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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선거보다 다음 세대 생각 … 지혜와 경륜 모아야”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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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18 15:07:29 수정 : 2019-05-18 22: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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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현 헌정회장 / 기자에서 정치인으로 / 동아일보 정치부 차장 시절 / 美 한반도 정책 비판글 쓴 뒤 / 靑 권유 받아들여 총선 출마 / 어릴적 장래 희망이 ‘정치가’ / 정치권 불신 안타까워 / 여야 정쟁 탓 국민 신뢰 낮아 / 국가적 애환 공유 의식 필요 / 조선 말 대원군·민비 다툼에 / 나라 무너진 아픔 되새겨야 / 원로들 복지 증진 주력 / 역대 국회의원 1080여명 중 / 생활고 시달리는 이도 많아 / 헌정회 복지재단 설립 추진 / 다양한 경험 전수 방안 검토

지난 3월 대한민국 헌정회의 수장으로 선출된 유경현(79) 헌정회장은 “헌정회는 역대 국회의원 1080여명의 국민공동체”라며 “정권(政權)보다 국권(國權)의 보루로, 다음 선거보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원로들의 울림을 이어 가도록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유 회장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헌정회 회장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헌정회 회원들의 명예, 복지, 역할 결핍에 목마름을 적시는 작은 샘터가 되고 행복열차의 기적을 울려보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유경현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헌정회 회장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헌정회 회원들의 명예와 복지, 역할 결핍에 목마름을 적시는 작은 샘터가 되고 행복열차의 기적을 울려보겠다”고 강한 의욕을 보였다. 이재문 기자

3선 의원 출신인 그는 “야구 경기에서 9회 중 8회 타석에 선 선수처럼 긴장감과 사명감을 갖는다”며 “타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각오를 피력했다. 이어 “인생 80세에 여생이 길지 않은데 헌정회 회장이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다짐했다.

유 회장은 “한국이 절대 빈곤, 국토분단, 동족상잔이라는 엄청난 비극의 수렁에서 세계 경제 10위권에 오르기까지 정치권이 헌신하고 기여해 왔다”며 “그런데도 정치권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낮아 무척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는 여야 정당들이 정권을 놓고 투쟁에 몰입하기 때문이라는 게 국민들의 판단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여야가 벌써 내년 총선을 의식해서인지 끊임없는 정쟁으로 국회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며 “다음 선거도 중요하지만 현재까지 이룩한 (국가적)성취를 잘 관리해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와 경륜을 모았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여야 의원은 국가의 애환을 공유한 동시대인 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정권을 넘어 국권을 지향하는 거시적이며 역동성의 정치를 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유 회장은 “조선 말기에 대원군과 민비가 다툴 때 나라는 침몰해버렸다”며 “지금에 와서 대원군이 옳으니, 민비가 옳으니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청나라 군대가 포위한 남한산성에서 척화파(김상헌)와 주화파(최명길)의 적전 논란 속에 왕(인조)이 무릎을 꿇었다”며 “이런 비극적인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금 나라는 안팎으로 위난에 처한 상황”이라며 “지도층들이 정말 모든 것을 바쳐 국가를 지키고 살리는 데 뜻을 모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라고 했다. 다음은 유 회장과의 일문일답.

―헌정회 회장으로서 각오는.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제이며, 국회의장도 사실상 2년 단임이다. 헌정회장도 2년 단임제를 제도화하겠다고 선거 때 회원들에게 약속을 했는데, 헌정회 정관을 개정할 계획이다. 회원들의 명예, 복지, 역할 결핍에 목마름을 적시는 작은 샘터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병태 회원이 12억1500만원을 헌정회 장학재단에 기증해 2년 동안 2, 3세인 초·중·고 160명에게 1억10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특히 김 회원의 자녀들이 별도로 헌정회에 복지기금으로 3억원을 기부했고, 현재까지 6억5000만원의 복지기금을 마련했다. 헌정회 복지재단을 추진 중이며 행복열차의 기적을 울려보겠다. 헌정회 회원들이 쌓은 폭넓고 다양한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6·25전쟁 중 현역 의원 84명이 납북·월북되거나 실종됐다.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예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6·25 직후에 피살된 의원도 2명이다. 현재 와병 중인 회원이 60여명이며, 한 많은 생을 스스로 마감한 전직 의원은 6명이다. 80대 이상의 회원이 330여명이며 컨테이너에서 기거하는 등 생활고에 시달리는 회원이 적지 않다. 369명이 연로지원금(120만원)을 받는데 이 중 11명은 전액 압류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언론계에 있다가 정계에 뛰어들었는데, 동기는 무엇이었나.

“1978년 미국은 지미 카터 대통령 재임 시였다. 당시 카터 대통령은 한국의 인권에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그때 한국 정부는 굉장히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일반 국민들은 미국이 한국을 우방으로서보다 다른 의미에서 압박을 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아일보 정치부 데스크였던 나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칼럼을 썼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대통령이 교체될 때마다 일관되지 않게 바뀐 점을 지적했다. 1905년 가쓰라 다로 일본 총리 겸 임시 외무장관과 윌리엄 태프트 미국 국무장관이 비밀협약을 했는데 미국의 현안이었던 필리핀을 미국의 영향권으로 인정하되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복속을 양해한 내용을 처리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1905년 을사늑약이 이뤄졌고 1910년 한일합방까지 이어진 비극의 출발이었다는 점도 상기했다. 6·25 때 유엔(UN)군으로 참전한 미국은 전쟁이 끝난 후 미군 일부를 철수했다. 그 후 ‘닉슨 독트린’으로 1개 사단을 한국에서 철군했다. 미국의 여론과 정권에 따라 좌우되는 한국의 안보는 대단히 불안정하다고 생각했다. 워싱턴의 50∼60㎞ 북쪽에 소련군 수십만이 포진해 있다면 미국의 인권이 정상적인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겠는가.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의 안보적 긴장 속에서 한국 인권의 제한적 요건에 대해 미국이 일방적으로 비판만 하는 것은 재고할 여지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칼럼이 신문에 실린 후 청와대 측에서 10대 국회의원 총선에 출마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있었고, 고민 끝에 현실 정치에 참여했다. 의사인 아버지가 지역 선거관리위원장이었는데 어릴 적부터 선거 관련 얘기를 들어 정치에 관심과 흥미도 많았다. 초등학교 학적부에 장래 희망이 ‘정치가’로 적혀 있었다.”

―12대 국회 때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개편됐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

“그때 민주정의당 대변인이었는데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 협상 과정에 참여했다. 여당인 민정당은 심명보 의원, 통일민주당은 황낙주·박일 의원, 평화민주당은 김봉호·허경만 의원 등이 협상대표였다. 여당 내에서도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꾸는 데 굉장히 논란이 많았고, 현역 의원은 여야 가리지 않고 대부분 중선거구제를 유지하자는 입장이었다. 야당의 협상 대표들도 내부적으로 중선거구제를 선호했다. 한 선거구에서 1∼3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는 인구편차와 사표를 줄이고 여야 대립 완화, 지역감정 둔화 등 상당히 합리적인 제도였다. 하지만 여야 수뇌부의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결국 처리됐다. 모 중진 학자가 유력 야당 총재에게 소선거구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유했고, 이 말을 들은 그 총재는 앞장서서 밀어붙였다. 다른 야당 총재도 소선거구제에 찬성하는 편이었다. 소선거구제로의 개편안은 여야 협상 과정에서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국회에서 큰 무리 없이 통과됐다.”

―지역감정으로 정치적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13대 총선 때 호남권에서는 당시 여당 후보 전원이 낙선했다. 그때 불었던 지역정치 바람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역감정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에도 있다. 우리나라가 특히 강한 이유는 미국 사람들의 평균적인 가치는 자유인 데 반해 한국 사람들은 평등이기 때문이라는 견해들이 있다. 일본 사회는 수직적 구조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수평적 구조라는 점도 다르다. 미국, 일본은 어떤 임무를 맡기면 그 사람이 오래하도록 하는데, 우리나라는 ‘왜 너만 하느냐, 나도 하자’는 평등의식이 팽배하다. 이는 경쟁의 에너지도 되지만 평등성에 따른 반작용도 있다.”

―정치에 미련이 있었을 텐데.

“미련이 전혀 없을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정치를 비관적으로 보면 ‘무상’하지만 낙관적으로 보면 ‘역동적인 무대’라고 할 수 있다. 파란만장을 겪으면서도 역사의 생태계 한 자락에서 많은 다채로운 풍경을 지켜볼 수 있어 지루하지 않은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정치 지도자를 꼽는다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많은 세계명작들이 진열돼 있다. 작가들이 세상을 떠난 뒤 60년 후에 평가를 해 작품을 선정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치인도 사후 60년이 지난 뒤 평가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해공 신익희 선생이 돌아가신 지 63년이 됐다. 해공에 대한 정치적인 평가가 객관화, 합리화될 공간과 시간이 마련됐다고 본다. 해공이 가장 비판을 적게 받는 정치인이다. 해공은 광복 후 귀국해 ‘나는 독립 운동을 하느라 면(面) 행정도 한 번 경험하지 못했다. 국민 동포들은 일제하에서 얼마나 상상할 수 없는 곤욕을 치렀겠는가. 일제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지 않았다면 그 사람들의 활동과 경력을 건국과정에 최대한 활용하자’고 호소했다. 화합과 포용의 모습이었다.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땅 한 평, 집 한 칸이 없을 정도로 청렴했고, 중요한 시기에 결단력이 있는 정치인이었다. 번쩍번쩍 빛나지 않았지만 원만하며 합리적인 어른으로 훌륭한 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 김구 선생도 훌륭한 어른으로 역사의 광장에 모셔야 하는데 두 분을 싸움 붙이는 모양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두 어른을 민족의 거성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이 인물 평가를 하며 척박성을 드러내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인물 평가는 합리적, 객관적, 계량적, 역사적인 관점 등 총괄적인 시각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말해달라.

“얼마 전 총리공관에서 만났는데 이 총리가 나와 다섯 가지가 겹친다고 말하더라. 남쪽(호남)에서 올라왔고, (서울대 법대)대학,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의원 출신으로 같은 헌정회 회원인 점을 거론했다. ‘이 총리가 저 자리에 오를 때까지 많은 노력을 했다’는 얘기들이 주변에서 나왔다.”

―학교 동기들을 소개하면.

“경기고(54회) 동기 중 의원 출신은 나를 포함해 9명(박찬종, 이상배, 유흥수, 이태섭, 남재두, 김영구, 정남, 이재우)이다. 서울 법대(16회) 동기 가운데 14명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강용식, 강우혁, 김광일, 김기수, 김기춘, 김도언, 김영진,유흥수, 원철희, 이상배, 정장현, 조찬형, 차수명 전 의원 등이다. 동아일보 입사 동기 10명 중 최재욱, 이종률, 이상하 전 의원 등 4명이 국회에서 활동했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

 

유경현 헌정회 회장은…

△전남 순천 출생(1939년) △경기고, 서울대 법대 졸업 △동아일보 정치부 차장 △제10, 11, 12대 국회의원 △국회 경제과학위원회 위원장, 국회 대통령직선제 개헌특위 위원 등 역임 △민정당 대변인·원내수석부총무 등 역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총장(장관급) 역임 △대한민국 헌정회 부회장·정책위의장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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