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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발레 통념 파괴… 남성 백조의 군무 압도적

입력 : 2019-10-13 21:32:49 수정 : 2019-10-13 21: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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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내한공연 매슈 본의 ‘백조의 호수’ 리뷰 / 고전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 / 초연의 명성 그대로 무대에 재연 / 춤의 힘·격렬함 객석까지 전해줘 / 생생한 캐릭터·얘기로 재미 더해 / 창시자답게 댄스뮤지컬 정수 선봬
절찬리에 9년만의 내한공연중인 매슈 본의 백조의 호수. ‘자유와 힘, 아름다움’을 표방하는 남성무용수의 백조 군무가 강렬한 감동을 준다.   LG아트센터 제공  

고통받던 왕자는 죽고 여왕은 비탄에 빠져 쓰러진다. 화려한 왕궁과 달빛 서린 호수를 무대로 펼쳐졌던 춤의 향연은 이야기가 시작된 왕자 침대 위에서 비극으로 끝났다. 음악과 춤에 흠뻑 빠졌던 관객에겐 운명의 쓰라림이 찾아오나 감동이 뒤따른다. 무대 위 마법에서 서서히 깨어난 객석은 백조들에게 끝없는 갈채를 보냈다.

 

9년 만에 다시 우리나라에 날아온 ‘매슈 본’의 ‘백조의 호수’는 지난 9일 다시 열린 첫 무대에서 전설을 이어갔다. 2003년 국내 초연 후 두 차례 더 내한 무대를 이어가다 강산이 한번 변할 때쯤에야 돌아온 남자 백조들이다. 왕년의 명성 그대로 무대는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고 감동은 여전했다.

원래 ‘백조의 호수’는 1895년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된 차이콥스키 음악, 마리우스 프티파 안무의 고전발레다. 그런데 현대 무용가 매슈 본은 이 걸작 고전발레를 음악만 남긴 채 새로운 무용극으로 혁신했다. 현존 ‘가장 유명한 안무가’로서 이름 앞뒤에 ‘Sir(경)’와 ‘OBE(Order of the British Empire·대영제국훈장)’란 영예가 따라붙는 매슈 본.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후 그의 사회생활은 영국 공영방송 BBC 기록보관소 직원, 극장 티켓 판매원·매장 직원 등으로 출발했다. 22살부터 현대무용을 제대로 배우고 난 후 자신의 무용단(AMP)을 세운다.

 

어릴 때부터 영화와 뮤지컬을 탐닉한 이야기꾼으로서 매슈 본은 ‘무용’이란 언어로 고전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극을 만든다. 첫 히트작인 ‘호두까기 인형!’에 이어 1995년 상반신을 벗어젖힌 남성 백조로 충격을 준 ‘백조의 호수’에 세상은 열광했다. 그리고, 매슈 본은 ‘댄스 뮤지컬’이란 새 장르 창시자가 된다.

댄스 뮤지컬 대표작으로서 그의 ‘백조의 호수’는 원작보다 훨씬 더 극적이다. 제작 당시 영국은 다이애너 왕세자비 사망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냉담한 것으로 정평 난 여왕에 대한 영국 국민 반감은 왕실 존폐 논쟁까지 일으켰을 정도다. 애초 영국 왕실은 왕족에게 부여된 의무와 책임에 고통받는 이들이 속출한 가문. 이를 지켜봐 온 매슈 본은 자식에겐 냉담하나 남성에겐 자유분방한 여왕에게 상처 입은 왕자를 주인공으로 정했다. 결국 왕자는 자살하려던 호숫가에서 만난 백조에게 구원을 얻으나 다시 왕실 내 암투와 ‘낯선 남자’라는 운명적 존재에 휘말려 파멸한다.

 

매슈 본은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없고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던 왕자를 내세운 것은 매우 시사적 주제였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어떤 작품과도 비슷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 클래식 버전에서 약간의 변화를 주었을 뿐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 무대는 완전히 달라야 했다. 제 무용단은 클래식 무용단이 아니라 현대 무용단이기 때문에 움직임을 통해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전해야 했다”며 “그중 가장 큰 아이디어는 남성 백조였고 두 번째 큰 아이디어는 영국 왕실 스캔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파격적인 줄거리는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 채워진다. 화려한 왕실 일상이 1막부터 질서정연한 궁정 하인들 무용으로 생생하게 묘사되며 객석을 사로잡는다. 이번 월드 투어에선 극 초반 등장했던 소년 왕자가 사라지고 그 역할까지 성인 왕자가 도맡는데 큰 위화감은 없다. 또 매슈 본은 고전 백조의 호수에서 가장 큰 매력인 ‘백조 군무’와 ‘궁중무도회’, 그리고 주역이 1인 2역을 맡는 특징을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켰다.

 

특히 흰 깃털이 나풀거리는 타이츠만 입은 나신(裸身)의 남성 백조 군무는 압도적이다. 특유의 강렬한 인상 덕분에 식상할 정도로 많은 이미지로 소비된 상태다. 하지만 실제 무대로 접하는 남성 백조 춤의 격렬함은 객석에 가감 없이 전해지는 그들의 거친 호흡 소리와 땀방울만큼이나 원초적이면서도 섬세하다. 고전발레로서 백조의 호수 군무를 이전에 접한 이라면 충격을 받으면서도 또 다른 백조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에서 생겨나는 경이감을 피할 수 없다.

고운 선으로 백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발레리나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남성 무용수들이 연기하는 백조는 매슈 본이 의도했던 ‘자유와 힘, 아름다움’ 그 자체다. 그중에서도 주역 백조가 왕자와 추는 파드되(2인무)와 독무는 인상적이다. 훨씬 더 보수적 사회였을 초연 당시에는 불편함을 느껴 퇴장하는 관객이 속출했다지만 편견 없이 바라보면 두 존재가 춤으로 나누는 교감과 이를 통한 위로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호숫가와 배치되는 공간은 왕실무도회장이다. 고전발레에선 외국 공주들의 춤 경연이었던 왕실 무도회가 매슈 본의 무대에선 다양한 군상의 이야기가 곁들여지는 드라마로 발전했다. 주역만 바라보면 되는 고전발레와 달리 무대 위 모든 등장 인물이 나름의 연기를 하며 전체 무도회 분위기를 살리고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만든다.

질투, 유혹, 분노, 과시, 매혹 등 인간의 온갖 감정이 배우들 연기로 마치 통속극처럼 무대 위에 피어난다. ‘단 한 번도 무용 공연을 본 적이 없는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인다’는 매슈 본이 창시한 댄스 뮤지컬의 정수다. ‘혁신’을 명분으로 고전의 낡은 틀만 파괴만 한 게 아니라 대중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생생한 캐릭터와 이야기로 고전에 새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서울 LG아트센터에서 20일,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24∼27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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