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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공유는 '영웅' 무반응은 '반역'…'음란물 천국' 된 단톡방

입력 : 2019-04-28 11:15:35 수정 : 2019-04-28 13: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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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단톡방은 ‘판도라의 상자’?/ 전문가 “시민 인식 전환과 플랫폼 통한 물리적 제재 함께 이뤄져야”

4년째 연애 중인 20대 여성 김모씨는 최근 남자친구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이하 단톡방)을 무심결에 봤다가 깜짝 놀랐다. 평소 김씨도 알고 지내던 남자친구의 지인들이 단톡방에서 입에도 담기 힘든 수위의 음란물을 공유하고 있던 것. 김씨는 “연예인과 일반인의 노출 사진을 올려놓고 ‘얼평(얼굴 평가)’, ‘몸평(몸매 평가)’은 기본이었고 몰카(불법 촬영물)도 공유하고 있더라”며 “남자친구에게 말하니 오히려 ‘왜 남의 사적인 대화를 몰래 보냐. 남자들은 다 이렇다. 직접 성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며 화를 내더라. 내가 잘못한 건가 당황스러웠다”고 적었다.

 

그런가 하면 30대 직장인 박모씨는 결혼을 약속했던 남성의 휴대폰을 몰래 보고 파혼을 결정했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회사 동료들과의 단톡방에서 ‘안마방’, ‘오피X’ 등 유흥업소 정보를 나눈 걸 보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며 “남자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긴 결코 간 적이 없다며 잡아떼던데 한 번 깨진 신뢰를 복구할 수 없어 파혼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최근 인기 그룹의 빅뱅의 전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와 가수 겸 방송인 정준영 등 일부 연예인의 카톡방에서 불법 촬영된 성관계 영상이 공유되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가해로 볼 수 있는 내용 등을 공유한 게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음란 단톡방 문화’는 비단 일부 그릇된 소수 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 남성들 사이에서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는 범법 행위가 될 수도 있는 것을 친한 사람들끼리의 ‘놀이’ 정도로 생각하는 문화와 무관치 않다. 

 

연세대 성희롱 단톡방.연세대총학생회 제공

◆남성 단톡방은 ‘판도라의 상자’?... ‘성희롱 단톡방’으로 얼룩진 대학가

 

28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모바일 메신저는 온라인 성폭력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다. 15~50세 남녀 2000여 명 중 온라인에서 원치 않는 음란물을 전송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은 절반(58.3%) 이상이었는데, 메신저로 경험했다는 비율이 34.2%에 달했다.

 

‘지식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가는 오래전부터 성희롱 단톡방으로 몸살을 앓았다. 수면 위로 본격화한 것은 2014년 국민대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단톡방에서 나눈 성희롱 대화가 여론에 알려지면서부터다. 이어 고려대, 연세대, 서울대, 홍익대 등에서 남학생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 논란이 됐다.

 

가해자들은 서로 알고 지내던 여학생들을 표적으로 삼아 몰래 사진을 올리고 낯 뜨거운 대화를 해 공분을 샀다. 2016년 8월 서강대 한 학과 단톡방에서 남학생들이 술에 만취해 잠든 여학생의 사진을 공유한 뒤 “여자냐? 과방으로 데려가라” “형 참아” “못 참는다” 등의 성희롱을 해 문제가 됐다.

 

같은 해 7월 서울대 남학생들도 단톡방에서 낯 뜨거운 대화를 쏟아냈다. 채팅방 안에는 여자 회원도 있었지만, 남학생들은 동기 여학생들의 사진을 올리며 “이 가슴 진짜일까”, “논평 좀 해봐라” 등의 성희롱적 발언을 여러 차례 하기도 했다. 2017년 3월 동국대에선 남학생들이 단톡방에서 특정 여학생을 “야동(야한 동영상) 배우 닮았다”고 하거나 “잠실에서 교배시키자”라고 한 사실이 알려져 공분이 일기도 했다.

 

‘정준영 단톡방’ 회원으로 논란이 된 연예인들. (사진 왼쪽부터) 가수 승리, 정준영, 최종훈, 로이킴, 에디킴

◆불법공유자는 ‘영웅’, 반응 없는 사람은 ‘반역자’가 되는 단톡방

 

‘한샘 성폭행 논란’, ‘양예원 미투’, ‘정준영 카톡방’ 등 성폭력 사건이 이슈가 될 때면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OOO 동영상’이란 검색어가 우위를 점하는 일이 잦다. 단톡방에선 “영상 본 사람 있냐”, “공유해달라”는 메시지가 빈번하고 이를 구해 불법공유하는 사람은 단톡방 멤버들 사이에서 떠받들어진다. 반감이 드는 사람도 집단 내에서 배척되지 않기 위해 소극적인 동조를 해야 하는 문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동이 남성들 사이에서 남성성을 확인하는 ‘놀이’처럼 여겨진다고 꼬집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통화에서 “남성끼리 불법촬영물을 공유하거나 성희롱하는 단톡방을 만드는 순간 하나의 집단 조직으로서 결속력이 생긴다.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이 안에선 불법적인 행위도 군중심리 때문에 용인될 수 있다. 아무 반응이 없거나 방에서 나가면 반역자가 되는 문화”라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이어 “여성을 자기보다 낮은 존재로 보는 남성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성희롱한 여성에 대해 ‘우리 단톡방에서 언급된 것조차 대단한 것으로 여기라’는 생각까지도 한다. 우리가 ’선택’해줬다는 우월의식에 빠져있으며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그것이 잘못이라는 생각도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 “시민 인식 전환과 플랫폼 통한 물리적 제재 함께 이뤄져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단체 채팅방 등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촬영물 유포와 불법정보 유통 등을 사전에 차단하고, 2차 피해 방지 및 피해자 보호를 지원하기 위해 이달 1일부터 약 2달간 일정으로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 문제로 단속 대상은 불특정 다수가 익명으로 접속할 수 있는 오픈 채팅방에 한정된다. 개인 간 채팅방에서의 불법촬영물 공유 및 성폭력 2차 가해 등은 규제가 어렵다.

 

전문가들은 음란 단톡방을 제재하기 위해 ‘투트랙 전략’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김여진 팀장은 “오픈채팅방과 달리 개인 간 단톡방은 검열이나 규제를 할 수 없어 불법촬영물 공유나 성폭력 2차 가해 등이 얼마나 이뤄지는지 통계조차 내기 어렵다. 다만 우리 사회에 음란 단톡방이 만연한 것은 사실이며 (최근 논란을 일으킨) 연예인, 기자, 대학생 등 문제가 된 단톡방들은 ‘빙산의 일각’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김 팀장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단 단톡방을 통한 불법촬영물 공유 및 성희롱 등이 ‘놀이’가 아니라 범법행위라는 시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아울러 카카오 등 메신저 플랫폼 측에서 금지어를 설정하거나 불법촬영물 사이트 공유 등을 막는 물리적 제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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