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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 키워낸 악인… 상류사회의 속살 드러내

입력 : 2019-11-08 03:00:00 수정 : 2019-11-07 20: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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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 10년 만의 소설집 /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

한국 문학에서는 찾보기 힘든 악인이 탄생했다. 한국판 ‘조커’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악인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심지어 마흔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으리만치 아름답다. 167센티미터 키에 달리기와 스피닝, 테니스와 필라테스를 병행해 군살 없는 늘씬한 몸매와 도자기 같은 맑은 피부를 지녔다. 몇 초 만에 상대의 영혼을 뒤흔드는 커다란 갈색 눈망울에다 지적 수준도 상당하다. 그녀의 이름은 오미나.

소설가 이홍(41·사진)이 10년 만에 펴낸 연작소설집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문학과지성사)의 주인공이다. 아나운서인 그녀는 토크쇼를 여러 개 진행하는,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의 표상이지만 개인사는 어둡다. 이십대의 이른 나이에 어머니가 죽었고, 결혼 4년 차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즉사, 사별의 아픔을 다 이겨내기도 전에 여섯 살이었던 아들이 실종됐으며,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버지는 딸 또래의 여자와 미국으로 이주한 상태다. 그녀는 다짐한다.

“난 모든 걸 잃었지만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어. 그래서 더 아름다워지기로 했어. 더, 더, 강해지기로 했어. 더, 더, 더, 외로워지기로 했어. 내게 허락되었던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내게 허락되지 않았던 것들을 잊기 위해. 그것만이 이 생에서의 나를 견디게 해줄 테니까.”

그녀의 이 말들은 진실이다. 다만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것들, 그 장애물들을 누가 어떻게 제거했는지는 진실과는 다른 맥락이다. 첫 번째 소설 ‘스토커’에서는 오미나가 자신의 약혼자를 이용해 여비서를 제거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서사가 전개된다. 어디에도 명확한 증거는 없다. 작가가 교묘하게 가설한 정황만 있을 따름이다. ‘드레스 코드’에서는 오미나가 자신의 욕망에 방해 되는 대상이 어머니라고 하더라도 예외 없이 제거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이 역시 명확한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50번 도로의 룸미러’에서는 자식도 방해물로 설정되고 실종된다. ‘메인스타디움’은 미나가 어린 시절부터 욕망 앞에서는 방해물을 참지 못하는 천성이었음을 드러낸다. 어린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옆 반 부반장의 부모를 경찰에 고발하고 그들의 포장마차에 불까지 지른 것으로 보인다.

이 악인 캐릭터가 징벌을 받는 장면은 이 소설들 어디에도 없다. 해설을 맡은 평론가 강유정은 “오미나는 얻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해 자신만의 정의를 세우고 추구한다”면서 “문제적인 것은 오미나만의 그 계획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제법 통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상류층의 속살을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우리 안의 욕망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흔치 않지만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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