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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사의 처음과 끝은 '사실상 허위'였다…무너진 신뢰도

입력 : 2019-05-29 07:00:00 수정 : 2019-05-29 08: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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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유전자치료제 고의 조작 확인 / ‘거짓’ 알고도 버젓이 판매 … 바이오 산업 신뢰도 먹칠 / 그동안 “몰랐다” 발뺌했던 코오롱 / 2년전 해당 사실 인지하고도 은폐 / 신약개발 20년 공든탑 한순간 물거품 / 식약처도 부실 검증 책임 불가피
강석연 식품의약품안전처 바이오생약국장이 28일 오전 충북 청주 식약처에서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의 품목허가를 취소한다고 밝히고 있다.

2017년 인보사케이주(인보사)는 유전자치료 시장의 본격 개막을 알리며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코오롱생명과학(코오롱)은 1998년 처음 인보사를 개발하기로 한 뒤 약 20년 동안 1100억원을 쏟아부었다. 정부도 연구개발자금으로 400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2017년 11월 공식 시판된 지 1년6개월 만에 허가가 취소되면서 여기에 들어간 시간과 돈,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8일 발표한 대로라면 인보사의 처음과 끝은 사실상 허위였던 셈이다.

◆신장세포를 연골세포로 허위서류 작성

 

코오롱은 식약처에 신약허가서를 제출하면서 인보사 2액이 연골세포라고 밝혔다. 그러다 지난 3월 미국에서 임상 중인 제품에 대한 유전학적 계통검사(STR)를 실시해 보니 신장세포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국내 사용 세포에 대한 STR 검사에서도 인보사 2액이 신장세포로 확인됐다.

 

제출 서류와 달라진 이유를 조사한 식약처는 애초부터 신장세포였던 것으로 결론내렸다. 최초 세포, 제조용 세포 모두 STR 결과 신장세포였으나 코오롱은 연골세포로 서류를 작성해 제출한 것이다.

2액이 연골세포임을 증명하는 자료도 허위였다. 2액이 1액과 같은 연골세포임을 증명하려면 1액과 2액의 단백질 발현 양상을 비교·분석해야 하는데, 코오롱은 1액과 2액의 혼합액과 2액을 비교했다. 당연히 1액과 2액의 발현 양상이 같다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코오롱은 연골세포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2액 세포에 삽입한 TGF-β1 유전자 개수와 위치가 변동된 사실을 알고도 이를 숨기고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지난 2월까지 연골세포라고 알고 있었다는 코오롱의 해명도 거짓이었다. 코오롱의 미국 자회사인 코오롱티슈진은 2017년 3월 미국 임상용 제품의 위탁생산 과정에서 2액이 신장세포임을 알게 됐다. 코오롱티슈진은 2017년 7월13일 코오롱에 이 같은 검사결과를 이메일로 알렸다. 이는 인보사 품목허가(2017년 7월12일) 하루 뒤다.

 

강석연 식약처 바이오생약국장은 “이메일을 받은 것으로 보아 코오롱은 이미 2년 전에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된다”며 “허가 하루 뒤에 알았더라도 도의적으로 밝히는 게 상식적인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정호상 식품의약품안전처 세포유전자치료제과장이 28일 오전 충북 청주 식약처에서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케이주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바이오업계 신뢰 훼손… 부실 검증 책임도

 

이번 인보사 사태로 국내 바이오의약품 산업의 신뢰는 크게 흔들리게 됐다. 코오롱은 그동안 “몰랐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신장세포를 연골세포로 고의로 속여 허가를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시민단체들은 고의적인 데이터 조작이라는 점이 같다며 인보사 사태를 ‘제2의 황우석 사태’로 심각하게 보고 있다.

 

정부가 바이오헬스 산업을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연구·개발(R&D) 지원 확대와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인보사 사태로 찬물을 끼얹었다는 평가다.

 

감독당국인 식약처도 이번 사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식약처는 국내에서 허가된 신약의 성분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해외에서 들통나면서 뒤통수를 맞았다. 부실검증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뒤늦게 조사를 시작했고 결국 허가 취소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코오롱이 대국민 사기를 벌였다면 식약처가 검증해야 하는데,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국장은 “전 세계 의약품 허가관리시스템이 대부분 서류 검토에 의존하고 있다”면서도 “개발단계에 대한 검증이라든지 검토가 조금 미비했던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부 직원 징계나 책임 범위 등은) 자체 점검을 하겠지만 현재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만큼 추이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투여환자 240여명 25억 집단손배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8일 ‘인보사케이주’(인보사)의 안전성 문제와 관련해 “현재까지 중대한 부작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투여 환자의 불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종양 관련 이상사례 4건 등 부작용이 보고된 것과 관련해 인보사와의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 식약처 판단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식약처는 이날 “국내 임상시험 결과, 임상시험 참여자에 대한 장기추적관찰과 시판 후 수집된 안전성 자료에서 약물 관련 중대한 부작용 사례는 없었다”며 “이 결과와 독성, 임상자료에 대한 전문가 자문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현재까지 안전성 측면에서 큰 우려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시판 후 보고된 이상사례 총 311건은 주사부위 반응(62건), 주사부위 통증(61건) 등 주로 국소적인 부작용이었다는 게 식약처 측 설명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 자료만으로는 특정 제품에 의해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확정할 수 없다”며 “종양 관련 이상사례는 위암종 등 4건이 보고됐으나 약물과의 인과관계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식약처 발표를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식약처도 책임이 있는 당사자로서 업체 측에 보고된 부작용의 인과성 여부 판단만 믿기는 어렵다”며 “보건복지부가 엄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보사 투약 환자들 손배소 제기 허위 서류로 허가받은 것으로 드러난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를 투약한 환자들이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소송 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보사 투여 환자의 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법무법인 오킴스는 코오롱생명과학에 치료비로 사용한 주사제 가격과 위자료 등 총 25억원을 청구하는 1차 손해배상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소송에는 환자 244명이 원고로 참여했다. 오킴스는 현재 2차 소송에 참여할 원고를 모집 중이다. 투약건수가 3700여건이고 1회 비용이 600만∼700만원이라는 점에서 소송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가 28일 코오롱티슈진과 코오롱생명과학의 주권매매거래를 하루 정지했다. 이는 인보사케이주에 대한 식약처의 품목허가 취소 처분 관련 투자자보호를 위한 것으로, 사진은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관계자가 모니터를 확인하는 모습.

◆계약금 반환 등 국제소송 제기 가능성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넷째 자식’이라며 애착을 보였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의 품목허가가 28일 취소되면서 코오롱생명과학의 신약 개발사업이 벼랑 끝에 몰렸다.

 

인보사 품목허가 취소에 대해 코오롱생명과학은 이날 홈페이지에 올린 공식 입장문에서 “17년 전 코오롱티슈진의 초기 개발단계의 자료들이 현재 기준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어 품목허가 제출자료가 완벽하지 못했으나 조작 또는 은폐 사실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식약처의 실사 과정에서 자료 제출 요구 및 현장 실사에 최선을 다해 협조해 왔다”며 “취소사유에 대해서는 회사의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향후 절차를 통해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보사는 이 전 회장이 각별하게 아끼던 제품이다. 2017년 4월 충주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내 인생의 3분의 1을 투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코오롱그룹이 미래먹거리로 역점 육성해 온 바이오사업은 큰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지난해 11월 다국적제약사 먼디파마와 인보사를 일본 지역에 수출하기 위해 6677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중국에 인보사 2000여억원어치를 수출하기로 차이나 라이프 메디컬센터와 계약을 맺기도 했다. 몽골, 마카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을 대상으로 수출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품목허가가 취소됨에 따라 계약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계약금 반환과 위약금 청구 등을 요구하는 국제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10위권의 유망주였던 코오롱티슈진은 이번 사태로 상장폐지 위기에 처했다. 코오롱티슈진은 인보사 원개발사다.

 

이진경·김승환·김범수·조현일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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