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6개월…당신의 직장은 나아지셨습니까?

입력 : 2019-12-14 14:00:00 수정 : 2019-12-14 11:48:4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개념없다.”, “싸가지 없다.”, “유치원생이냐.”

 

직장인 A씨는 상사의 끝없는 폭언에 매일 아침 출근하기가 두렵다. 한번은 상사가 말대답을 한다는 이유로 사무실에서 “정신병자야”라고 큰소리쳐 전 직원 앞에 무안을 줬다. 식사자리에서도 상사의 폭언은 그치지 않았다. A씨는 “밥 한술 뜨지 못한 날도 있었다”며 “상사가 동료들에게까지 험담을 해 매일같이 불면증과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난 7월 괴롭힘 금지법 시행으로 나아지길 기대했지만 매일 알 수 없는 이유로 서랍을 쾅쾅 닫거나 위압적으로 행동하는 상사가 무섭다”며 “이 모든 게 내 탓인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 자괴감에 빠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도 있다”고 했다.

 

소독업체에서 일하는 직장인 B씨는 독한 소독약 냄새에 구역질을 한 뒤 몸이 안 좋아져 경비실에 누웠다가 상사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상사는 "민폐"라며 “산재(산업재해)타려고 그러는 거냐”라고 B씨에게 따져 물었다. 점점 몸 상태가 악화된 B씨는 병원에 가 검진까지 받았으나 상사의 “병원에 왜 갔냐”고 따지는 말에 참았던 분노가 올라왔다고 한다. B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됐지만 현장선 “갑질 여전”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난 7월부터 11월까지 접수받은 사례 중 일부다. 이 기간 동안 갑질 피해자의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만 1248건에 달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네이버 밴드 등을 통한 제보도 법시행이전 60여건에서 지난 9월 기준 100여건으로 훌쩍 뛰었다고 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6개월 가까이 되지만 여전히 직장 내 갑질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려대 ‘불평등과 민주주의연구센터’가 한국리서치와 함께 지난해 8월 성인남녀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갑질 및 갑을관계에 대한 인식조사’. 자료=고려대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 8월 직장인 66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5.2%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직장 생활에서 달라졌나”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많은 관심은 받겠지만 정착은 어려울 것”(49.7%), “일시적인 이슈에 끝날 것”(30%)이란 회의적인 답변도 많았다. “근로현장에 잘 정착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답변은 20.3%에 불과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중앙연구원 관계자는 13일 통화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출발 자체는 좋았지만 시행 후에도 여전히 사업자와 노동자간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괴롭힘이 명백해보여도 고용노동부가 나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혹여 불이익 받을까 갑질 말 못하는 직장인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혹여 자신이 불이익을 받을까 주변에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하고 있었다.

 

직장인 C(32)씨는 최근 생일을 맞춰 연차휴가를 쓰려고 상사에 보고했다가 팀 단톡방에서 공개적으로 폭언을 들었다. 상사는 “나도 15일 남았는데 정신차려라”라며 “네 맘대로 해라. 계속 푹 쉬세요”라고 C씨를 압박했다. 상사는 C씨와 대면해서도 욕설을 서슴지 않게 내뱉었다. C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괜히 갑질로 회사에 알렸다가 내 인사에 안 좋을 생각을 하니 말하지 못했다”며 “신고하면 내부고발자가 되는 셈인데 혹여 안좋게볼까 두려웠다”고 한숨 쉬었다.

 

실제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직장인 D씨는 암 수술 후 직장에 복귀했지만 부장의 괴롭힘, 부서에서의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에 이를 알리고 부서이동을 신청했다. 이 사실을 안 부장은 D씨를 회의실로 불러 추궁했고 부서이동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신고)이후로 반복되는 업무 배제, 따돌림, 무시 등을 참아야 했다”며 “회사생활이 어쩔 수 없다고들 하는데 부장의 얼굴만 봐도 너무 아프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가 지난 8일 전국 직장인 246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체감조사’에 따르면 75.6%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회사 인사팀의 대처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해 △처벌의 의무(강제성) 없음(34.9%), △괴롭힘 기준의 모호함(29.4%), △회사에 신고하는 등 신고방식 아쉬움(28.9%) 등의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 직장 내 괴롬힘 금지법 보완해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추가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직장갑질 119 박점규 운영위원은 “우리 사회에 굉장히 오랫동안 상명하복 문하가 지속 돼 한국형 갑질문화가 쉽게 없어지지 않고 있다”며 “현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가해자 처벌 조항이 없고 비정규직, 5인 이하 작업장에 해당 안 되는 한계가 있어 지속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도 “2019년 근로기준법 개정에 앞서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에 포섭될 수 있는 사안들을 유형화하는 작업이 충실하게 선행되었어야 하며 이를 토대로 입법을 추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전적 예방과 사후적 구제의 양 측면을 망라하는 포괄적인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