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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의 책읽기 세상읽기](32) '노인과 바다' - 삶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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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31 14:10:18 수정 : 2019-03-31 15: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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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52년 발표한 소설 ‘노인과 바다’는 작가 생전에 출간된 마지막 작품이다. 불운과 역경에 맞선 늙은 어부의 인간적 내면을 그려낸 이 작품은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안겨줬다.

 

쿠바 인근 바다에 조각배를 타고 나가 거대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 산티아고에 관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걸프 해류에서 조각배를 타고서 혼자 낚시하는 노인이었고,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날이 이제 84일이었다.” 처음에는 한 소년이 그와 함께 배를 탔지만 고기를 못 잡은 지 40일이 지나자 소년의 부모는 “노인이 틀림없이 가장 불길한 살라오일 것”이라며 소년에게 다른 배를 타게 했다. 살라오는 스페인어로 ‘재수 없는 자’라는 뜻이다.

 

“소년은 노인이 매일 빈 배로 부두에 돌아오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팠고 그래서 언제나 부두로 내려가 노인이 감아 놓은 낚싯줄, 갈고릿대, 작살, 돛대에 말려 있는 돛 등을 나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돛은 여기저기 밀가루 부대로 기운 것이었는데, 그렇게 접어 놓으니 영원한 패배의 깃발처럼 보였다.”

 

평생을 어부로 살아온 노인은 잠들면 소년 시절에 갔던 아프리카 꿈을 꾼다. “그가 다녔던 곳과 해변에 나타난 사자들에 대한 꿈만 꾸었다. 사자들은 해질 무렵 어린 고양이들처럼 뛰어놀았고 그는 소년을 사랑하듯 사자들을 사랑했다.”

 

그는 바다를 사랑했고 바다를 닮았다. “노인은 바다를 언제나 여성으로 생각했고, 엄청난 혜택을 줄 수도 있고 거두어가기도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만약 바다가 거칠고 사악한 짓을 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노인은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85일째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먼 바다로 나간다.

 

“단지 지금껏 운이 없었을 뿐이야. 앞날을 누가 알아? 어쩌면 오늘은 운이 좋을지 몰라. 모든 날은 새로운 날이니까. 행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먼저 정확하게 하는 게 중요해. 그래야 행운이 찾아올 때 그걸 잡을 수 있지.”

 

그는 배에서 끊임없이 혼자 말한다. “그는 혼자 있을 때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 그는 소년이 배를 떠나고 혼자 남게 되었을 때부터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기억은 없다. 노인과 소년이 함께 낚시를 할 때에는 서로 꼭 필요할 때에만 말을 했다. … 바다에서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이제 노인은 배에서 신경 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엄청나게 큰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다. “저놈은 남자답게 미끼를 먹었고 남자답게 배를 끌고 있고 전혀 겁먹은 태가 없이 싸움을 걸고 있어.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나처럼 아무 대책 없이 필사적이기만 한 걸까?” “그래도 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견딜 수 있는지 보여 줄 거야. 저놈에게 말이야.”

 

노인은 배가 고팠고 상대방이 얼마나 강한 놈인지 알지 못했다. “허기의 징벌 그리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것과 대적하고 있다는 무지의 징벌이 정말로 중요한 거야. 그게 일을 다 해주는 거야.”

 

노인은 사투 끝에 거대한 청새치(marlin)의 가슴에 작살을 박아 넣었다. 물고기를 밧줄로 뱃전에 묶었지만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이 공격해온다.

 

“노인의 머리는 이제 맑아졌고 또 고기를 지키겠다는 결심은 단단했으나 희망은 별로 없었다. 너무 좋은 일은 오래가지 못하는구나. 노인은 생각했다. 그는 상어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뱃전에 묶어 둔 커다란 고기를 한 번 쳐다보았다. 너무 좋은 일은 꿈하고 비슷한 거지. 노인은 생각했다.”

 

노인은 체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거야.” 노인은 필사적으로 상어들과 싸웠지만 새벽녘 항구로 돌아온 그의 배에는 머리와 뼈만 남은 물고기가 매달려 있다.

 

소설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난다.

 

“길 위에 있는 노인의 오두막에서, 노인은 다시 잠들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엎드린 채 자고 있었고 소년이 그 옆에 앉아 그를 보살피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문학평론가 김욱동은 저서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다’에서 “처음에는 청새치 그리고 나중에는 상어떼와 사투를 벌이는 산티아고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시포스 같은 인물”이라며 “산꼭대기를 향해 커다란 바윗덩이를 쉴새 없이 밀어 올리는 그 고역의 주인공처럼 산티아고도 온갖 시련을 겪지만 좀처럼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운명에 도전한다”고 했다. 헤밍웨이 소설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규범적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제심이나 극기심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명예심이나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노인과 바다’는 아무리 삶이 비루하고 불행하더라도 인간은 숭고한 의지로 맞서면서 견뎌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금 우리 주변의 삶을 둘러보면 늙은 어부의 말이 지닌 무게를 느낄 수 있다.

 

박완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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