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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하나 됐지만… 억만장자 기부 경쟁 또다른 분열 불씨로

입력 : 2019-04-18 21:09:03 수정 : 2019-04-18 23: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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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성당 화재 참사 정치적 활용 논란도 / 성당 100여곳 일제 애도의 타종 / ‘노란조끼’로 갈라진 국민들 뭉쳐 / 주요기업·가문 기부금 경쟁 역풍 / 좌파정당 “세금부터 제대로 내라” / 노조CGT “불평등 해소에 돈 써야” / 기부금 60%까지 稅공제 혜택받아 / 내년 정부예산 그만큼 감소 우려 / 극우당 등 反이슬람 공격 본격화

17일(현지시간) 오후 6시50분 파리 몽마르트르의 사크레쾨르 성당을 비롯한 프랑스 전역 100여곳의 성당에서 일제히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이틀 전 노트르담 대성당에 불길이 일어난 시각에 맞춰 연대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프랑스의 심장’을 화마가 할퀴고 가는 장면을 가슴 졸이며 바라보면서 프랑스 국민은 하나가 됐다. ‘노란조끼’운동으로 분열됐던 사회는 재난 극복의 마음으로 다시 뭉쳤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을 위해 부호들은 거액을 쾌척했고 서민들의 소액 기부도 잇따랐다. 이틀도 안 돼 모금액이 10억유로(약 1조2800억원)를 넘어서서 복원 비용이 모자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불이 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이 7개월 동안 겨우 3억원 정도 모금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 브라질 여성이 노트르담 대성당에 255억원을 기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러시아 매체 기가라마닷알유(Gigarama.ru)가 지난 16일(현지시간) 360도 VR항공촬영한 사진 속에서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지붕이 불에 타 시커멓게 그을리고 구멍이 숭숭 뚫린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기가라마닷알유캡처, 파리=AP연합뉴스

◆억만장자 경쟁 기부… 분열 씨앗

 

그러나 억만장자들이 마치 부를 과시하듯 경쟁적으로 거액 기부에 나서는 모습이 역풍을 일으키면서 분열의 또 다른 씨앗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구찌 등을 소유한 프랑수아 피노 가문이 화재 발생 직후 1억유로 기부를 약속하자 프랑스 최고 부자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그 두배인 2억유로를, 로레알을 이끄는 베탕쿠르 마이어스 가문도 마찬가지로 2억유로를 내겠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프랑스의 상징적 문화·종교 유산의 소생을 바라는 부자들의 선의로 해석했던 이들 사이에서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좌파정당 ‘프랑스 앵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마농 오브리는 기부자 명단이 “조세피난처에 있는 기업(인) 명단처럼 보인다”며 “세금부터 제대로 내라. 그러면 국가 문화예산도 늘어난다”고 꼬집었다.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올리비에 푸리올은 트위터에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을 구할 준비가 된 후한 기부자들에게 감사하면서 그들이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이 하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하기를 제안한다”고 썼다. ‘대문호’ 위고의 두 작품 제목을 인용한 풍자였다.

 

◆기부금 세금공제, 예산 문제 초래

 

기업들이 기부액의 60%까지 세금공제 혜택을 받는 만큼 실질적으로는 프랑스 납세자들이 비자발적 기부를 하게 되는 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더타임스에 따르면 보수 공화당 소속 질 카레즈 의원마저 “기부액이 7억유로라면 2020년 정부예산에서 4억2000만유로가 줄어든다”며 거액 기부가 예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피노 측 고문이기도 한 장자크 아야공 전 문화부장관은 전날 기부액 세금공제 한도를 90%까지 올리자고 주장해 기름을 부었다.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그는 결국 자신의 제안을 하루 만에 철회했고, 피노 가문은 이번 기부액에 대한 공제 혜택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망연자실 파리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15일(현지시간) 노트르담 대성당 인근 보도에서 대성당이 불타오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슬픔에 잠겨 있다. 파리=AFP연합뉴스

논쟁이 더욱 격렬해진 이유는 노란조끼운동을 촉발한 것이 바로 세금 문제였기 때문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유류세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시위대는 ‘기업들에는 세금을 삭감해 주면서 서민들에게만 세 부담을 지운다’고 성토했다. 또 마크롱 대통령이 부유세를 폐지하는 등 ‘부자들의 편에 섰다’고 맹비난했다.

 

강성 노조인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의 필리프 마르티네즈 위원장은 이번 기부 논란과 관련해 “그것은 정말 이 나라의 불평등을 보여준다”며 “그들이 노트르담 재건을 위해 수천만달러를 기부할 수 있다면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낼 돈이 없다’는 말은 그만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극우 등, 비극 정치적 활용 지적도

 

극우 민족주의자, 백인 우월주의자,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노트르담의 비극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반이슬람 음모론자 프랭크 개프니는 이번 화재가 프랑스에서 최근 벌어진 기독교 예배당 공격과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전 세계 3억 기독교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이런 종류의 박해가 유럽에서 본격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알리스 바이델 대표도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유럽 기독교도에 대한 반감과 관련 있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한편 마크롱 대통령은 전날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대성당 화재와 관련해 프랑스 방문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와 교회 당국은 노트르담 대성당 복구공사 기간에 임시성당을 세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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