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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말년'… 항공산업 거목 스러지다 [이슈라인]

입력 : 2019-04-08 23:00:00 수정 : 2019-04-08 22: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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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보국 외길’ 항공물류 선도… 체육 발전에도 큰 족적 남겨 /창업주 떠난 뒤 ‘왕자의 난’… 그룹 분열 뒤 쇠퇴 / 예상 못한 비보에 침통·안타까움 /상속세·지분이양 등 경영권 승계 험로

◆‘수송보국 외길’ 항공물류 선도… 체육 발전에도 큰 족적 남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별세하면서 그가 지난 45년간 한국 항공산업과 문화·외교·체육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재조명되고 있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몸담은 이래 ‘수송보국’(輸送報國) 일념 하나로 국내 항공산업의 선도자 역할을 수행했으며, 문화·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다만, 말년에 발생한 일가의 ‘갑질’ 논란은 오점으로 남게 됐다.

조 회장은 1949년 3월 8일 인천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또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 입사 후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글로벌 항공 동맹 ‘스카이팀’ 창설 2000년 글로벌 항공사 동맹체인 ‘스카이팀’을 창설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오른쪽 두번째)이 회원사 대표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 회장이 대한항공에 몸을 담은 이래 회사의 존폐를 흔드는 위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조 회장은 앞을 내다본 선제 투자로 위기를 정면돌파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임차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고, 이를 기반으로 이듬해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모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100번째 보잉기 도입 2014년 8월1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대한항공의 ‘100번째 보잉기 도입 기념행사’에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가운데) 등이 100번째로 들여온 B747 화물전용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저가항공사 진에어 첫 취항 대한항공의 저가항공사 진에어의 첫 취항 행사에 참석한 조양호 회장과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연합뉴스 자료사진

또한 조 회장은 전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LCC) 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의 변화를 내다보고 이를 받아들였다. 조 회장이 2008년 7월 LCC 자회사 진에어를 창립한 이유다.

 

조 회장의 공헌은 회사의 성장 규모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대한항공은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가 166대로 증가했다. 또 당시 일본 3개 도시만을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으며, 연간 수송 여객 숫자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다.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증가했다.

 

조 회장은 다양한 부문에서 민간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국격을 높이는 데도 힘을 쏟았다. 그는 프랑스 루브르, 러시아 에르미타주,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서비스를 시작했다.

평창올림픽 성화봉송 조양호 회장이 2018년 1월18일 서울 광화문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조 회장은 국가의 심부름꾼 역할을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2009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도 맡았다. 유치위원장 재임기간인 1년10개월간 조 회장은 50번에 걸친 해외출장으로, 지구 16바퀴를 돈 거리인 약 64만㎞를 이동했다. 그동안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110명 중 100명 정도를 만나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결국 이러한 조 회장의 노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이어졌다.

 

의욕적으로 추진한 한진해운 인수는 결과가 좋지 않았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진해운은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경영인들의 잇따른 오판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이에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2013년부터 구원투수로 나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다. 또한 조 회장은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2014년 한진해운 회장직에 오르고, 2016년 자율협약 신청 이후 사재도 출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방위 노력에도 한진해운은 2016년 법정관리에 이어 2017년 청산됐다. 육·해·공 글로벌 물류전문 기업의 한 축이 무너진 것이다.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사진 가운데),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사진 왼쪽),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가족의 ‘갑질’ 행태는 조 회장의 이미지와 경영권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2014년 조 회장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이른바 ‘땅콩 회항’으로 물의를 일으켜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지난해는 차녀 조현민 전 전무가 ‘물컵 갑질’로 공분을 샀고,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도 직원 폭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배임·횡령·탈세 의혹도 불거졌다. 급기야 조 회장은 지난달 27일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 재벌 총수로는 처음으로 경영권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맛봐야 했다. 영욕이 교차한 일생이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별세가 알려진 8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 조기가 내걸렸다. 이제원 기자

◆창업주 떠난 뒤 ‘왕자의 난’… 그룹 분열 뒤 쇠퇴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유지는 ‘수송보국(輸送報國)’이다. 수송으로 나라에 보답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한진그룹은 ‘수송’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진그룹은 초기 육상의 물류·운송사업을 주력으로 성장해 왔다. 한진그룹은 베트남전쟁을 계기로 도약했다. 주월미군의 군수물자 수송계약을 따내며 기업이 빠르게 성장 가도를 밟기 시작했다. 이후 해양운송사업으로 영역을 넓혀 컨테이너 전문 해운사인 대진해운(한진해운의 전신)을 세웠다. 한진해운은 이후 한진그룹의 중심축이 된다. 조중훈 창업회장은 이후 대한항공공사를 인수, 대한항공을 경영하면서 항공운수 사업에도 진출했다. 이로써 한진그룹은 육해공 수송을 영역으로 둔 수송그룹으로 거듭나게 됐다.

 

하지만 조 창업회장이 2002년 사망하면서 한진그룹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조양호 회장이 그룹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형제들과 경영권 다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조양호 회장은 동생인 조남호, 조수호, 조정호와 ‘한진판 왕자의 난’이라고 불리는 법정다툼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한진그룹은 대한항공과 한진중공업, 한진해운, 메리츠금융으로 나뉘게 된다. 육상과 해상, 공중 모두에서 최고의 수송그룹이 되겠다는 목표가 사라진 것이다. 조양호 회장은 2006년 동생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이 별세하자 제수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그룹이 분열되자 형제들이 맡은 기업들은 위기에 시달렸다. 최은영 회장이 맡은 한진해운은 해운업계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파산처리됐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은 조양호 회장에게 한진해운을 넘겼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식을 미리 매각했다는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둘째 동생 조남호 회장은 한진중공업 경영에 실패하면서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장남 조양호 회장도 가족들의 ‘갑질논란’으로 구설을 겪은 끝에 미국에서 눈을 감았다.

◆상속세·지분이양 등 경영권 승계 험로

 

갑작스러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별세로 그룹 경영권 향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조 회장 장남인 조원태(44·사진) 대한항공 사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가속할 전망이지만, 조 회장의 갑작스러운 유고로 지분 상속 및 승계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8일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한진칼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조 회장 일가의 우호 지분이 28.95%다. 이 가운데 조 회장이 17.84%를 보유하고 있고, 장남 조원태 사장(2.34%),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2.31%),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2.30%) 등의 지분은 그리 많지 않다. 조 회장 지분을 넘겨받을 자녀가 50%의 상속세율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조 회장 지분의 상속세 규모가 17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상속세율 50%를 단순하게 적용한 수치다. 주식을 팔아서 상속세를 낸다면 한진칼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종전 28.95%에서 20% 수준으로 떨어진다. 조 회장 일가의 한진그룹 경영권을 견제해온 KCGI(한진칼 2대 주주)와 국민연금공단의 한진칼 합산 지분율(20.11%)과 엇비슷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조 회장 일가의 경영권 유지가 위태로워진다.

 

이 때문에 조 회장 일가는 조 회장의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파는 대신 상속받은 주식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거나 배당금을 늘려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것으로 시장은 전망하고 있다. 조 회장 일가가 보유한 부동산이나 기타 자산을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조 회장 일가의 우호 지분율이 유지된다고 해도 최근 KCGI가 한진칼 지분을 계속 늘려가고 있어서 조 회장 일가의 한진그룹 지배력은 이전보다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향후 대한항공은 조원태 체제로 급속히 전환될 전망이다. 조 사장은 조 회장을 대신해 6월 1일 서울에서 열리는 ‘항공업계의 유엔 회의’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 의장으로 나서게 된다. 재계에서는 조 사장이 대한항공의 대표이사 및 회장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예상 못한 비보에 침통·안타까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그룹 직원들은 당황과 안타까움이 섞인 반응을 보였다.

 

한진그룹 직원들은 8일 조 회장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는 소식에 “출근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소식”이라며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을 반대해 왔던 민주노총 산하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는 “조 회장 부고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유가족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성명서를 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한국 항공·물류산업의 선구자이자 재계의 큰 어른으로서 우리 경제 발전을 위해 헌신한 조 회장께서 별세하신 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자녀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가족들은 조 회장의 임종을 지켰다. 대한항공 측은 조 회장의 운구 및 장례 절차 일정과 임시 빈소 설치 문제 등을 현지에서 유가족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재판·수사 중단…공소 기각 결정 예정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별세하면서 한진그룹 일가와 관련된 재판과 수사가 중단됐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오상용)는 이날 예정된 조 회장 등에 대한 3차 공판준비기일을 다음달 13일로 연기했다. 한진그룹이 이날 조 회장 별세 소식을 알리자 검찰 측이 기일변경을 신청했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사망하면 재판부는 ‘공소기각’ 결정을 내린다. 서울남부지법은 사망신고서 등 서류를 확인한 뒤 조 회장에 대한 공소기각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조 회장은 납품업체에서 항공기장비와 기내 면세품을 사들여 위법하게 중개수수료를 챙긴 혐의로 지난해 10월 불구속 기소됐다. 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 자녀들이 보유한 주식을 계열사에 비싸게 넘겨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을 받았다. 조 회장은 약사가 아닌데도 약국을 운영한 혐의와 회사 자금으로 변호사 비용을 낸 혐의 등도 받았다.

 

검찰이 조 회장에 대해 추가로 진행하던 수사도 중단될 전망이다. 서울남부지검은 조 회장에게 조세포탈 혐의를 추가로 적용하기 위해 수사를 진행 중이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불법으로 고용한 혐의로 기소된 부인 이명희씨와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재판도 한 달 뒤로 연기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안재천 부장판사는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씨와 조 전 부사장의 첫 번째 공판을 9일 진행할 예정이었다.

 

나기천·이도형·추영준·염유섭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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