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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칼럼] 후퇴하는 대한민국의 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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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28 23:09:12 수정 : 2019-04-28 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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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사건·버닝썬 사태… / 법집행 객관성·형평성 구멍 / 법치·민주주의 수호자는 국민 / 위법행위 감시·견제 앞장서야

민주화 이후 30년,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보이던 민주주의가 최근 큰 혼란을 보이고 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 있지만 법치의 미숙이 가장 중요한 원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강했고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과 노력이 컸던 것에 비하면 법치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법은 지배층의 도구라는 왕조시대의 법의식이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의 독재정권을 통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라는 인식으로 굳어졌고, 그 결과 눈치껏 법을 위반하는 것이 영리하게 사는 방법이라 믿는 국민이 적지 않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헌법의 양대 기본원리이며 상호의존적이다. 민주주의 없는 법치주의는 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한 공정한 법을 만들기 어렵고, 법치주의 없는 민주주의는 혼란과 방종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 헌법학

물론 민주화 이후 법치주의도 적잖은 발전을 보였다. 법제도 개선됐고 헌법재판을 통해 잘못된 법이 합리적으로 통제될 수 있게 됐다. 국민의 법의식 개선도 불법적인 폭력시위의 감소를 통해 확인될 수 있었고, 민주주의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법치를 뿌리내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기도 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혼란에 빠지면서 법치주의도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의 이른바 국정농단은 민주주의의 퇴보이며 법치주의의 기능상실이었다. 국민의 민주의식·주권의식을 기초로 대한민국의 저력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했지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난맥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과거에 비해 집회·시위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주말의 광화문과 시청 인근은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으며 시민의 불편은 장기화되고 있다. 더욱이 민노총의 국회 담장을 허무는 불법·폭력시위는 시위문화의 퇴행을, 나아가 법치의 후퇴를 심각하게 우려하게 만든다.

사회 곳곳에서 법 집행의 객관성과 형평성을 우려하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졌다. 유성기업 상무 폭행사건에서 경찰의 방관도 그렇고, 김학의 전 차관 사건에 대한 각종 의혹이나 최근 버닝썬 사건을 둘러싼 세간의 논란도 그렇다. 그 하나하나는 어쩌다 있을 수 있는 사건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이들 전체를 우연이라 볼 수는 없으며 대한민국 법치의 후퇴를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과연 민주주의 혼란이 먼저인지, 아니면 법치주의 약화가 먼저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양자가 연결돼 있으며,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서로를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양자를 악순환이 아닌 선순환의 구도로 만드는 것은 대한민국과 국민의 장래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양자택일, 또는 선후관계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근본가치를 지켜주는 것이 법치주의이며, 법치가 집권세력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기에 양자는 함께 발전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권력에 대한 신뢰가 아닌 불신에서 출발한다. 삼권분립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강조하며, 어떤 권력자도 제왕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같은 의미다. 민주국가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 등이 아닌 국민이 주권자이기 때문이며, 이에 국민 위에 누구도 군림할 수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수혜자이자 수호자는 결국 국민이다. 국민 스스로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와 노력이 없다면 어느 순간 민주주의도, 법치주의도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국가는 혼란과 무질서에 빠지거나 독재화된다. 국민의 ‘헌법에의 의지’가 강조되는 이유이다.

지난 25일은 ‘법의 날’이었다. 이제 우리 국민도 법치주의에 대해서도 냉소 대신에 열정을 가져야 한다. 민주주의에 못지않게 법치주의가 국민의 인권을 위해, 그리고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민주주의에 못지않은 믿음과 열망을 가질 때, 21세기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초가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 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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