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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버리고 행패 부리고… '진상 관광객'에 지구촌 몸살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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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18 22:00:00 수정 : 2019-05-18 19: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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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 ‘관광 공해’ 신음 / 스웨덴 찾은 중국 관광객 홀대 주장 / 중국대사관서 사죄·보상 요구했지만 / 현장 영상 공개뒤 반전… 외교 갈등 / 멸종 위기동물 밀반출·유적서 물장구 / 규정 미준수·부주의 사망사고도 빈번 / 中선 승객 실수로 버스 폭발 26명 숨져 / 몰려드는 관광객에 지역사회 삶 타격 / 홍콩선 “中 본토 사람 오지 마라” 시위 / 일부 국가 관광세 부과·인원수 제한

중국인 증(曾)모씨는 지난해 9월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의 한 호텔을 부모와 함께 찾았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에 적었다. 당초 그달 2일 오후 2시부터 해당 호텔에 투숙할 예정이었는데, 같은 날 자정을 갓 넘긴 시간 호텔에 도착해 입실하기 전까지 로비에 머무르려 했으나 호텔 측이 이를 거부하고 경찰을 불렀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자신의 가족을 강제로 끌어내 경찰차에 태워 공동묘지 인근에 내려놓았다고 증씨는 주장했다.


증씨의 사연이 알려지며 중국은 들끓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환구시보 등 중국 매체들은 “호텔 측이 폭력적으로 그들을 쫓아냈다. 경찰이 그의 부모를 구타했다”고 선정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스톡홀름 주재 중국 대사관은 한술 더 떠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며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사건 발생 보름 후 상황은 뒤바뀌었다. 현장 영상과 목격자 진술이 나오면서다.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에 따르면 입실시간보다 너무 일찍 도착한 증씨 가족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로비의 소파에서 잠을 자려 했고, 호텔 측이 이를 거절하며 다툼이 벌어졌다고 스웨덴 현지 매체가 목격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흥분한 증씨가 “경찰이 사람을 죽인다”고 외치는 등 일가족이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해 경찰을 불렀고 경찰도 구인 과정에서 증씨 부모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등 상황을 수습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 촬영 영상은 증씨 부모가 길바닥에서 큰 소리로 우는 모습을 담고 있다. 경찰이 이들을 내려놓은 장소도 지하철역이 있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원 내 묘지였다며 과장된 표현이었다고 현지 매체는 전했다.

한복입고 거리를 거니는 관광객들. 세계일보 자료사진

‘관광 공해’라는 말이 있다. 다른 지방이나 나라를 구경하는 행위를 말하는 단어 ‘관광’에, 산업·교통 발달에 따라 사람이나 생물이 입게 되는 여러 가지 피해를 뜻하는 단어 ‘공해’가 합쳐져 생겨난 조어다. 세계 각국의 관광 산업이 발달하며 관광객이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과잉 관광’이 대표적인 예다. 정도가 지나친 행위를 일삼는 ‘진상 관광객’도 일종의 관광 공해다. 이들이 쓰레기를 버리거나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증씨의 사례처럼 사소한 갈등이 국가 간 외교 분쟁으로 번지기도 하고, 관광객들이 규정을 지키지 않아 수십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관광 공해로 지역사회가 몸살을 앓기 시작하자 더 이상 관광객이 늘어나지 않도록 각종 제한 조치를 가하는 국가들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로 오라’ 관광 유치 열 올려온 세계 각국

증가하는 관광객은 국가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외국 관광객들이 관광지에서 쓰는 돈은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직간접적인 고용 창출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리스, 이탈리아, 이집트처럼 관광이 주요 수입원인 나라도 존재한다. 그리스 국민 5명 중 1명은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전 세계 각국은 자국 홍보에 힘썼다. 폐쇄적인 것으로는 손에 꼽히는 북한도 발 벗고 나섰다. 관광업은 북한의 주 외화벌이 수단일 뿐 아니라, 자국 내 관광은 당국이 감시·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지난 3월27일에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막한 베트남국제관광박람회(VITM)에 처음 참가했다. 지난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형성된 베트남·북한 간 우호 분위기를 관광객 유치에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는 최초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백두산 하이킹과 캠핑을 허가하기도 했다. ‘세계 최후의 공산국가’로 불리는 쿠바는 2017년 7월 중단된 신규 자영업 면허 발급을 지난해 12월부터 재개했다. 식당·술집·민박·운수업 등 소규모 자영업 면허를 다시 발급해 국영기업 근로자를 감소시키는 동시에 관광산업 진흥을 꾀한 것이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문화에 엄격한 제약을 가해오던 중동국가들도 달라지고 있다.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주도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엔터테인먼트’를 ‘새로운 석유’로 표현할 만큼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사우디 엔터테인먼트청(GEA)이 연 사업계획 발표행사에서 사우디를 세계 10대 ‘엔터테인먼트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데 이어, 지난 3월에는 스포츠 경기나 문화 행사 등에 참석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전자비자 발급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한시적으로 비자 발급 수수료를 미부과(태국)하거나 무비자 입국을 허용(미얀마)하는 등 관광객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입국 문턱을 낮추는 국가들도 나왔다.

이러한 각국의 노력 끝에 지난해 세계 관광객은 전년대비 6% 증가해 사상 최초로 14억명을 돌파한 것으로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는 집계했다.

◆관광 공해에 몸살 앓는 지역사회

관광객 규모가 증가하며 진상 관광객들의 모습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AFP통신,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3월 한 러시아 관광객은 ‘멸종 위기종’인 두 살배기 아기 오랑우탄을 애완용 동물로 키우기 위해 밀반출하려다 인도네시아 공항에서 체포됐다. 지난해 8월에는 한 남성 관광객 일행이 옷을 벗은 채 로마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국보급 유적 ‘조국의 제단’ 분수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고 음료수를 마셔, 로마 경찰이 이들을 공개 수배하기도 했다. 같은 해 스페인 휴양지 베니도름을 방문한 영국인 관광객들은 재미 삼아 노숙인에게 100유로(약 13만원)를 주고 이마에 문신을 새기도록 해 논란이 일었다.

규정 미준수나 부주의로 인한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 3월22일 26명의 목숨을 앗아간 중국 후난성 고속도로 관광버스 화재는 승객 천모씨가 가지고 있던 불법 인화 물질에 실수로 불이 붙어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달 미국 유명 관광 명소인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니언에서는 절벽 끝에서 사진을 찍으려던 한 홍콩 관광객이 발을 헛디뎌 305m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홍콩 시민단체 회원들이 중국 관광객 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SCMP 캡처

관광객 증가로 직접적 피해를 받는 지역사회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중국 본토와 홍콩, 마카오를 잇는 강주아오 대교 개통 직후인 지난해 11월 중국 본토 관광객들이 밀려들며 삶의 질이 나빠지자 일부 홍콩인들은 시위에 나섰다. 시위에 참여한 홍콩 란타우섬 퉁청 지역주민 제씨는 “질이 낮은 방문자들 때문에 지역민들의 삶이 크게 지장받고 있다”며 “퉁청은 조용한 곳이어서 이사를 왔는데 이제는 거리에 나가기조차 싫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울분을 토했다. 사진을 찍으려 비키니 차림으로 종교시설에 들어가거나, 유명 관광지 조형물에 올라가는 등 신성 모독, 문화재 훼손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네덜란드에서는 관광객 증가로 인한 시민 불편을 이유로 암스테르담의 랜드마크인 ‘I amsterdam’ 글자 조형물을 치우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물가와 지가 상승으로 토착민들이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밀려나기도 한다. 포르투갈에서는 관광객들을 위한 단기 임대주택이 급증하며 살 집을 찾기 어려워진 현지 주민 수백명이 지난해 9월 가두 행진을 벌였다.

◆이어지는 관광 제한 조치

관광객이면 가리지 않고 손을 뻗던 세계 각국도 관광 공해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하자 각종 제한 조치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인원 수 제한 조치가 대표적이다. 필리핀 정부는 환경 정화를 이유로 6개월간 전면 폐쇄했던 유명 휴양지 보라카이섬을 지난해 10월 재개방하면서 하루 허용되는 최대 관광객 수를 1만9000명 정도로 제한했다. 지난 2월 SCMP에 따르면 중국 티베트 자치구 정부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대한 일반 관광객 출입을 쓰레기를 완전히 치웠다는 별도의 통지 전까지 무기한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모차르트의 도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도 관광객 수 제한을 고려 중이라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보도했다. 지난해 인구 15만명의 잘츠부르크를 찾은 관광객은 900만명이다. 특히 중국인 등 당일치기 단체 관광객들이 떼로 몰려 다니며 거리와 공중 화장실을 점령하면서도, 음식·숙박·기념품 등에는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자 주민들의 불만이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관광세를 부과하는 나라들도 속출하고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지난 1일부터 외국인 관광객에게 방문 시점에 따라 3유로(약 4000원)에서 5유로의 방문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일본 역시 지난 1월7일부터 모든 자국민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항공기나 선박으로 출국 시 1인당 출국세 1000엔(약 1만1000원)을 내도록 하고 있다. 인도 정부도 최근 유명 관광지인 타지마할의 입장료를 인상했다.

관광객 안전과 자국민·문화재 보호를 위해 규제를 가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는 방목지를 산책하는 관광객들이 종종 소 떼의 공격을 받자 지난 3월 관광객들이 지켜야 할 ‘행동 강령’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탈리아 로마시는 문화재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관광객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다시 로마를 방문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임국정 기자 24hou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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