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되살아난 ‘4월 산불 악몽’…문재인 정부 들어 화재 급증 사실일까? [김현주의 일상 톡톡]

입력 : 2019-04-06 05:00:00 수정 : 2019-04-06 08:51:2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4월 강원 영동지역 위협하는 ‘산불의 악몽’…밤새 강풍 타고 동해로 번져 / 여의도 2배 수준의 산림 불에 타…사상자 적지않고 재산 피해도 상당해 / 봄철 강한 편서풍, 태백산맥 넘으며 ‘양간지풍’ 돼 산불 부채질 / 충남 아산·경북 포항·부산 해운대 등 다른 지역도 산불로 비상 / 강원소방본부 만성적인 인력 부족 시달려…소방인력 국가직·지방직으로 이원화, 지방재정 어려운 지역 확충 어려운 구조 / 국회 소모적인 정치공방 중단, 초당적으로 지원해야

봄철 강원 영동지역을 위협하는 ‘산불의 악몽’이 되살아났습니다.

 

지난 4일 밤 고성군 미시령 주유소 맞은편 전신주의 개폐기에 전기불꽃이 일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은 밤사이 강풍을 타고 동해안 방향으로 번져 속초 시내와 강릉 옥계, 동해 망상까지 덮쳤습니다.

 

5일 오후 기준 이번 산불로 피해를 본 산림은 여의도 면적(290㏊) 2배에 육박하고, 축구장 면적의 735배에 달합니다. 인적 피해도 사망 1명과 부상 30여 명이며, 주택과 비닐하우스도 100곳 이상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지역 학교가 휴교하고 주민과 관광객 2000여 명이 대피했으며, 재난 사태가 선포된 지역도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 일원 등 광범위합니다.

 

2005년 양양 산불도 이번 산불과 같은 날짜인 4월 4일 밤 발생했습니다. 양양 산불은 식목일인 이튿날 오후 순간 최대 풍속 32m의 강한 바람에 낙산사로 옮겨붙어 천년고찰을 잿더미로 만들었는데요.

 

1996년 3762ha를 태운 고성 산불과 2000년 고성·삼척·동해·강릉·울진 등의 2만3794㏊를 태운 사상 최대 동해안 산불도 4월에 발생했습니다. 2017년에는 5월에 삼척과 강릉에서 대형 산불이 있었는데요.

 

봄철 강한 편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영동지역에서 더 강하고 건조한 국지풍인 '양간지풍'이 돼 산불을 부채질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반복되는 산불은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양산합니다. 강원 지역뿐만 아니라 충남 아산·경북 포항·부산 해운대 등 다른 지역도 산불로 비상인데요.

 

매년 반복되는 산불에 강원도에서 화재 대응을 위한 특수 장비를 줄곧 요구했지만, 국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이 때문에 이번 산불에도 확실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강원소방본부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도 시달리고 있는데요. 소방인력이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이원화돼 있어 지방재정 여건이 어려운 지역은 이를 확충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전문가들은 대형 산불과 야간 산불 진화가 가능한 헬기를 확충하고 조종사와 정비인력, 산불 감시와 감식에 투입될 전문 인력도 늘려야 한다며 국회도 소모적 정치공방을 접어두고, 초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 4일 강원도 고성을 비롯 전국 각지에서 산불이 발생한 가운데,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현 정부 들어 화재가 급증했다' '정부의 안전불감증이 여전하다'는 등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만 인제, 포항, 아산, 파주 4곳에서 산불. 이틀 전에는 해운대에 큰 산불. 왜 이리 불이 많이 나나?"라는 글을 올렸다가 재난 상황에서 조롱 섞인 글이라는 항의 댓글이 이어지자 해당 글을 삭제하기도 했는데요.

 

반면 '현 정부 들어 화재 발생 건수는 이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었지만, 화재 관련 언론 보도는 급증했다'며 언론이 '유난을 떨어' 화재가 늘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文 정부 들어 화재 건수 급증 vs 언론이 유난 떨어 그런 것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해 통계를 보면 현 정부 들어 소소한 화재 발생 건수가 급증했다고는 보긴 어렵습니다.

 

소방당국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국 화재 발생 건수는 2015년 4만4435건, 2016년 4만3413건, 2017년 4만4178건 등으로 최근 몇 년간 비슷한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엔 4만2337건으로 전년도에 비해 4.1% 줄었는데요.

 

올해 들어서도 지난 1~3월 총 1만2100건의 화재가 발생, 작년 같은 기간(1만2590건)에 비해 3.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다만 대형화재만 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화재조사 및 보고규정에 따르면 대형화재는 사망자 5명 이상 또는 사상자 10명 이상 발생했거나 재산피해가 5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화재를 말하는데요.

 

소방청 집계에 따르면 전국 대형화재 건수는 2012년 13건에서 2013년 9건, 2014년 7건, 2015년 6건 등으로 감소했다가 2016년 7건, 2017년 9건, 2018년 15건 등으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지난해 대형화재 건수가 급증하면서 최근 10년 사이 최다를 기록했는데요.

 

대형화재 사망자도 2015년 11명에서 2016년 12명, 2017년 34명, 2018년 67명 등으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강원 영동지역 잊을만하면 대형산불…왜?

 

특히 영동지역은 잊을만하면 대형산불이 발생하는 '악몽'이 되풀이되고 있는데요.

 

1996년 3762ha를 태운 고성과 1998년 강릉 사천(301ha), 2000년 동해안 4개 시·군(2만3138ha), 2004년 속초 청대산(180ha)과 강릉 옥계(430ha), 2005년 양양(1141ha) 등에서 대형산불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다만 12년 동안 잠잠하던 동해안 산불은 2017년 삼척(765ha)과 강릉(252ha)에서 악몽을 재현했는데요.

 

지난해 2월 삼척 노곡(161ha)과 도계(76ha)에 이어 그해 3월 고성 간성에서 356ha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유독 영동지역에 한번 불이 붙으면 대형산불로 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이 지역의 '양간지풍'(襄杆之風) '양강지풍'(襄江之風)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양간지풍은 양양과 간성, 양강지풍은 양양과 강릉 사이에 부는 국지적 강풍을 말하는데요.

 

국립기상연구소가 2012년 2월 강원 영동지역에 한번 불이 붙으면 대규모로 번지는 이유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양간지풍은 고온 건조한 데다 속도가 빠른 편입니다. 2005년 4월 낙산사를 집어삼켰던 당시 산불은 순간 최대풍속이 초속 32m까지 관측됐는데요.

 

이번 산불도 동해안에 내려진 강풍경보 속에 산불은 바람을 타고 해변 쪽으로 번졌습니다.

 

지난 4일 오후 미시령에는 순간 초속이 30m 이상 몰아쳤고, 해안가에도 초속 20m 안팎의 태풍급 강풍이 이어졌는데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양간지풍’…밤에 산불나면 동쪽으로 퍼지는 속도 빨라, 진화 어려워

 

강풍은 봄철 ‘남고북저(南高北低)’ 형태의 기압 배치에서 서풍 기류가 형성될 때 자주 발생합니다.

 

한반도 남쪽 고기압과 북쪽 저기압 사이 강한 서풍이 밀려와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안에 더 건조한 바람이 부는 것입니다.

 

영서지역 차가운 공기가 태백산맥을 넘을 때 역전층을 만나 압축되는 동시에 속도도 빨라진 강한 바람을 만듭니다.

 

양간지풍이 그야말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셈인데요.

 

밤에 산불이 나면 동쪽으로 퍼지는 더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나 산불 진화를 더 어렵게 만듭니다.

 

공기가 차가워지는 밤일수록 산에서 해안가로 부는 바람이 더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봄철 이동성 고기압이 우리나라로 이동해 상층 대기가 불안정할 때 바람 세기는 강해집니다.

 

이 때문에 영동지역에 피해를 끼친 산불은 대부분 2월부터 5월 사이에 집중됐는데요.

 

여기에 면적 82%가 산림으로 둘러싸인 지형적 영향에다 동해안은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위주 단순림도 많아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입니다.

 

편의점 CU(씨유)를 운영하고 있는 BGF리테일은 행정안전부, 전국재해구호협회와 핫라인을 구축한 것은 물론 응급구호세트 등을 긴급 수송했다. BGF리테일 제공

 

산림청은 "봄철 행락객 증가, 농번기 도래에 이어 올해는 특히 강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가 지속돼 대형산불 위험이 전국적으로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산불은 예방이 최선으로 사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화마(火魔)’에도 국가안보실장 붙잡은 나경원…“상황 정확히 몰랐다” 해명에도 논란 활활

 

이처럼 산불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위기대응 컨트롤타워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이석(離席·자리에서 떠남)을 막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나 원내대표는 "회의에 집중하느라 산불을 알지 못했다"며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고 해명했지만 파문이 확산하고 있는데요.

 

지난 4일 밤늦게까지 진행된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홍영표 운영위원장은 "저는 오후부터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안보실장을 좀 일찍 나가게 하고 싶었는데 (여야가) 합의를 안 해줬다"며 정 실장의 이석 문제를 꺼냈습니다.

 

홍 위원장은 "지금 고성 산불이 굉장히 심각한 것 같다. 속초 시내에서 민간인들을 대피까지 시키고 있다"면서 "(정 실장은) 위기대응의 총책임자다. 그래서 양해를 구했는데도 (이석은) 안 된다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지금 대형 산불이 생겨서 민간인 대피까지 하고 있는데 대응을 해야 하는 책임자를 국회가 이석을 시킬 수 없다고 잡아놓는 게 옳은지 모르겠다"면서 정 실장의 이석에 여야가 합의해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러자 나 원내대표는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해 "위원장께 심한 유감을 표한다. 위원장이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운영위원장으로서다. 여당 원내대표가 아니다"라며 "운영위원장으로서 공정하게 진행해 달라"고 지적했습니다.

 

4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그는 "저희도 안보실장을 빨리 보내드리고 싶다. 그러면 질의 순서를 조정했으면 된다"며 "여당 의원들 말고 먼저 야당의원들이 질의하게 했으면 (정 실장은) 조금이라도 빨리 갔을 것"이라고 책임을 돌렸습니다.

 

당초 정 실장은 다음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 준비를 이유로 일찍 이석하겠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산불이 거세게 번져가는 와중에도 오후 10시30분이 넘어서야 이석할 수 있었는데요.

 

이날 운영위에서 홍 위원장은 송석준 한국당 의원이 질의시간 5분을 넘기며 정 실장에게 계속 질문하자 "지금 화재 3단계까지 발령이 됐고 전국적으로 번질 수도 있는 화재라고 한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질의하고 그렇게 하시겠냐"며 "이런 위기상황에는 그 책임자가 이석토록 해야 하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져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 실장의 이석을 막은 한국당 측을 맹비난했는데요.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야당 너무한다. 산불이 속초로 번져 주유소 폭발, 30명 고립, 기숙사가 위험한 상황인데 국회 운영위는 재난대비 책임자인 정 실장을 붙들고 질문에 질문을 하다 밤 10시50분에야 돌려보냈다"며 "질문이 중요하냐 생명이 중요하냐"고 꼬집었습니다.

 

같은 당 박광온 의원도 트위터에서 "산불의 재난사태에도 안보실장을 잡고 안 보내준 것은 '국회'가 아니라 '자한당'"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나 원내대표는 전날 행동이 문제가 되자 5일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유감스러운 것이 당시 심각성을 보고하고 이석이 필요하다면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그런 말이 없어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는 "어제 산불이 났는데 국회 운영위를 했다. 오후 7시45분 정도 정회하게 됐는데 회의에 집중하느라고 산불을 알지 못했다. (홍 위원장이) 전혀 산불로 인한 것을 이야기 하지 않고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정회하면 바로 이석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했습니다.

 

이어 "오후 9시20분에 다시 회의를 개회했고 시간이 좀 지나자 저희에게 산불의 심각성이나 그 심각성으로 인해 안보실장이 이석하겠다고 요구한 바는 전혀 없다"며 "9시30분쯤 홍 원내대표가 갑자기 불이 났는데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심각성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이 부분에 대해 서너 분이 질의하면 끝나서 길어야 30분이라고 생각해서 가는 게 어떠냐고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강원 영동지역 화마로 인한 국가 재난상황에서도 이처럼 국회가 정쟁에 몰두하는 모습에 대해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이래서 우리 국회가 욕을 먹는다”고 지적했습니다.

 

5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화재 피해 현장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잿더미만 남은 집터를 외로이 지키고 있다. 김동환 기자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