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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굴레’에 빠진 황혼… “삶 지탱해줄 일자리 확충 시급” [연중기획 - 인구절벽 뛰어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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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2-23 14:00:00 수정 : 2020-08-05 15: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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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대화상대도 無… 고립되는 노인들 / 우리나라 노인 소득 빈곤율 OECD 1위 / 기초·국민연금 합쳐도 월 최대 65만원 / “친구들 떠나고 홀로 지내는 날 많아” / 아프면 수입 줄고 병원비 대기도 벅차 / 노인자살률 OECD 1위… 평균의 4~7배 / “기초연금 강화하고 수급 기준 낮춰야”

“여기 계신 분들 절반이 6070 노인이에요. 그 이상 연령대인 분들까지 합하면 더 많죠.”

 

서울에 눈이 내린 지난 5일, 영등포 쪽방촌 골목길 사이를 걸으며 김형옥 영등포 쪽방상담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1평(3.3㎡) 남짓한 조그만 방이 틈도 없이 늘어선 쪽방촌에 거주 중인 주민 500명 중 절반은 노인이다. 무료 의료시설인 요셉의원 앞에 늘어선 줄에도 대부분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서있었다.

 

김 소장은 “경제적 여유가 없는 이곳 어르신들은 건강을 챙기질 못한다. 손바닥만 한 쪽방에는 휴대용 버너, 전기밥솥, 선풍기, 간이 옷장 정도만 들어가도 절반이 찬다. 제대로 된 조리 시설을 갖추는 건 꿈 같은 얘기”라며 “어르신들께 건강한 음식을 해 드시라고 말하면서도 해먹을 상황이 못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속으로는 내심 뜨끔하다”고 말했다.

◆노인이 가난한 나라

 

인구절벽 현상에 따른 초고령화로 한국 사회의 기대 여명(Life Expectancy·어느 연령에 도달한 사람이 그 이후 몇 년 동안이나 생존할 수 있는가를 계산한 평균 생존연수)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인의 기대여명은 82.7세로 1970년 평균인 62.3세에서 20.4세 길어졌다.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970년 70.1세에서 2016년 80.1세로 한국의 절반 수준인 10.5세 늘었다. 기대여명의 연장은 급격한 고령화를 의미한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데 반해 그들을 부양할 사회 시스템이 부실한 것은 높은 노인 빈곤율로 이어진다. 2016년 한국의 노인 소득 빈곤율(중위소득 50% 미만의 소득으로 생계유지)은 43.8%로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76세 이상 초고령층 노인의 소득빈곤율은 55.9%에 달해 연령이 높아질수록 더 빈곤해지는 현상을 보였다. 2018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의 50% 미만 소득을 가진 계층이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2006년 43.6%에서 2017년 45.7%로 증가했다.

빈곤율이 높다 보니 먹고살기 위해선 더 늦은 나이까지 일할 수밖에 없다. 2018년 OECD국가 중 65세 이상 노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한국이 1, 2위를 차지했다. 65~69세 노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47.6%로 OECD 평균인 27.4%를 훌쩍 넘어서 36개 국가 중 2위를 차지했다. 70~74세에선 격차가 더 벌어져 동일 연령대 OECD 평균인 16.2%를 두 배도 넘게 상회하는 35.3%를 기록했다.

 

빈곤과 함께 노인들의 삶을 괴롭히는 또 다른 주된 요인은 사회적 고립이다. 한국 사회 연령 집단 중 사회적 고립도가 가장 높은 집단은 65세 이상 노인이다.

 

경북 상주시에서 혼자 사는 최옥진(70·가명) 할머니는 “자식들은 다 결혼해 타지로 나갔고 친구들도 줄어 해가 갈수록 외로워진다”며 고립감을 호소했다. 최 할머니는 “가끔 마을 노인회관에 가는데 그게 아니면 사람 만날 일이 별로 없다”며 “어떤 날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온종일 벽에 붙여놓은 사진들만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2019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갑자기 큰돈을 빌려야 할 때, 몸이 아파 집안일을 부탁할 때, 이야기 상대가 필요할 때 세 질문 모두에서 65세 이상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 수준은 타 연령층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특히 갑자기 돈을 빌려야 할 때 도움을 구할 곳이 없다는 답변은 66.6%에 달했다.

 

◆구멍 난 사회안전망

 

가난한 노인은 늘어나는데 사회안전망의 발전 속도는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현행 기초연금의 경우 소득 하위 70%의 노인에게 월 25만원을 주고 그중 하위 40%는 30만원까지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전체 노인의 32~35% 정도가 수령하는 국민연금은 평균적으로 월 35만원쯤 지급된다. 두 공공연금을 최대치로 받아본들 월 65만원인 셈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노인의 월평균 가구소비지출액은 162만2000원에 달하는데 공공연금만으로는 지출액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공공연금만으로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소득을 늘릴 일자리조차 충분치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노인 일자리는 2017년 49만6000명에서 지난해 68만4000명으로 18만8000명이 증가했다. 그러나 늘어난 일자리의 76.6%는 월 최대 보수가 27만원에 그치는 공익형 일자리였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 중인 노인은 전체 노인의 32% 정도로 지표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일하고 싶어 하는 노인들이 60~80%에 달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일자리 공급이 수요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셈이다.

 

빈곤한 노인의 증가는 노인자살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의 노인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월등한 1위다. 2016년 기준 한국의 연령계층별 노인자살률은 OECD 평균의 약 4배(65~69세)에서 7배(80~84세)에 달한다. 노인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65~69세는 37.1명, 70~74세는 54.9명, 75~79세는 72.5명, 80~84세는 81.5명, 85세 이상 초고령층은 87.1명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 노인이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노인 27.7%가 경제적 어려움을 자살 고려의 이유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인구절벽 가속화를 멈출 수 없다면 늘어나는 노인 인구의 삶을 지탱해줄 공공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일자리 확충이 빈곤과 사회적 고립감 모두에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노인 일자리와 관련된 일을 하는 기관이나 업체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모두 일을 하면 어르신들의 건강상태가 좋아진다고 말한다. 특히 우울증 등 정신 건강 개선 효과가 크다”며 “소득도 올리고 사회적 관계도 개선할 일자리 확충에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초연금의 강화와 더불어 지원 기준을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구 교수는 "우리나라 기초보장제 수급 자격 기준은 부양의무자, 재산 등 엄격한 편인데 캐나다의 경우 복잡한 기준을 없애고 소득이 낮고 생활수준이 떨어진다면 쉽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며 "한국도 보다 적극적이고 관대한 지원을 펼쳐 노인 빈곤율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美·英, 시설 아닌 집에서 ‘맞춤형 케어’

 

해외에서는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노인 돌봄 모델인 ‘커뮤니티 케어’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노인이 원래 거주 중이던 지역사회 내부의 인적 자원을 활용해 의료 서비스는 물론 친밀한 소통과 교류를 지원하는 것이 커뮤니티 케어의 특징이다.

 

18일 노인복지학회에 따르면 미국의 ‘빌리지 무브먼트(Village Movement·마을 운동)’는 커뮤니티 케어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빌리지 무브먼트는 1995년 보스턴에서 처음 시작돼 2018년 기준 미국 전역에 200곳으로 확장됐다. 노인 돌봄의 단위가 되는 ‘빌리지’란 자원봉사자와 유급 직원이 함께 운영하는 비영리 조직으로 이동 서비스, 건강 보건 프로그램, 사교활동, 교육 등을 제공한다. 빌리지 무브먼트의 핵심은 돌봄을 받는 노인이 시설로 입소하는 것이 아니라 살던 곳에 머물며 맞춤형 생활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지역사회 기반 돌봄 공동체인 ‘커뮤니티 서클’(지역사회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커뮤니티 서클은 지역사회 인적자원을 중심으로 공공영역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일상생활과 여가활동 등을 지원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네덜란드에서 2007년 돌봄서비스 제공 비정부기구(NGO)로 출발한 ‘부조(BUURTZORG)’ 역시 커뮤니티 케어 모델에 해당한다. 부조 서비스는 12명의 간호사로 한 팀을 구성해 팀당 5000명에서 1만명 규모의 지역사회를 담당해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간호사들은 의료서비스 제공만큼이나 환자를 향한 정서적 지지와 소통 등 비공식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노인 지원 업무를 중시하게 된다.

 

양혜란 타임뱅크코리아 사무국장은 “돌봄시설에서 지내는 것보다 집에서 지내며 커뮤니티 케어를 받는 것이 재정적으로 더 효과적”이라며 “노인 돌봄 효율성 제고를 위해 커뮤니티 케어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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