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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향한 '과거사 청구서'…완전 청산 가능할까 [월드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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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21 15:20:49 수정 : 2019-04-21 15: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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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과거사 문제 끝나지 않아… 수십억유로 배상 필요" / 그리스 "대(對)독일 배상 요구, 우리의 역사적·도덕적 의무" / '일본과 달리 독일은 과거사 청산의 모범국' 선입관 무너져

제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을 맞아 당시 ‘전범국’이었던 독일이 다시 궁지에 몰리는 모양새다. 독일군의 침략으로 입은 피해를 제대로 배상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나라들이 하나둘 불만의 목소리를 터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과거사 청산 모범국’으로 통하며 일본과 상반되는 평가를 받아 온 독일이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시가지 모습. 연합뉴스

◆폴란드 "과거사 문제 끝나지 않아… 수십억유로 배상 필요"

 

21일 외신 등에 따르면 폴란드 의회의 아르카디우스 물라르치크 배상금위원장이 최근 “독일의 점령으로 폴란드가 본 피해에 대해 독일이 수십억 유로를 배상하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2차 대전은 지금으로부터 꼭 80년 전인 1939년 9월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시작했다. 당시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인구에 비해 땅이 비좁은 독일은 폴란드 등 동유럽에서 새로운 ‘생활권’(레벤스라움·Lebensraum)을 찾아야 한다”는 말로 전쟁을 정당화했다.

 

폴란드 군대는 불과 몇 개월 만에 붕괴하고 일부 정부 인사는 영국으로 망명해 런던에 임시정부를 세웠다. 1945년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폴란드에 살고 있던 유대인 300만명을 비롯해 총 600여만명의 폴란드인이 숨졌고, 수도 바르샤바는 그야말로 폐허가 됐다.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돼 있던 1953년 서독은 연합국들과 런던부채협약을 맺고 2차 대전 전쟁 배상을 일괄 타결했다. 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들은 같은 공산주의 진영인 동독한테 일부 배상을 받은 다음 “추가 배상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970년대 서독·폴란드 국교 정상화 협상 당시 폴란드는 동독과의 관계에서처럼 서독한테도 ‘국가 차원의 배상은 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국가가 아닌) 개인 피해자의 청구권은 남아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반면 서독은 “1953년 런던부채협약으로 모든 배상이 끝났다”고 맞섰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폴란드에 2차 대전 피해 배상금을 내야 한다”며 “배상금은 협상이 끝난 주제가 아니다”고 말해 ‘배상은 끝났다’는 독일 입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1년 그리스를 점령한 독일군이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앞에서 나치 깃발을 게양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리스 "대(對)독일 배상 요구, 우리의 역사적·도덕적 의무"

 

2차 대전을 전후해 독일에 점령당한 나라는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옛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등이다.

 

이들 피해국 가운데 그리스가 독일을 상대로 가장 목소리를 높여 ‘전쟁 피해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스 의회는 최근 “2차 대전으로 그리스가 독일에 입은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외교적·법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까지 통과시켰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연설에서 “이 요구는 우리의 역사적이고 도덕적인 의무이자 극우세력과 국수주의, 인종주의가 유럽을 위협하던 시기에 활동한 과거의 영웅들을 기억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2차 대전 초반인 1940년 10월 그리스는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끌던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침공을 받았다. 이탈리아는 독일의 동맹국이었다. 이탈리아가 되레 그리스에 패해 쫓겨나다시피 하자 이듬해인 1941년 독일이 ‘동맹을 도와야 한다’는 명분 아래 군대를 보내 순식간에 그리스 전역을 점령했다.

 

그때부터 1944년까지 그리스는 식량, 연료 등 많은 자원을 독일에 빼앗긴 것은 물론 독일군에 저항하던 그리스 민간인 상당수가 학살을 당했다. 그리스는 독일이 발행한 무이자 국채도 억지로 사들여야 했다. 그리스에 살던 유대인 약 7만명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전후인 1960년 독일(당시 서독)은 그리스에 1억1500만 마르크(현재 가치로 약 3000억원)를 지불했다. 독일은 ‘이로써 배상 문제가 일단락됐다’는 입장이나 그리스는 ‘더 많은 배상금을 내야 한다’고 독일을 압박하는 중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세계일보 자료사진

◆'일본과 달리 독일은 과거사 청산의 모범국' 선입관 무너져

 

폴란드와 그리스로부터의 점증하는 ‘과거사’ 공세 앞에 독일은 일단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중한 표현으로 사과를 하면서도 배상에는 선을 긋을 긋는 모양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 책임을 인식하고 있고 나치 점령 기간에 독일이 폴란드, 그리스 등에 초래한 고통이 얼마나 큰지도 잘 알고 있다”며 “우리가 이로부터 얻은 교훈은 유럽 국가들과의 우호관계를 확고히 하고, 상호 이익을 위해 협력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는 것”이라고만 말했다.

 

독일을 향한 과거사 청구서는 이제 유럽을 넘어 멀리 아프리카에서도 날아들 조짐이다. 독일은 영국, 프랑스와 달리 해외 식민지가 거의 없었지만 1차 대전 이전에 서아프리카의 나미비아를 점령해 통치한 적이 있다. 독일의 식민지배가 이뤄진 1884∼1915년 나미비아 국민 7만5000여명이 독일군에 학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독일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 방침을 밝히긴 했으나 아직 공식 사과는 하지 않았다. 더욱이 독일은 배상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대신 나미비아에 대한 원조를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나미비아에선 “과거 독일군의 집단학살에 대한 배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독일은 국제사회에서 일본과 달리 ‘과거사 청산 모범국’으로 통해 온 것이 사실이다. 1970년 12월7일 폴란드를 방문한 독일(당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겨울비가 내리는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2차 대전 희생자 기념비 앞에 무릎을 꿇고 참회하던 모습은 독일 과거사 청산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폴란드, 그리스, 그리고 나미비아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접하니 “과거사의 ‘완전한’ 청산이란 과연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최근 한국을 찾은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피해자가 ‘이제 더 이상 책임 추궁은 안 하겠다’고 말할 때까지 가해자는 책임을 계속 짊어져야 한다”는 말로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고 한·일 관계 정상화를 촉구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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