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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과 모텔 갔다 '도둑' 몰린 女, 헌재서 '누명' 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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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09 10:00:00 수정 : 2019-05-09 01: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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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해 男과 모텔 들어간 女, 놀라서 방 뛰쳐나가 / 男의 휴대폰·지갑 들고 나갔다가 '절도' 용의자 몰려 / "경황 없어 내 것으로 착각" 해명에도 檢 '기소유예' / 헌재, "수사기록만으론 절도 의사 있었다 단정 못해" / 청춘 남녀, "술이 웬수"라는 어른들의 경고 명심해야

서로 사귀기로 한지 2주일쯤 된 남녀가 함께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모텔에 갔다. ‘강제성’ 같은 건 없었으나 둘 다 너무 취한 상태라는 점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잠자리 도중 여자가 먼저 방을 떠났고 혼자 남은 남자는 지갑이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됐다. 화가 난 남자가 경찰에 신고하며 어쩌면 ‘달콤한 첫날밤’으로 기억될 뻔했던 일이 그만 ‘악몽 같은 형사사건’으로 비화하고 말았다. 청춘 남녀들은 정말 ‘술이 웬수(원수)’라는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할 듯하다.

 

◆술로 시작해 괜찮았던 분위기, 모텔 입실 후 '반전'

 

대학원생인 A(여)씨는 2016년 12월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서울 강북의 한 클럽에서 그녀보다 2살 많은 B씨와 처음 만났다. 서로 호감을 느낀 남녀는 전화번호 등을 주고 받았다. 2주일가량 연락만 하고 지낸 두 사람은 해가 가기 전에 다시 볼 것을 약속하고, 12월 말 어느 날 저녁 드디어 재회해 술을 마셨다.

 

그런데 지나친 음주가 그만 연애에 ‘독’이 되고 만 걸까. 밤이 되어 술집 근처 모텔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분위기는 불과 한두 시간 만에 돌변했다.

 

“경찰이죠? 함께 여관에 간 여자한테 도둑을 맞았어요. 관계를 갖던 도중 갑자기 ‘가야겠다’며 옷을 챙겨 입었는데 그때 내 휴대폰과 지갑까지 챙겨 넣은 것 같아요. 지갑 속 돈이며 체크카드, 다 없어졌어요. 여자 이름은 ○○○이고요, 전화번호는….”(B씨의 112 신고 내용 중)

 

밤늦게 B씨의 다급한 신고를 접수한 경찰관이 ‘용의자’로 지목된 A씨한테 2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A씨는 매번 횡설수설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몇 시간 뒤에야 상황 파악이 대충 됐는지 이번엔 A씨가 먼저 경찰로 전화해 “직접 경찰로 가서 해명을 하겠다”고 했다.

 

자정이 지난 시각 잔뜩 긴장한 A씨가 부모와 함께 경찰 지구대에 출석했다. B씨 소유의 휴대전화와 지갑을 경찰에 돌려준 A씨가 밝힌 몇 시간 전의 상황은 이랬다.

 

“B씨와 술을 마셔 솔직히 저녁 8시 이후로는 아무 기억도 없어요. 정신을 차리자 어두운 방에서 B씨가 나를 막 누르고 있어 황급히 모텔을 빠져나왔죠. 경황이 없어 B씨의 휴대폰과 지갑을 내 것인 줄 잘못 알고 가지고 나왔을 뿐입니다.”(A씨의 경찰 진술 내용 중)

 

◆헌재, "정말로 훔칠 의도 있었을까?" 女 손 들어줘

 

어쩌면 여기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일은 A씨가 반환한 물품과 B씨가 “도난당했다”고 신고한 물품이 서로 불일치하면서 결국 형사사건이 되고 만다. B씨는 “지갑 속에 체크카드 2장과 현금 10만원이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B씨가 돌려준 지갑 속엔 체크카드가 1장만 있고 돈은 아예 없었다.

 

이 점에 관해 경찰이 A씨를 추궁했으나 그녀는 “술에 취해 기억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절도 혐의로 입건된 A씨는 검찰로 송치된 뒤 추가 조사를 받고 2017년 3월 ‘기소유예’에 처해졌다. ‘절도 혐의 자체는 인정되나 여러 정상을 참작해 형사처벌은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처분이다.

 

“어쩌다 술 때문에 내 인생이….” 몹시 억울했던 A씨는 2017년 6월 헌법재판소에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취지의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관들이 수사기록을 살펴보니 A씨가 사건 당일 술에 취해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한 듯했다. A씨는 여관을 나선 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며 반대 반향의 버스에 오른 사실이 폐쇄회로(CC)TV 조사 결과 드러났다. 단 둘만 있던 방에서 먼저 나가며 남의 물건에 손을 대면 즉각 ‘절도 용의자’로 특정될 거란 점을 대학원생인 A씨가 모를 리 없었다.

 

B씨 지갑 안에 그의 주장처럼 체크카드 1장과 현금 10만원이 있었는지는 불분명했다. B씨는 처음엔 도난당한 현금이 35만원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10만원으로 수정하는 등 약간 오락가락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최근 재판관 9명 전원일치로 “검찰은 A씨한테 내린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이로써 무혐의 처분이 확정된 A씨는 ‘누명’을 벗게 됐다.

 

헌재는 “A씨의 경제력(중산층 가정), 학력(대학원생), 전과(없음) 등을 고려하면 남의 물건을 훔칠 만한 동기가 분명치 않다”며 “사건 수사기록만으로는 A씨의 절도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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