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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상처 비로소 품은 작가 “이제 같이 울어줄 수 있습니다” [편집노트]

입력 : 2019-11-23 03:00:00 수정 : 2019-11-22 20: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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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초입, 밤이 깊다. 오랜만에 먼 남도에서 보내온 이은정 소설가가 쓴 산문집 ‘눈물이 마르는 시간’(마음서재)을 읽는다. 어릴적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남도의 외딴 섬으로 자신을 유폐시킨 지 5년, 그녀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 그토록 꿈꾸어 왔던 소설가의 꿈을 이루었다. 이 책은 작가의 삶이자 결정체다. 그런데 놀랍게도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은정/마음서재/1만4000원

산문집은 바닷가 사람냄새로 가득하다. 삶의 비린내를 묻히고 다녔던 어부 아버지의 고독과 마을노인들의 굴곡진 인생사는 물론 그간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하려고 애쓴다. 자연과 짐승에게도 사람 못지않은 따뜻한 시선이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작가는 40년 동안 외면해 왔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품어준다. 산문집의 제목은 작가가 힘든 자신을 이기고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축약하고 있다.

정성욱 시인

작가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독자에게 ‘같이 울어줄 수 있으니 눈물에 인색하지 말라’고 한다. ‘마음이 아프면 실컷 울고, 부디 마르기를, 눈물이 마르는 시간 속에 머물기’를 바라고 있다.

산골 마을에서 반려견과 단둘이 사는 젊은 여자의 삶. 그녀가 가진 것이라곤 끈질긴 가난과 아픈 개와 허망한 꿈이 전부이지만 작가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현재에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자존감 때문일 것이다. 울 만큼 울고 드디어 눈물이 마르는 시간 속에 머물게 된 그녀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하다.

책을 읽다 보면 그녀의 눈물이 마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자신은 어둠에 묻혀도 좋으니 사랑하는 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상태에 이른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표지를 다시 보니 책을 읽기 전과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든다. ‘눈물이 마르는 시간’을 향해 웃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아서 흐뭇해진다.

글을 쓴 지 20여년 만에 등단한 작가의 내공은 탄탄했다. 2018년 단편소설 ‘개들이 짖는 동안’으로 무려 1만7000여편의 투고 작품 중에서 당당히 동서문학상 대상을 받았고, 이듬해 봄에 발표한 단편소설 ‘엄대리’로 문학사상이 뽑은 ‘이달의 문제작’에 선정되었다. 산문집을 먼저 출간한 이유를 물었더니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소설 속 인물에 완전히 몰입하기 위해서 과거의 자신을 떠나보내는 것이라고. 글 쓴 세월답게 야무진 대답이다. 패기만만한 그녀의 소설에 기대를 품어본다.

 

정성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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