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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인문학산책] ‘왕좌의 게임’ 대너리스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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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14 23:17:16 수정 : 2019-06-14 23: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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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이 끝났다. 8년 만인 것 같다. 저렇게 인간과 신화와 전쟁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드라마가 있냐며 보는 내내 감탄했었다.

햇살 좋고 땅이 좋고 먹을 것이 풍족한 남쪽 사람들은 화려하고 말이 많다. 거기 권력까지 주어지면 대부분은 권력의 양만큼 교활해지고 잔인해진다. 겨울이 오고 있다며 늘 추위와 싸우고 추위에 대비해야 하는 북쪽 사람은 말보다는 직관이다. 그들은 용감하고 쌈박하다. ‘약탈’이 생활양식인 바닷사람들은 거칠고 대담하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그들의 갈등은 전쟁이 되고, 거기에서 모든 인간사가 드러난다. 힘에의 의지라 부를 수 있는 것도 있고, 권력에의 야망 혹은 춤이라 부를 수 있는 것도 있다. 권력이 있으니 배신이 있고, 청춘이 있으니 욕망이 있다. 정의가 있으니 분노가 있고, 전쟁이 있으니 죽음이 있고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체념이 되기도 하고, 분노의 에너지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게 윤회의 수레바퀴가 거칠게 돌아가는 드라마는 눈 뗄 틈을 주지 않았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게 만들었던 것은 주인공인 줄 알았던 인물이 너무 일찍 죽어나가는 것이었다. 죽음의 표정은 왜 그리 다양한지. 허망한 죽음, 기막힌 죽음, 속 시원한 죽음, 찬란한 죽음, 여운이 긴 죽음…. 스타크 가문의 영주 네드 스타크가 시즌1에서 억울하게 참수를 당했을 때는 허망하다 못해 기가 막혔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복수를 감행하는 멋진 아들 롭이 시즌 3에서 더 허망하게 살해됐을 때는 그만 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왜 그렇게 주인공을 죽이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현실이 그렇다고. 할 말이 없다. 현실은 종종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고, 우리의 낭만을 배반한다.

시즌1에서 8까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몇 명의 주인공이 있다. 존이 그렇고, 아리아가 그렇고, 산사가 그렇고, 브랜이 그렇고, 티리온이 그렇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용의 어머니 대너리스다. 그녀는 나라 잃고 떠도는 무지한 공주였다.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밖에 없었던 공주는 권력을 회복하려는 오빠의 욕심으로 인해 말도 통하지 않는 부족장의 부인으로 팔려간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녀가 깨어나기 시작한다. 자기 촉으로 세계를 배우며 자신 안의 내적인 힘을 인지하게 된 여인은 노예를 해방해 사슬을 끊은 자가 되고, 용을 깨운 용의 어머니가 돼 승승장구한다. 불같은 자신의 성격을 알기에 세상사를 차분하게 판단해 조언해줄 사람을 주변에 둘 줄 아는 지혜까지 가졌다. 아무것도 몰랐던 백치미의 여인이 고통을 삼키며 매순간순간 성장해 자기 세상을 넓혀가는 모습이 시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세계가 기다려온 전쟁’이라는 시즌8에서 갑자기 대너리스가 이상해진 것이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지껏의 그녀라면 다시 한 번 성장의 계기가 될 그런 이유로 한 도시를 완전히 파괴하고 도시인들을 몰살했다. 세상을 살리겠다며 죽은 자와의 전쟁도 용감하게 치러낸 여인이 항복한 도시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한 것이다. 왜 자신이 통치해야 할 도시 전체를 불바다를 만들까. 화가 났다. 대너리스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대너리스를 그렇게 소탐대실의 아이콘으로, 욕심만 있었지 어리석기 그지없어 제거해야 할 ‘독선’의 아이콘으로 만들어버린 작가에게 화가 난 것이다. 대너리스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전체 맥락에서 그것은 아니었다.

‘왕좌의 게임’의 매력에 한 축을 담당했던 것은 ‘신화’적 이야기의 구조다. 신화가 허구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원형적 이야기라면 최초의 인간인 숲의 아이들이나, 죽은 이들의 군대이야기까지 모두가 우리의 상징적 사고를 자극하고 있었다. 거기에 용을 깨운 용의 어머니 대너리스는 주요한 상징이었는데 그녀를 폭군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녀가 철왕좌의 주인이 되지 않아도 되고, 죽어도 된다. 그런데 그렇게 매듭 짓는 것은 여지껏의 ‘왕좌의 게임’답지 않다. 서둘러 마무리한 흔적이 완성도를 떨어뜨린 것이다. 맥이 풀렸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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