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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신흥부유층 ‘돈주’, 권력층과 공생하며 ‘계획경제’ 흔들어 [신통일한국으로 가는 길]

입력 : 2019-05-25 15:00:00 수정 : 2019-05-25 17: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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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북한의 오늘 ② 새로운 계급 ‘돈주’와 시장경제 / ‘시장 제도권 편입·자율성 제고’ / 김정은식 새 경제관리법 이끌어 / 불법·합법 사이 ‘회색지대’ 확장 / 과거 상업시설 국가가 소유하다 / 돈주가 명의 빌려 운영 큰 변화 / 일부 지역 주택 사유화도 인정

#1. 북한 평양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은 대성백화점에는 샤넬, 코치, 오메가, 다이슨 등 고가 브랜드의 제품들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모습을 뽐내고 있다. 이 백화점은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쇼핑뿐 아니라 수영, 사우나, 식사, 게임 등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종합쇼핑몰로 탈바꿈했다.

 

 #2. 북한 당국이 2000년대 초반 이후 도시 개발을 본격화하자 돈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부동산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철거를 앞둔 주택의 ‘딱지’를 웃돈을 얹어 구매하거나 편법으로 지인의 이름을 도용해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보유했다. 투기 열풍으로 10년도 안 돼 주택 가격은 50배 넘게 상승했다.

 

 #3. 북한 주민들도 직접 상점에 가지 않아도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쉽게 물건을 살 수 있다. ‘만물상’ ‘옥류’ ‘내나라’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식품과 화장품, 의약품, 신발 등 필요한 제품을 신용카드로 구매하기도 한다. 판매자에게 상품에 대한 문의나 의견을 남길 수도 있으며, 상품 생산자들 사이에서 가격을 낮추기 위한 경쟁도 활발하다.

 

북한 평양 만경대구역의 광복지구상업중심(센터)에서 주민들이 물건을 고르는 모습. 조선신보

북한의 이런 모습은 여느 시장경제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은 계획경제를 강하게 추진해왔지만 변화의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그간 북한 지도자들은 ‘시장은 자본주의 온상’이라며 사회주의 장벽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이러한 노력에도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주민들의 자구적 경제활동이 시작되면서 ‘장마당’을 중심으로 한 시장화는 당국의 통제와 묵인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확대·심화돼왔다. 조부, 부친과 달리 유학파 출신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직후부터 시장경제의 힘을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시장을 제도권에 편입하고 기업의 자율성 제고를 위한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돈주’가 있다. 돈주는 장마당으로 몰려든 주민을 상대로 부를 축적한 신흥 부유층이다. 당국과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회색지대’에서 공생하고 있다. 민간 은행이 없는 북한에서 돈주는 국영기업이나 개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부업을 하기도 한다. 중국 접경지역의 정보망을 활용해 환차익으로 이익을 거두기도 한다. 무역회사부터 ‘써비차(service+car·사람이나 짐을 나르는 영업차량)’까지 사업 영역도 다양하다.

회색지대는 김 위원장 집권 이후 급격히 확장되고 있다. 대북 제재 여파로 곳간이 바닥을 드러내고 수출길도 막힌 북한은 돈주들의 ‘장롱 속 돈’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외화의 출처를 묻지 말고, 투자를 받고 활용하라”고 지시한 것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과거 북한에서는 국가가 모든 상업시설을 운영했지만 이제는 시장경제 국가와 같은 형태로 돈주가 국영기업의 명의를 빌리거나 국가 소유의 건물을 임대해 직접 인력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사업체를 운영한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 등이 2015년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식당 64.7%, 상점 57.3%, 지방산업공장 25.7%, 중앙공업공장 20.9%가 사실상 돈주와 같은 개인이 국영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위원장 집권 전인 2012년 조사보다 늘어난 수치다.

김 위원장이 공을 들인 평양의 여명거리도 사실상 돈주의 작품이다. 북한 당국은 2016년 3월 착공해 1년여 만에 왕복 8차선 도로에 82층 아파트 등 고층 빌딩 100동이 늘어선 여명거리를 조성했다. 대북제재 속에서도 돈주들은 국영기업의 명의를 빌려 투자하고, 중국에서 건축자재를 신속하게 조달하며 이 대형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돈주들을 등에 업은 김 위원장은 여명거리 외에도 평양에서만 창전거리(2012년), 은하과학자거리(2013년), 위성과학자주택지구(2014년), 미래과학자거리(2015년)를 건설했다.

주택 시장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사회적 혜택의 일환으로 직장을 통해 근로자들에게 주택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돈주는 아파트 건설에 필요한 자금과 자재를 조달하고 그 대가로 아파트 입주권을 받아 일반 주민에게 그 아파트를 판매하며, 건축 과정에도 참여한다. 돈주의 투자수익은 통상 200∼300%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이나 기업소 입장에서도 국가 할당량을 채울 수 있고 근로자들의 주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조선신보가 18일 공개한 평양 대성백화점. 연합뉴스

돈주들의 주택 사유화를 눈감아주던 북한 당국은 지난 3월 함경북도 나선경제특구에 한정해 주택의 사유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까지 했다. 이 지역 돈주와 노동당 간부들은 자본과 권력 등을 총동원해 기존 주택의 입주권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KDB미래전략연구소 한반도신경제센터 김철희 연구위원은 “(이번 조치는) 북한이 주택의 개인 소유권을 처음으로 인정한 정책으로, 기존의 영구임대 형태로 입주한 주민에게 일시불 또는 25년 분할납부 조건으로 소유권을 주는 것”이라며 “북한 정부는 주택판매를 통해서 민간자금을 흡수하고 재산세 등 세수확대로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시범실시 후 법적·제도적 보완을 거쳐 대도시로 확대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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