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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없고 눈 침침 “왜 이러는 개야”… 반려견도 고령화시대 [이슈 속으로]

입력 : 2019-12-15 09:00:00 수정 : 2019-12-15 09: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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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어르신 견공’들 / 반려견 수명 길어져… 20세 눈앞 / 돌봄 가구 10곳 중 1곳 고령견 키워 / 관절염·치매 등 노인성 질환 발생 / 제도적 장치 없어 치료비 큰 부담 / 펫 의료시장·돌봄 산업 성장세 / 안과 등 동물병원 치료과목 전문화 / 표준수가 없어 진료비 편차 6배나 / 등록제 정착·표준진료제 도입해야

직장인 박모(34)씨는 요즘 17살 몰티즈 ‘달리’를 돌봐줄 펫시터(반려동물 돌봄이)를 구하고 있다. 반려견이 노쇠하면서 혼자 식사를 하거나 대소변을 가리는 것이 어려워져서다. 박씨는 달리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고려했지만 주위 만류로 우선 펫시터를 구하기로 했다. 그는 “병원을 가도 특별한 질환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노화로 다리에 힘이 없어 쉽게 주저앉는다”며 “반려견 나이 17살이 사람으로 치면 80∼90세 노인이라는데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려견을 기르는 인구가 늘고 반려견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박씨와 같이 ‘노령견’(나이가 많아 늙은 개)을 키우는 가정이 늘고 있다. 반려견도 사람과 같은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반려견의 고령화로 돌봄이나 의료비 부담 등의 문제가 점차 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반려동물 등록제나 동물병원 표준진료제 등의 논의가 부진해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령화 반려견들 치매 등 노인성 질환 노출

13일 수의학계에 따르면 반려견의 나이가 7세(사람나이 40세)를 넘으면 ‘노령견’으로 본다. 10세(〃50세) 이상은 ‘고령견’, 13세(〃60세) 이상은 ‘초고령견’으로 분류한다. 다만 일선의 동물병원이나 관련 업계에서는 의료기술 발달로 반려견의 수명이 길어져 “10∼12세를 넘어야 노령견으로 본다”는 의견도 있다.

반려견의 수명은 점차 늘어나 최근에는 20세를 바라보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100세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간과 함께 반려견도 장수를 누리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8 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가정에서 기르는 반려견의 연령이 10세 이상인 경우는 10.6%로 파악됐다. 반려견을 키우는 돌봄 가구 10곳 중 1곳이 노령견을 키우는 셈이다. 다만 품종에 따른 차이를 보여 몰티즈(12.8%)나 푸들(10.6%)의 경우 10세 이상이 10% 초반대인데, 믹스견은 21%로 고령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여러 질환을 겪듯 반려견에게도 노화에 따른 질환이 나타난다. 노령 반려견의 대표적인 질환이 ‘치매’다. 사람이 그렇듯 반려견도 치매에 걸리면 인지장애 증상을 보인다. 심한 경우 평생을 함께한 주인을 기억하지 못한다. 식욕이 증가해 식사량이 늘거나,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윤신근 한국동물보호연구회 회장은 “사람과 비슷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반려견은 질환도 사람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며 “치매 증상도 사람과 비슷해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반려견은 암 발병률도 높은 편이다. 윤 회장은 “암컷의 경우 유선(젖)에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 암으로 이어지곤 한다”며 “인간의 유방암과 유사한 유선암 발병률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당뇨나 관절염, 백내장, 순환기질환 등이 반려견의 노인성 질환으로 자주 발생한다.

◆반려견 고령화에 관련 의료·돌봄 산업 성장세…비용 부담에 적금 붓기도

반려견의 고령화로 관련 의료산업은 점차 성장하는 추세다. 예전에는 동네 동물병원이 종합병원 기능을 했지만, 최근에는 사람이 다니는 병원처럼 안과, 치과, 피부과 등 특정 과목만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병원도 생기고 있다. 윤 회장은 “병원을 찾는 반려동물의 진료 수요가 늘면서 나타난 변화로 보인다”며 “병원의 체계화가 해외처럼 제도화된 것은 아니지만 반려동물의 의료환경이 개선된다는 점에서 반길 일”이라고 말했다.

아기를 돌보는 베이비시터처럼 반려견을 돌봐주는 펫시터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펫시터 전문업체 펫트너의 최가림 대표는 “반려동물 고령화로 노령견을 의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11살이 넘은 아이(개)들은 세심한 케어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보호자가 돌본 환경과 최대한 비슷하게 관리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려동물들이 건강검진을 받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반려동물의 의료시장이 성장하는 것과 관련해 2018 반려동물보고서는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증가하면서 동물병원 수요가 늘어 동물병원 자체가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다”며 “특히 반려동물의 고령화 현상으로 당뇨, 고혈압, 관절질환 등 만성 및 퇴행성 질환이 늘면서 동물병원의 진료와 치료 과목이 늘어나는 등 질적인 팽창도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반려견이 겪는 질환과 관련해 제도적 장치나 인식이 부족해 돌봄 가정이 갖는 부담은 여전히 큰 편이다. 보고서가 돌봄 가구를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면서 느끼는 애로사항’을 묻는 질문(복수응답)에 ‘건강에 이상이 있을 때 대처가 어렵다’는 응답이 36.6%에 달했다. 반려견 관련 소비지출 항목(복수응답)에서도 ‘질병예방·치료비’가 63.4%로 높게 나타났다. 시추를 키우는 직장인 김모(31)씨는 “반려동물의 경우 건강보험 같은 장치가 없다 보니 병원에 한번 올 때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따로 적금을 들고 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보험 부족, 등록제 정착돼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반려견의 경우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방법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보장 범위가 좁고 가입 조건이 까다로워 규모가 미미하다. 보험개발원의 지난해 ‘반려동물보험 운영사례와 시장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펫보험 가입률은 0.02%에 그친다. 스웨덴(40%), 영국(25%), 일본(6%)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국내에서 반려동물 돌봄 인구가 증가하는데도 이런 실정인 것은 반려동물 진료비의 표준수가와 관련 통계 등의 부재가 주된 이유로 꼽힌다. 소비자시민모임이 2017년 서울시내 25개 자치구의 동물병원 진료비를 비교한 결과 동일한 진료 항목에서 진료비 편차가 최대 6배까지 났다. 업계에서도 반려동물의 보험료율을 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아 관련 상품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반려견의 고령화도 우리보다 빠르다. 일본 동물식품협회에 따르면 반려견의 평균 수명은 1980년 3.7세였지만, 2016년에는 14.2세로 34년간 4배가량 증가했다. 반려견 관련 보험상품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일본의 SBI생생소액단기보험은 지난해 반려동물의 가입 상한 연령을 ‘7살11개월’에서 ‘11살11개월’로 조정했는데, 그 결과 신규 계약이 2.5배나 늘었다.

고령화에 따른 일본 돌봄 가구의 지출도 증가세다. 반려동물보험업체인 나니콤손해보험이 지난해 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반려견에게 지출하는 비용이 48만엔(약 527만원)으로 전년대비 7.7%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우리 정부는 지난 6월 동물병원 표준진료제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했지만, 이에 앞서 반려동물 등록제가 정착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려동물 등록제를 통해 반려동물의 소재와 통계가 분명해야 관련 제도가 정비되고, 돌봄 가구의 책임감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박효민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려동물 관련 정책의 쟁점과 대안’ 보고서에서 “반려동물과 소유주를 위한 각종 지원정책이 시행되고, 반려동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반려동물 소유에 대한 사회적 부담은 전무(한 수준)”이라며 “반려동물 양육 인구 및 이들의 생활상과 반려동물 양육 과정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에 대한 정책 수요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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