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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완득이’가 별을 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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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1-15 23:07:03 수정 : 2019-11-15 23: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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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 베트콩, 보트피플…. 1990년대 초까지 ‘베트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낱말들이다.

베트남이 남북으로 갈라져 싸우던 시절 자유주의 남베트남 수도가 ‘사이공’이다. 공산화 이후 지금의 ‘호찌민’으로 바뀌었다. ‘베트콩’은 공산주의 북베트남의 지원으로 남베트남에서 결성돼 활동한 반군 게릴라 조직이다. 전쟁이 북베트남 승리로 끝나자 공산 정권 치하에선 도저히 살 수 없어 배를 타고 무작정 바다로 탈출한 베트남인들을 ‘보트피플’이라고 불렀다.

김태훈 특별기획취재팀장

오랫동안 잊고 지낸 이 단어들을 소환한 건 우연히 접한 후안 응우옌(60)이란 미국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 때문이다. 그의 삶은 사이공, 베트콩, 보트피플을 모르고선 설명이 안 된다.

응우옌은 사이공 외곽에서 태어났다. 9살이던 1968년 베트콩의 습격으로 부모와 형제, 누이 등 가족 7명을 잃었다. 그의 부친이 남베트남 육군 장교라서 베트콩의 표적이 됐다. 응우옌도 팔 등에 총상을 입었지만 기적처럼 살아남아 이후 작은아버지 손에서 길러졌다.

1975년 북베트남 군대가 사이공에 진주하며 남베트남은 망했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작은아버지에 이끌려 16살 소년 응우옌도 보트피플이 됐다. 다행히 미 해군에 구조된 그는 ‘정치적 난민’ 판정을 받아 미국에 귀화했다. 어느 미국인 독지가에 힘입어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응우옌은 1993년 34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미 해군 기술장교로 입대했다.

26년간 군함 수리 전문가로 후방에서 일해 온 응우옌이 지난달 준장으로 진급해 별을 달았다. 미 해군 225년 역사상 첫 베트남계 제독 탄생에 베트남계 미국인 사회가 들썩였다. 응우옌은 “해군에서 제독이 된다는 건 크나큰 영예로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며 “우리 같은 난민에게 미국은 희망의 등불”이라고 말해 미국인과 미국 사회에 고마움을 전했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도 응우옌 같은 성공 사례는 흔치 않다. 한국은 어떨까. 2012년 ‘이주민 출신 첫 국회의원’의 기록을 세운 이자스민 전 의원이 우선 떠오른다. 필리핀에서 태어난 그는 결혼을 통해 1998년 한국에 귀화했다. 다문화가정 청소년의 애환을 그린 영화 ‘완득이’(2011)에 출연하며 유명인이 됐다.

마침 내년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이 전 의원의 자유한국당 탈당 및 정의당 입당 소식이 전해졌다. 여권 일각에선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그를 포용했다면 이민자 등 우리 사회 소수자 권익 증진에 큰 보탬이 됐을 것이란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왔다.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민주당이 먼저 이런(이 전 의원 영입)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는 금태섭 의원의 고언을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깊이 새겼으면 한다.

이 전 의원의 장남이 2016년 9월 입대해 병역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제대한 사실도 뒤늦게 화제가 됐다. 국방부에 따르면 2025년부터 연평균 8500여명의 다문화가정 출신 청년이 군복무를 할 예정이다. 언젠가 그들 중에서 군 장성도 나올 것이다. ‘완득이’가 별을 다는 날이 기다려진다.

 

김태훈 특별기획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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