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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엉터리 감염검사… 멧돼지 한마리로 시료 중복 채취 ‘허위신고’

입력 : 2019-10-13 18:08:54 수정 : 2019-10-13 23: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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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학원·검역본부 따로 진행 / 인력난에 시료 채취 민간에 의존 / 수렵인들 돈 욕심에 실적 부풀려 / 24% 시간·장소·결과 같아 ‘의혹’ / 환경부·농식품부 관리 이원화 문제 / 예찰·수의방역 전담체제로 전환을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병 지역인 경기 연천군 신서면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13일 통행 차량을 대상으로 긴급 방역 작업이 실시되고 있다. 연천=뉴스1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의 전파 경로로 지목받는 야생멧돼지를 상대로 한 예찰(豫察) 사업이 허술한 관리·감독 아래 진행된 것으로 13일 드러났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중국에서 ASF가 발병함에 따라 야생멧돼지 혈액 시료 수집을 강화했지만 수렵인과 수렵인 단체에 시료 수집을 위임하는 바람에 일부 지역에서는 한 멧돼지에서 채취된 시료가 다수 수거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멧돼지를 통한 ASF 전파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부실한 멧돼지 예찰이 ASF 역학조사의 구멍을 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이 국립환경과학원(과학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야생멧돼지 진단결과’ 등에 따르면 과학원은 2016년부터 야생멧돼지 전염병 감염 여부를 조사해왔다. 과학원은 폐사체와 수렵·포획틀로 잡은 멧돼지에서 얻은 혈액 시료 등을 분석했으며 대부분이 수렵을 통해서 확보됐다. 수렵을 통한 시료는 2016년 282개, 2017년 265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338개, 올해(1월∼10월 6일) 673개로 급증했다. 동물 질병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농림축산검역본부(검역본부)는 한돈자조금협회의 도움을 받아 멧돼지 수렵으로 2016년 1683개, 2017년 1670개, 2018년 1329개, 올해(1∼8월) 1523개의 시료를 채취했다.

멧돼지 시료는 ASF 전파 경로를 확인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자료로 과학원은 ASF 항원을, 검역본부는 ASF 항체·항원을 모두 검사해왔다. 하지만 실제 멧돼지 시료 채취에 나섰던 일부 수렵인은 “멧돼지 한 마리당 시료 하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를 잡아서 거기서 시료를 중복해서 채취하는 경우가 많다”며 해당 시료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익명을 요구한 수렵인 A씨는 김 의원실에 “시료당 3만∼5만원의 수거비를 받는데 멧돼지 하나 잡아서 시료 하나만 보내서는 돈이 되지 않는다. 일부는 한 마리를 잡아서 피를 시료 키트에 나눠 담은 뒤 이를 다른 멧돼지에서 잡았다고 신고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또 다른 수렵인 B씨는 “시료 수거비용이 환경과학원이 수렵인협회에 주고, 이를 지부별로 분배해서 수렵인 개인에게 오기 때문에 지부장이나 임원들이 몰아서 실적을 부풀리는 사례도 있었다”고 제보했다. 김 의원이 환경과학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중 수렵 장소·날짜·검사 결과가 모두 동일한 사례는 1588개 중 23.5%(373개)에 달했다. 검역본부의 경우 전체 수렵 멧돼지 시료 7618개 중 24.9%(1891개)가 중복 의심 사례로 꼽혔다. 두 기관 모두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중복 여부를 확실히 검사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내부 하천변에서 비틀거리는 상태로 발견돼 사살된 ASF 감염 야생멧돼지. 환경부 제공

과학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인력 부족으로 수렵인 단체를 통하지 않고 시료를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협회를 통한 수렵인 교육을 강화해 자발적인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답했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특정 개인이 다수의 시료를 보낼 경우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관리하기도 했다”며 “의심사례가 신고되면 조사를 통해 밝혀내겠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결국 야생 동물을 담당하는 환경부로 야생멧돼지 방역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집중되는 바람에 동물 방역을 맡은 농림축산식품부는 들러리로 전락하고 관련 인력과 예산도 효과적으로 쓸 수 없게 돼 제대로 된 ASF 예찰을 하지 못했다”며 “외국 사례처럼 지금이라도 정부는 검역본부와 같은 수의전담기관을 중심으로 야생멧돼지 예찰과 방역 업무를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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