입장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사람도 1500여명에 달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행사를 예술가가 주도한 게 아니란 점이다. 미국전신전화회사(AT&T) 벨 연구소에서 일하던 물리학자 빌리 클뤼버였다. 그는 공학자들을 불러모아 예술가들이 그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해낼 수 있도록 독려했다.

행사는 운영 면에선 지독한 악평을 받았다. 하지만 행사 이후 ‘과학’이라는 도구로 무장한 예술가들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행사를 망친 것은 아니었다.

지난 50여년 동안 예술과 과학, 기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 결과로 탄생한 예술작품들은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충격적이며, 때로는 파괴적이고, 때로는 완전히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언제나 흥미롭고 참신하며 한계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 대중을 즐겁게 했다.

예술과 과학의 만남은 두 영역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예술은 점점 더 발전하는 과학 기술을 차용해 새로운 것들을 펼쳐 보이기 시작했고, 예술에 영감을 받은 과학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며 작곡을 했다.

저자는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된 이미지를 단번에 깨버린다. 오늘날의 아티스트들은 예술가인 동시에 과학자이기도 하고, 이론 연구자이기도 하고, 기술자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작품 또한 단순히 예술, 또는 과학으로 나눌 수 없다고 했다. 저자에 따르면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그린 그림과 작곡한 음악, 유전자를 조작해 형광으로 빛나는 살아 있는 토끼, 앉으면 온몸으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의자 등 예술과 과학이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과학이나 기술의 영향을 받은 예술 형태를 ‘아트사이(art+sci)’라고 정의했다.

아서 I 밀러는 “예술과 과학, 기술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며 “앞으로는 서로 융합돼 제3의 문화가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MIT 미디어 랩의 ‘미디에이티드 매터’의 수장인 네리 옥스먼의 ‘야수’ 작품. 그는 생물학과 컴퓨터공학, 디자인과 건축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작품을 만들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아트사이는 미디어를 만나 더욱 다양해졌다. 1980년 11월 뉴욕 링컨센터를 지나던 행인들은 건물 벽에 걸린 거대한 화면에 호기심을 느꼈다. 화면에는 실물보다 큰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 비치고 있었으며, 화면 속 사람들은 화면 바깥 행인들을 바라보거나 심지어 이야기도 했다. 한 명이 손을 흔들거나, 점프하거나 화면에 가까이 다가가면 화면 속 사람들은 그에 반응했다. 누군가 그들에게 어디에 있냐고 물었고, 화면 속 사람들은 ‘로스앤젤레스’라고 답했다.

해당 작품은 키트 갤러웨이와 셰리 라비노비츠라는 두 예술가가 제작한 미디어 아트다. ‘공간의 구멍’이란 이름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개의 공간을 고속 위성 링크를 통해 연결했다. 예술(컴퓨터 아트)이 미디어의 시대에 진입한 것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저자는 미디어 아트에서 예술가와 과학자는 하나로 융합된다고 했다. 미디어 아티스트는 복잡한 수학을 활용해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예술가들은 필연적으로 기술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전통적인 순수예술을 하는 예술가들에 비해 과학자들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순수예술 영역은 점점 더 입지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저자는 주장했다. 심지어 예술가, 공학자, 과학자라는 수식어의 의미가 점차 퇴색돼 ‘연구자’라는 명칭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저자는 뉴미디어 아트 작가이자 기획자, 이론가이기도 한 페터 바이벨의 “오늘날의 예술은 과학과 기술의 후손”이라는 말을 인용해 예술과 과학, 기술의 관계를 강조했다.

저자는 “예술의 정의 자체가 변할 것이고, 미학의 개념도 변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예술, 과학, 기술은 사라지고 서로 융합돼 제3의 문화가 탄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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