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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인문학산책] 말을 삼킬 줄 아는 능력

,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

입력 : 2019-11-22 23:17:28 수정 : 2019-11-22 23: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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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는 것을 못하면 덕이 붙지 않아 / 세상은 억울함을 견뎌야 하는 곳

모세라는 영웅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구해낸 이스라엘의 지도자다. 영웅이라면 영웅이지만 ‘영웅’이라는 지칭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인물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 대학교의 채플에 갔다. 거기서 만난 교목이 그 모세 이야기를 한다. 그 모세가 평생 자기 인생의 멘토였다는 것이다. 그의 멘토로서의 모세는 독특했다. 그의 모세는 이스라엘을 구원한 힘의 영웅으로서의 모세가 아니었다. 그가 말한다. 힘의 영웅을 좋아하는 욕망의 실체는 환상이고 나약함이 아니겠냐고. 그런 그의 모세는 “내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구나”라고 고백해야만 했던 고독한 모세였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모세는 이집트에서 도망쳐 미디안이라는 사막지역에서 40년 동안이나 자신을 유폐하고 살았다. 그는 그 모세가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졌다며 어려운 일,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너, 모세처럼 40년을 견뎠느냐”며 자문하는 것으로 상황을 삼키고, 말을 삼키며, 삶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물론 미디안 광야생활 40년의 그 40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것이겠지만 그 긴긴 세월을 참고 견딘 내공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모세는 없었을 것이다. 여운이 긴 대화였다.

뭔가를 전하러 갔다가 내가 전하려는 것은 잊어버리고 그의 모세를 안고 왔는데, 그 모세가 문득문득 내게 묻는다. 너는 참고 견디는 일을 잘하는가. 말을 삼킬 줄 아는가. 말이 많은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살면서 느끼는 것은 ‘말은 칼과 같다’는 것이다. 상처를 내고 상처를 받는다. 말을 해야 할 때 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비겁함도 문제이지만,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지 못하고 촉새처럼 말을 해버리는 난감함은 더 치명적인 것 같다. 말을 삼키지 못하고, 참고 견디는 일을 하지 못하면 덕이 붙지 않는다. 아무리 똑똑하고 승부근성이 있어도 덕이 없는 사람은 편안하지 않다.

송혜교가 잠시 나오는 ‘일대종사’라는 영화가 있다. 왕자웨이의 영화답게 아름다운 영화다. 거기서 왕자웨이는 왕자웨이의 아내로 살짝 나오는 송혜교를 어쩌면 그렇게 매혹적으로 찍었는지. 왕자웨이가 자기 아내를 두고 하는 짧은 말은 그들 부부의 안정적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아내는 말이 적었다. 말은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우린 말없이도 잘 통했다.”

말은 상처를 준다. 그렇지만 말없이 잘 통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말없이 잘 통하는 관계가 있다. 그것이 진짜다. ‘일대종사’에서 왕자웨이는 일대종사인 ‘엽문’역을 맡았다. 아내와 말없이 통하는 관계를 맺을 줄 아는 엽문은 궁가의 후예 궁이와는 무예로 통한다. 그 영화에서 왕자웨이만큼이나 돋보이는 인물은 그 궁이역을 맡은 장쯔이다. 아버지 닮아 무예 출중하지만 지기 싫어하는 궁이에게 아버지 궁가가 한수 가르쳐 주는 대목이 있다. “너의 눈엔 승부만 있고 세상이 없어. 남의 장점 못 봐주고 남의 잘난 점을 참지 못하면 사람을 포용할 수가 없다. 우리 궁가는 문턱이 높지만 소인배는 없다.”

왜 남의 잘난 점을 참지 못할까? 승부만 있기 때문이다. 이겨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절박함은 종종 아집이 되어 상대를 깎아내린다. 나 대신 다른 이가 빛나면 질투심이 생기고, 가까이 빛나는 사람 앞에서는 괜히 상처를 받는다. 조금 잘해 주고 고마워할 줄 모른다고 상처를 받고 모르는 척하면 무시한다고 생각해 화를 내는, 자존심 낮은 사람, 포용력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다 아집의 작용이다.

세상은 그 아집이 다른 아집을 만나 충돌하는 곳이다. 그 아집이 다 떨어져 나갈 때까지 고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불가에서는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한다. 참고 견디는 곳이라는 뜻이다. 기대만큼 고통이 따르는 곳, 희망만큼 희망고문이 생기는 곳, 진실이 왜곡되어 억울함이 생기는 곳, 그 억울함을 견뎌야 하는 곳이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의 마지막은 그 억울함에 대한 것이다.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이르시기를 억울함으로 당하는 것으로 수행의 문을 삼아라.” 쉽지 않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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