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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쇼를 막아라” 블랙리스트 만들고 예방 프로그램 깔고

입력 : 2019-07-28 10:00:00 수정 : 2019-07-28 09: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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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고객에게 노쇼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제주도의 한 카페. 예약자의 예약취소로 음료 60잔이 버려졌다. 인스타그램 캡처.

제5호 태풍 다나스가 비구름을 몰고 온 지난 19일 제주도의 한 카페에 오후 3시쯤 예약 문의가 들어왔다. 대학생들이 국토대장정을 하는데 오후 5시30분까지 따뜻한 음료 60잔을 준비해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카페는 본래 젖은 채로 이용이 안됐지만 딱한 사정을 들은 주인은 음료를 10% 할인해주기로 하고 플라스틱 의자까지 구해오며 학생들을 맡기로 했다. 하지만 예약 20분전 학교 관계자가 카페로 와 “학생들이 못 온다고 한다”며 돌연 예약취소를 통보하고 떠났다. 준비된 음료는 고스란히 카페의 몫이 됐다.

 

‘노쇼’ 소식을 들은 주인은 학교 측에 전화를 걸어 항의하려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고 답답한 마음에 결국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사연을 적었다. SNS 글은 삽시간에 퍼졌고 누리꾼들은 공분했다. 소식을 접한 해당 대학은 곧바로 사과에 나섰다. 카페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후 단체고객 예약을 받지 않는 쪽으로 하려고 한다”며 “‘노쇼’를 막기 위한 예약금도 생각했지만 고객과의 신뢰가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2017년 한 대기업의 노쇼 논란을 불러일으킨 식당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 ‘노쇼’ 피해는 오롯이 업체에게…연간 피해 8조원 추산

 

예약하고 나타나지 않는 ‘예약부도’, 일명 ‘노쇼’(NO-SHOW)는 식당 등을 운영하는 업주들의 오랜 고민이다. 고객이 계획 변경이나 단순 변심 등의 이유로 예약을 취소하면 그 피해는 오롯이 업주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지난 4월 고객이 80만원 상당의 음식을 주문한 후 오지 않는 ‘노쇼’가 발생했다. 준비된 음식 메뉴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레스토랑 관계자는 “이제 결제 금액의 40%정도 예약금을 받고 있다”며 “노쇼를 당한 뒤 고객 블랙리스트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녹색소비자연대가 2016년 11월 음식점, 미용실, 병원, 대리운전 등 394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예약불이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 사업장의 모든 예약 건 중 노쇼 비율은 7.69%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른 사회적 피해도 적지 않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5년 식당, 병원, 미용실 등 5대 서비스업종의 연간매출액과 예약부도율을 활용해 추산한 결과 노쇼가 8조2780억원의 생산손실, 3조3110억원의 부가가치손실, 10만8170명의 고용손실을 가져온다고 분석했다. 대부분 ‘노쇼’가 소비자의 손실로 돌아가지 않아 생산자, 나아가 사회적 비용으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2월 ‘노쇼’ 방지를 통한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소비자 분쟁해결 기준 개정안’을 확정하고 시행에 나섰다. 이에 따라 외식업의 예약취소 보증금이 규정됐고, 고객이 예약 1시간 이내 취소할 때 보증금 전체를 위약금으로 물도록 하는 기준이 생겼다. 하지만 소상공인 사이에서는 고객에게 미리 예약 보증금을 받을 수단이 마땅치 않고, 받는다고 해도 고객과 신뢰가 깨져 예약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로 규정에 대한 실효성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2016년 한국소비자원과 공정거래위원회가 진행한 노쇼 근절 캠페인. 한국소비자원 제공

◆ “노쇼를 막아라”…블랙리스트 만들고 예방 프로그램 깔고

 

서울 종로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예약금은 큰 음식점이나 가능하지 작은 영세업자들이 예약금을 어떻게 받을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특히 이씨는 송년회가 많은 연말이면 ‘노쇼’가 공포로도 다가온다고도 했다. 장사 대목에 예약석으로 손님들을 놓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씨는 “예약을 해놓고 갑자기 다른 스케줄을 잡는 것은 ‘갑질’”이라며 “이번 연말은 아는 사람만 예약을 받기로 했고, 노쇼에 대해서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식당은 노쇼 예방 ‘프로그램’ 설치에 나섰다. 프로그램은 예약시간 전 고객에게 ‘알림’을 보내거나, 블랙리스트 관리, 예약금 설정 등을 통해 노쇼를 막는다. 프로그램을 개발한 ‘테이블매니저’ 최훈민 대표는 “미국에선 음식점을 예약할 때 미리 카드번호를 받고 ‘노쇼’가 발생하면 그걸로 변상조치를 한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호텔이 이런 방식을 사용하지만 규제로 인해 소상공인에겐 허용되지 않고 있다”고 ‘노쇼’를 막기 위한 구조적인 대안을 촉구했다.

 

관련 단체들은 ‘노쇼’를 막기 위해선 예약부도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2016년 소비자원과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 노쇼 근절 캠페인, UCC 공모전, 노쇼 예방 세미나 등 홍보활동에 나선 뒤 386개 업체 예약부도율이 평균 3.6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소상공인연합회도 “노쇼 근절은 소상공인의 피해를 넘어 우리 사회가 선진화된 신용 사회로 도약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제”라며 “2017년 말부터 노쇼 근절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빈기범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노쇼가 사회, 경제적인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아직 한국사회에서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며 “소비자와 업체 간 신뢰를 높이고 서로 책임 있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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