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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한승원 작품따라가는 장흥 문학기행 [여행]

입력 : 2020-02-23 07:00:00 수정 : 2020-02-22 23: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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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아제 바라아제·천년학···문학의 향기에 젖다 /여다지 해변의 산책길 한승원 시비 곳곳에 / 소박한 한옥 이청준 생가 작가와 어머니 애틋한 사연 / 작품 세계 따라가는 문학길 쪽빛바다·들녘 파노라마 / 장흥삼합·굴구이···싱싱한 먹거리 가득 문학기행도 식후경
장흥 한승원 산책길 저녁 노을 시비

전남 장흥 여다지해변이 노을로 물든다. 반짝이는 바다 위를 점차 짙게 물들이는 낙조는 낭만이다. 하지만 시인에게는 깊은 슬픔이었나보다. “너,/ 가버린 사랑 때문에 오늘/ 하루 내내 슬픔과/ 울분 못 견디고/ 혀와 입술 깨물어 뜯어/ 머금었던 피/ 한꺼번에 뿜어/ 뿜어 놓았구나.” 붉은 노을이 자신이 쏟아낸 이별의 고통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한국 현대문학의 대가 한승원의 필체가 그대로 담긴 시비 ‘저녁 노을’이 서 있는 해변 산책로는 여행자에게 풍부한 낭만으로 느껴질 뿐이다.

 

장흥 한승원 산책길 노을
장흥 한승원 산책길 

#이청준·한승원 자취 따라가는 문학기행

 

가사문학의 발원지 장흥은 숱한 문인들을 배출했다. ‘포구의 달’ ‘아제아제 바라아제’ ‘불의 딸’ ‘추사’ ‘해산 가는 길’ 등을 집필한 한승원이 대표 작가다. 그는 현재 여다지 해변과 저 멀리 득량도가 내려다보이는 장흥군 안양면 율산마을 ‘해산토굴’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평소 “앞엔 바다, 뒤에는 산을 둔 언덕에 토굴을 지어 살고 싶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이제 그 소망을 이룬셈이다. 여다지 해변은 바다를 열고 닫는 곳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단다.

 

장흥 한승원 산책길 여다지해변 노을
장흥 한승원 산책길 

한승원산책길를 따라 걷는다. 물이 빠진 바다는 저 멀리 섬까지 물러나며 광활한 해변을 그려놓았다. 해초가 피어난 속살을 드러낸 바다. 갯돌 사이사이 수북하게 쌓인 조개 껍데기가 발밑에 부서지며 “아그작 아그작” 소리를 낸다. 뭐가 그리 바쁜지 시간에 쫓기는 일상을 사는 도시인에게는 생명이 숨 쉬는 바다를 걷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다. 산책길에는 한승원 작품을 담은 시비 30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사람의 원초적인 생명력과 토속적인 삶, 그리고 한(恨)의 공간으로서 자연을 그려낸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한승원 작가의 딸은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이다.

 

장흥 천년학 세트장

장흥을 대표하는 또 한 명의 작가는 이청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와 ‘천년학’의 원작소설 ‘서편제’와 ‘선학동 나그네’를 집필했다. 장흥 회진리 선학동유채마을 인근에는 천년학 세트장이 그대로 있다. 이청준이 ‘선학동 나그네’에서 관음봉으로 표현한 곳은 인근 공지산. 바다에 비치는 산은 마치 한 마리 학의 몸통처럼, 주변에 점점이 박힌 선들이 학의 날개처럼 보였다고 한다. 인근 진목리 이청준 생가로 향한다. 세 칸짜리 직선형 한옥은 소박하고 마당은 자연의 흙 그대로다.

 

장흥 이청준 생가
장흥 이청준 생가 인근 당산나무

사연이 많은 집이다. 아들을 광주의 고등학교로 보낸 어미는 형편이 어려워 아들 몰래 집을 팔았다. 어느 날 아들이 집에 온다기에 집주인에게 사정해 그 집에 계속 살고 있는 것처럼 꾸며 이불도 들여놓고 아들을 하룻밤 재웠다. 아들을 돌려보내고 돌아오는 4.6km의 길. 어미는 아들의 발자국을 밟으며 아들이 성공하기만 바라고 또 바랐다. 생가에서는 저 멀리 신비스런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마을 당산나무인 팽나무다. 이청준 단편소설 ‘나무 위에서 잠자기’에 등장하는 나무로, 실제 작가는 나무에서 놀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두 작가의 작품세계를 따라가는 문학길이 조성돼 있다. 한승원 문학비를 출발해 한승원 생가∼한재공원∼천년학 세트장∼선학동(산길)∼이청준 생가 및 묘소까지 12.5km에 달한다. 한승원 생가를 지나 국내 최대 할미꽃단지가 있는 한재공원에 올라선다. 득량만의 넘실거리는 쪽빛 바다와 탁 트인 들녘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니 장흥여행의 백미다. 선학동은 봄가을이면 유채꽃과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여행자들을 반긴다.

 

장흥 사계절굴구이

#소고기삼합·굴구이를 먹어야 장흥 여행 완성

 

장흥, 고흥, 보성으로 둘러싸인 득량만은 해산물이 풍부하다. 낙지·장어 등이 많이 잡히고 김, 미역, 굴, 피조개, 키조개, 바지락 등 식욕을 자극하는 먹거리들이 여행자들을 부른다. 식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사계절굴구이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식탁이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 설치된 커다란 화로 3개만 있을 뿐이다. 화로 위에는 각굴(껍질 까지 않은 굴)이 수북하게 쌓여 맛있는 향을 내며 익어간다. 손님들은 화로 주변 키낮은 의자에 둘러앉아 장갑을 끼고 정신없이 굴을 까먹는다. 생굴도 맛있지만 굴구이는 또 다른 별미다. 입 안 가득 짭조름한 미네랄과 고소함이 어우러지며 미식의 세계에 풍덩 빠지게 만든다. 옆 사람과 얘기할 틈도 없이 굴을 까먹게 되는 이유다. 이 식당의 별미 굴라면과 자장면도 놓치지 말기를. 걸쭉한 소스가 독특한 자장면 위에 구운 굴 하나를 올려 먹으면 자장면의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장흥 만나숯불갈비 한우삼합
장흥 정남진 토요시장 한우정육점거리
장흥 정남진 토요시장 한우삼합 캐릭터

장흥삼합은 미식여행의 화룡정점이다. 최고 육질의 한우, 비옥한 청정바다에서 자란 키조개 관자, 참나무에서 자란 표고버섯이 어우러진 장흥의 대표 보양식이다. 표고버섯의 쫄깃함과 넉넉한 육즙, 입에서 살살 녹는 키조개 관자의 부드러움, 한우의 감칠맛이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깊은 맛을 선사한다. 정남진 토요시장에 한우삼합 음식점이 몰려있다. 인근에 한우거리가 조성돼 정육점에서 한우를 직접 구입해 음식점에서 세팅비를 지불하고 먹기도 한다. 만나숯불갈비가 소문난 맛집. 한우에 칼집을 내는 주인장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칼질을 하는데 앞뒤로 칼집을 낸 뒤 좌우로 잡아당겨도 끊어지지 않는다. 칼집을 잘 내야 한우가 맛있게 골고루 익는다고 한다.

 

장흥 신가네 낙지삼합
장흥 토정황손두꺼비국밥 매생이 떡국

신가네에서는 한우삼합의 변주곡을 만난다. 키조개 관자에 삼겹살, 낙지가 들어간 삼합이다. 두 가지 방법으로 즐긴다. 뚝배기에 수북하게 오른 낙지와 키조개 관자가 익기 전에 소스에 찍어먹다가 국물이 자작해지고 삼겹살이 익으면 모두 섞어서 먹는다. 술꾼들의 해장식 매생이국도 장흥에서 빼놓을 수 없다. 토정황손두꺼비국밥에서는 반찬으로 나오는 어리굴젓을 매생이에 얹어 한 숟가락 떠먹으니 깊은 바다 맛이 우러난다. 어리굴젓은 무한리필이 된다. 

 

장흥=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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