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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나를 나답게 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과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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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0-18 23:04:09 수정 : 2019-10-18 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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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고통은 ‘창조성의 자극제’ / 좋은 글 향한 열정도 다른 원천 / 최악의 상황서 창작 향한 노력 / 그 속에서 글쓰기의 희열 탄생

“창조적인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글쓰기 수업을 할 때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닮고 싶은 작가의 글을 낭독하거나 필사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창조적인 글쓰기에서 가장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자극제는 ‘마감의 압박’이다. 마감의 압박과 스트레스는 분명 창조성 계발에 도움이 된다. 물론 원고 마감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고통이지만, ‘언젠가는 좋은 글을 쓰겠지’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확실한 창조성의 자극제가 돼준다. 오늘 쓰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은 빼놓을 수 없는 창조성의 원천이다.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절박함, 내 글이 늦게 들어가면 신문이나 잡지의 편집에 차질이 빚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야말로 창조성의 또 다른 원천이다.

정여울 작가

‘글을 정말 쓰고 싶은데, 책상에만 앉으면 잠이 쏟아지거나 자꾸 딴짓을 하게 된다’고 고민을 털어놓는 분에게, 나는 ‘누군가에게 원고마감을 독촉하도록 부탁해 보라’고 권한다. 믿을 만한 사람이 내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혼자만의 글쓰기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긴장감이 감돌게 된다. 독자를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중압감, 이전보다 더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조차 글쓰기의 창조성에 도움이 된다. 나는 신간을 낼 때마다 그런 압박감에 시달린다. 이전 책보다 더 좋은 책을 써야 한다는 책임감이 마치 낭떠러지에서 새끼새를 떠미는 어미새처럼 내 등짝을 세차게 밀어내는 것 같다. 이 고통에는 짜릿한 쾌감도 공존한다. 나는 분명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희망이 창조적인 글쓰기를 향한 열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콜레트’를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창조성의 원동력이 때로는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는 타인의 끔찍한 비난에서 오기도 한다는 것을. 콜레트는 반짝이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남편에게 ‘너의 글은 너무 감상적이고 소녀 취향이다’라는 비난을 듣는다. 남편의 비난으로 인해 상처를 입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글을 써 마침내 남편의 명성을 뛰어넘는 작가로 성장한다. 콜레트는 소설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작가가 되지만, 안타깝게도 유령작가로 작가 인생을 시작했다. 여성이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쓰는 것 자체가 환영받지 못하던 시절, 콜레트의 남편 윌리는 재능 있는 젊은이의 글쓰기 실력과 자신의 유명세를 활용해 일종의 ‘글 공장’을 운영한다. 글공장 사장 윌리의 그림자 작가로 활약해 자신의 재능을 남편의 명성을 쌓아 올리는 데 이용당한 콜레트. 그녀는 남편과의 투쟁 끝에 마침내 모든 족쇄에서 해방되고 진정한 작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콜레트의 힘은 자신의 주어진 정체성에 만족하는 삶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을 스스로 창조하는 길, 글쓰기였다. ‘빨리빨리 써야 해, 그래야 돈을 벌지’라는 남편의 잔소리와 착취, 작업실에 감금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감옥 같은 생활 속에서도, 콜레트는 자기 안의 담대함과 재능을 잊지 않는다. 마감의 압박과 신랄한 악평 속에서도 콜레트의 재능과 창조성은 빛을 발한다. 창작의 기쁨은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바람둥이 남편과의 고통스러운 결혼생활, 그로 인해 떠나와야 했던 생소뷔르라는 아름다운 시골마을을 향한 노스탤지어(향수)는 그녀가 되찾아야 할 자기다움이었다.

글쓰기를 통해 콜레트는 잃어버린 시간의 아름다움을 되찾는다. 콜레트의 소설은 아내의 역할, 어머니의 역할에 속박돼 있던 당대 여성에게 여성해방의 의미와 존재의 눈부신 자유를 향한 갈망을 일깨워주었다. 아내의 재능을 무시하면서도 아내의 재능을 착취하느라 혈안이 돼 있었던 남편 윌리의 온갖 방해 공작에도, 콜레트의 싱그러운 감수성과 창조적인 상상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 콜레트는 글쓰기를 통해 진정한 자기 자신이 돼가는 길을 찾아낸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창조성을 끌어내는 용기, 바로 그 속에서 글쓰기의 진정한 희열이 탄생한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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