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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지 생시인지… 몽환적 매력 선사

입력 : 2019-11-06 05:00:00 수정 : 2019-11-06 10: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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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렐조카주 ‘프레스코화’ / 홀로그램 띄운 듯한 입체적 연출 / 女 무용수 관능적 자태 객석 압도
중국 기담을 현대 무용극으로 재탄생시킨 프랑스 거장 앙줄랭 프렐조카주의 신작 ‘프레스코화’. LG아트센터 제공

중국판 ‘전설의 고향’ 격인 ‘요재지이’는 명나라 말기에 나온 총 16권의 기담 모음집이다. 홍콩영화 전성기를 알렸던 아름다운 요괴와 순진한 유생의 사랑 이야기 ‘천녀유혼’도 여기서 파생됐다. ‘화벽(畵璧)-벽화 속의 미인’은 또 다른 매혹적인 전설이다. 우연히 흘러들어간 옛 절터에서 마주친 벽화 속 미인에 반해 그림 속 세계로 흘러들어 간 남자가 미인과 인연을 맺으나 결국 낙원에서 추방당한다는 쓸쓸한 이야기다.

2011년 홍콩 액션 영화 거장 진가상 감독이 만든 ‘화벽’이란 영화로도 잘 알려진 옛이야기가 이번엔 무용계 최고 영예인 ‘브누아 드 라 당스’를 1994년 일찌감치 수상한 당대 최고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의 ‘프레스코화’로 국내 무대에 소개됐다.

쉼 없이 120분간 이어진 프렐조카주의 ‘프레스코화’에선 신체언어로 모든 걸 표현해야 하는 무용 특성상 많은 이야기가 처음부터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중국 전설과는 너무도 이질적인 무대이기에 “한 남자가 벽화 속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가 현실로 돌아온다”는 기본적 줄거리만 차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결말에 다가갈수록 무대는 오래된 기담이 가진 특유의 정서가 뚜렷해진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실낙원(失樂園)에 대한 아쉬움과 한탄이 고스란히 객석에 전해진다.

무대는 원래 이야기대로 두 명의 남성 무용수가 깊은 산 속 오래된 절터에 이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작품 전체에서 ‘여인네의 치렁치렁한 긴 머릿결’이 중요한 상징이자 장치로 사용되는데, 이 장면에서도 무대 전면에 망사막을 친 후 긴 머릿결을 형상화한 영상을 투사했다. 마치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운 듯한 효과를 줄 수 있는 망사막 영상 투사를 통한 입체적 무대 연출은 요즘 여러 공연에서 선보인다. 그러나 때로는 본래 효과 대신 관객 눈앞에 모기장을 친 듯한 갑갑함만 줄 뿐이다. 하지만 이번 무대에서 만들어낸 입체감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환상의 세계에 도달하는 몽환적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이번 작품의 매력은 음악이다. 요즘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라는 일렉트로닉 듀오 ‘에어(AIR)’ 멤버 니콜라스 고댕이 맡았다. ‘프레스코화’에서 들려주는 음악은 고댕의 주전공일 법한 일렉트로닉 팝에 국한되지 않았다. 때로는 전위적이면서도 중독성 있는 리듬과 때로는 토속적인 멜로디로 무대를 풍성하게 채웠다.

빛과 음악으로 채워진 무대의 아름다움은 주인공이 절터에서 다섯 미녀가 그려진 벽화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본격적으로 피어난다. 마치 로마 시대 어느 귀족 저택 거실에 걸려 있음 직한 벽화 속 여성 무용수의 관능적인 자태는 ‘정중동(靜中動)’으로 객석을 압도하는 이미지였다. 이후 주인공이 벽화 속 세계로 들어가는 장면은 시시했지만 곧장 시작된 다섯 여성 무용수의 격렬한 춤은 프렐조카주가 특히 공들인 장면다웠다. 긴 머릿결을 동양 여성의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포착한 프렐조카주는 어깨 아래로 한참 내려오는 긴 머리를 지닌 다섯 무용수가 팔·다리와 함께 머릿결을 흔들면서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도록 했다.

이후 무대는 남녀 주인공의 이인무와 군무 등으로 이어진다. 고난도의 아름다운 이인무는 프렐조카주의 무용이 클래식 발레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잘 보여줬다. 벽화 속 유토피아에서 맺어지는 두 주인공의 사랑은 이인무를 거쳐 미인들이 여주인공 머리를 혼인 증표로 빗어올리는 장면에서 완성된다.

사랑을 찾은 두 연인은 함께 잠드나 낙원은 이방인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굉음과 함께 등장한 삼인의 신장(神將)은 남주인공을 현실 세계로 내친다. 남주인공이 벽화를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부산문화회관에서 6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9, 10일.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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