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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편가르기’ 카드 꺼내든 트럼프… 재선 노림수 통할까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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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18 10:00:00 수정 : 2019-08-18 10: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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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적 선거전략 답습 논란 / 민주당내 유색인종 출신 집중공격 / 초선 4인방에 “원래 나라로 가라” / 편견 부추겨 백인 유권자 결집 유도 / 3년전 전략 되풀이 … 반대파 반발 / 백인우월주의자 총격 사건 급증세 / ‘트럼프 책임론’ 따른 역풍 만만찮아 / 공화 일각서도 차별적 언행 불안감 / 역발상 접근법 대선 걸림돌 될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18일(현지시간) 재선 출마선언을 한 뒤 두드러진 모습 중 하나가 인종차별적 언행이다. 이민자 유입을 막겠다며 미·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임기 내내 밀어붙이고 있긴 하지만, 최근 들어 민주당 내 유색인종 출신 인사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면서 차별적 언사의 강도가 세지고 있다. 2016년 ‘45세 이상 백인 노동자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정치권의 아웃사이더에서 대통령으로 우뚝 선 그가 본격적인 재선 국면에 접어들며 3년 전 선거전략을 되풀이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에 분노한 반대파가 강하게 결집하는 양상을 띠고, 지난 3일 텍사스주 엘패소에서 일어난 백인우월주의자의 총기난사 사건에도 그가 영감을 줬다는 비판이 커지는 등 역풍이 만만찮다.

 

◆처음이 아니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를 “역겹고 쥐와 설치류가 들끓는 난장판”이라고 묘사했다. 민주당 흑인 중진 일라이자 커밍스 하원 정부감독개혁위원장이 자신의 강경 이민정책을 비판하고, 백악관 보좌진의 개인 이메일 공무사용 의혹 조사를 위해 자신의 딸과 사위에 대한 소환장을 발부한 데 앙심을 품고 그의 지역구인 볼티모어를 비하한 것이다. 보름쯤 전에는 푸에르토리코계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 등 유색인종 출신 민주당 초선 여성 의원 4인방을 향해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미국은 백인만의 땅이라는 관념이 깔린 그의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에 여론은 들끓었다. 4인방 중 3명은 미국에서 태어났고 넷 모두 미국 시민권자라는 점에서 흑인이나 중남미계 등 소수인종 시민들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일한 오마르, 아이아나 프레슬리, 라시다 틀라입

그의 인종주의적 태도는 바로 직전 대통령의 세계관과 견줄 때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4년 “진보적 미국인도 없고 보수적 미국인도 없다. 미합중국 국민이 있을 뿐이다. 흑인도 없고 백인도 없고 라티노, 아시안 미국인도 없다. 미합중국 국민이 있을 뿐”이다라는 통합의 메시지를 설파하며 정계의 중심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나는 세상에서 가장 덜 인종주의적인 사람”이라며 인종차별주의자 꼬리표를 거부한다. 그러나 유색인종 정치 리더와 흑인 유권자에 대한 공격으로 대표되는 차별적 접근법은 트럼프 시대 정치적 역동성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현대 미국의 어떤 대통령도 그처럼 인종을 기준으로 편을 가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 매체 복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NYT 지면에 처음 등장했을 때가 1970년대 흑인에게 부동산 임대를 거부해 소송을 당했을 때였던 점 등을 들어 “그의 (인종적) 편견은 단지 정치적 기회주의가 아니라 그의 인격과 기질, 개인사를 보여주는 실제 요소”라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노림수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백인 유권자 일각의 인종적 편견을 부채질하는 것이 재선 전략의 중심이라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NYT는 지적했다. 3년 전 공화당 선거전략가들은 ‘오바마 현상’을 근거로 소수인종을 포용하지 않고서는 대선 승리가 요원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비(非)백인 유권자를 과감히 포기하고 백인 표를 결집하는 ‘역발상’을 했다. 이제 그는 자신에게 대권을 가져다준 3년 전 전략을 답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6월 시사주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스윙 보터’(부동층)를 잡으려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내 지지기반이 매우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확신을 못 느낀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2015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 태생이 아닐지 모른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멕시코 출신 미등록 이민자들을 ‘강간범’이라고 부르면서 대선 경선판에 등장했다. 이후에도 인종적으로 편을 가르는 메시지를 서슴지 않았다. 버지니아대에서 대통령학을 연구하는 바버라 페리는 트럼프의 이런 전략을 “인종주의자가 되자. 어차피 미국 유권자의 30∼35%는 인종주의자다”라는 판단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대선 투표자 중 백인 비중(73.3%)이 압도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역발상은 유효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백인 투표율은 2012년 64.1%에서 2016년 65.3%로 증가했다. 반면 2012년 66.6%까지 올랐던 흑인 투표율은 2016년 59.6%로 떨어졌다. 상승세를 유지하던 흑인 투표율이 꺾인 것은 20년 만이다. 흑인의 투표 의지를 억누르는 트럼프 캠프의 선거전, 까다로워진 유권자 등록 절차 등이 결합한 결과였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TV토론에서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 20명 중 트럼프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부른 후보는 5명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적 언사는 이미 상수가 된 터라 논란을 다시 부채질하는 것이 득인지 실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미국 진보행동펀드센터가 ‘비효율적’, ‘거짓된 약속’, ‘부자를 위한’, ‘분열적’, ‘부패한’, ‘인종차별적’이라는 6개 낱말을 가지고 여론조사를 했는데, 트럼프가 비효율적이라는 묘사가 가장 많은 응답자를 민주당 후보 지지로 이동시킨 반면 인종차별적이라는 딱지는 가장 적은 수를 이동시켰다. 이런 현상은 흑인 응답자들한테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내년에도 통할까

1976년 인종 분류가 포함된 대선 출구조사가 시작된 이래 백인 유권자의 최소 34%, 평균 40%는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NYT는 전했다. 2016년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백인 표의 37%를 얻었다. 백인 표를 0.5%만 더 가져왔어도 클린턴이 대권을 거머쥐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민주당도 기본적인 백인 지지기반을 갖춘 만큼 비백인 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백인 표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유색인종 유권자 비중이 커질수록 줄어든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 인구는 매일 8000명씩 늘고 있는데, 이 중 90%가 유색인종이다. 게다가 2016년 이후 새로 18세가 돼 선거권을 얻은 비백인 유권자는 700만명에 달한다. 민권변호사이자 정치운동가인 스티브 필립스는 NYT 기고에서 “인종차별주의에 결연히 맞서는 것이 도덕적일 뿐 아니라 선거전략으로서도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 CNN방송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성향 유권자 74%는 내년도 대선 투표에 ‘극도로’ 혹은 ‘매우’ 열정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두 차례 대선 때보다 높은 수치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흑인 투표율이 2014년 중간선거 때보다 11%포인트 증가한 데서 보듯 흑인 유권자들의 투표 의지가 커지고 있다는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코넬대 불평등연구센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적 언사가 몰고 오는 역풍이 지지층 결집의 이익을 상쇄한다고 지적했다. 반트럼프 성향 유권자를 자극해 적극 투표층으로 만드는 한편 부동층을 트럼프 반대파로 몬다는 얘기다. 최근 USA투데이와 입소스 여론조사에서 여성 응답자 4분의 3은 트럼프의 4인방 공격이 “불쾌하다”고 답했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에 큰 공헌을 했던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주 등 ‘러스트 벨트’(쇠락한 제조업 지대)의 백인 여성 53%가 2016년 대선 때는 트럼프에 투표했는데, 2018년 중간선거에서는 49%만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AP통신이 이 지역 여성 30여명과 인터뷰를 했는데, 이들은 소수인종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분열적·모욕적 공격이 미국 대통령다운 태도가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실망감을 표출했다고 한다.

지난 4일(현지시간)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오리건 지구에 피해자들의 신발이 한 곳에 모여져 있다. 뉴욕=AP연합뉴스

인종차별적 동기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이 최근 급증하면서 ‘트럼프 책임론’도 거세지고 있다.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종주의 에너지를 부추기고 이용하는 것을 멈추라”고 촉구할 정도다. NYT가 FBI 자료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백인우월주의자에 의한 총격 사건은 2012년 1건, 2014년 3건, 2015년 3건, 2016년 1건, 2017년 2건, 2018년 5건, 2019년 2건 발생했으며, 모두 105명이 숨지고 110명이 다쳤다.

공화당 일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브레이크 없는 분열적 언행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타임은 전했다. 공화당 정치자문위원이자 여론조사 전문가인 프랭크 런츠는 “(트럼프 시대에) 두드러진 경제 르네상스에서 주의를 돌리는 어떠한 것도 그의 재선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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