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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부터 연애까지… 취향 맞는 사람들과 ‘랜선 친구’ [대한민국 신인간관계 보고서]

, 대한민국 신인간관계 보고서

입력 : 2019-03-28 10:00:00 수정 : 2020-08-05 1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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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새 관계 맺음의 장’ 온라인 공간 / 커뮤니티 통해 공부모임 손쉽게 구성 / 만남도 지인 소개 아닌 ‘데이팅앱’으로 / 온라인 통한 기계적 만남에 쉽게 포기도 / 단순 친목보다 특정 관심사 따라 뭉쳐 / 어린 유튜버 보며 ‘랜선 삼촌·이모’ 자처 / 타인 반려동물 영상 통해 대리만족 느껴 / 모바일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 지칭 / “실제 인간관계 적응 못 할 수도” 우려
#1. 외국기업 A사의 자동차를 갖고 있는 직장인 김모(35)씨는 같은 브랜드 자동차 소유주들이 모여 있는 한 포털사이트 카페 회원이다. 자동차 마니아인 김씨는 이곳에서 자동차 모델별 장·단점과 시승 후기, 추천 부속품, 튜닝 방법 등 A사 자동차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교환한다. 김씨는 지난달 이 카페 회원이 매물로 내놓은 타이어를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다. A씨는 “A사의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 있다 보니 고생하지 않고도 핵심 팁을 얻을 수 있어 게시글을 읽고 댓글 다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2. 취업준비생 오모(25·여)씨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카카오톡에 매일 신문을 읽고 키워드를 올리는 온라인 상식스터디에 참여 중이다. 다양한 신문사의 키워드를 모아보기 위한 목적이라서 피드백이 필요 없기 때문에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스터디를 선택했다. 오씨는 “온라인이다 보니 서로 애매하게 친해지고 봐주는 행위가 일어나지 않아서 좋다”며 “칼 같은 출석체크와 시간 엄수로 키워드 정리의 수준도 높은 편”이라고 했다. 이어 “혼자 정리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 정리 내용까지 공유할 수 있어서 시간도 아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포털사이트 커뮤니티, 1인 미디어 등의 발달로 온라인 공간이 오프라인을 넘어 또 다른 인간관계를 맺는 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단순히 정보를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이나 취미를 공유하거나, 심지어는 연애까지 앱을 활용하는 등 온라인 소통이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스터디부터 연애까지…온·오프라인의 융합

최근 모바일폰과 PC 등 휴대기기가 일상화하면서 ‘오프라인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이 축소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스터디 모임’이다. 예전에는 같은 대학 또는 학원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인맥으로 연결된 사람끼리 스터디를 했다. 그러나 요즘은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커뮤니티에서 일면식이 없더라도 조건이나 목표, 특정 기준이 맞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하나의 스터디로 구성될 수 있다.

스터디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공부할 기회도 생겼다. 유튜브나 아프리카TV에서 ‘같이 공부해요’, ‘실시간 공부방송’을 검색하면 대화 한마디 없이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만 생중계하는 채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공부를 하며 화장실을 간다든가 식사를 위해 자리를 비울 때도 ‘채널 구독자들이 실시간 감시해달라’는 취지로 빈 곳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다. 공무원시험 준비생인 이모(30)씨는 법무사 2차 준비를 앞둔 한 유튜버의 방송을 틀어놓고 공부한다. 이씨는 “이 채널은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딱 3시간 동안 50분 공부, 10분 휴식하는 패턴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중계하는데 휴식시간 사이에는 댓글로 서로 열심히 하자고 응원도 한다”며 “집중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게 된다”고 했다.

연애상대를 찾는 것도 역시 지인의 소개가 아닌 모바일 ‘데이팅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앱 시장조사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국내 구글플레이 비게임 부문 매출 순위 2∼5위를 모두 데이팅앱이 차지했다. 1위는 카카오톡으로 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위는 ‘정오의 데이트’ 30억원, 3위는 ‘아자르’ 27억원, 4위는 ‘심쿵 소개팅’ 26억원, 5위는 ‘아만다’ 25억원 순이었다.

 

데이팅앱은 사진과 나이, 성별, 취미 등을 담은 프로필을 설정하고 앱을 둘러보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패스’하고 맘에 드는 사람의 프로필이 나오면 ‘좋아요’를 선택하는 단순한 구조다. 상대방도 나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응답을 하면 매칭을 통해서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고 만남도 가질 수 있다.

데이팅앱을 이용하는 이유는 ‘호기심’ 또는 ‘대화가 잘 통하거나 취미가 맞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기존 소개팅과 달리 부담 없이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직장인 김모(47·여)씨는 데이팅앱 ‘울림’을 매일 들어간다. 이 앱은 ‘돌싱’(돌아온 싱글·이혼남과 이혼녀 지칭)들을 위한 전용 앱이다. 김씨는 지인이 이 앱을 통해 재혼에 성공한 얘기를 듣고 설치를 했다. 김씨는 “나이도 먹고 돌싱이라 주변에서 소개해주지 않으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전혀 없다”며 “주변에 부탁하지 않고도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뤄진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직장인 이모(27)씨도 “데이팅앱을 통해 만났던 사람 중 2명은 해외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며 “주변 환경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온라인의 특징 덕분에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온라인 만남이다 보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며 “온라인상에 대체 가능한 사람이 무한정 있다는 생각에 기계적으로 만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취향이 맞는 ‘랜선친구’들과 소통해요”

온라인 소통의 또 다른 특징은 ‘단순 친목도모’가 아니라 각 개인의 목표나 취향에 따라 사람들이 모인다는 점이다. 시장조사전문기업인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3~59세 남녀 1050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인터넷 커뮤니티 가입률은 2012년 73.8%에서 2017년 79.2%로 소폭 증가했다.

가입한 커뮤니티 분야를 살펴보면 과거에 비해 단순 친목보다는 특정 관심사를 중심으로 가입하는 경향이 컸다. 친목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012년 39.3%에서 2017년 27.8%로 급격히 줄었다. 반면 여행과 게임, 재테크, 쇼핑 고시·자격증 등 개인의 관심사 및 취미활동과 관련한 커뮤니티 가입자는 증가했다.

유튜브와 1인 개인 방송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과반수가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고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자신의 취미, 전문분야 또는 일상을 콘텐츠로 만들고 이를 구독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랜선’ 삼촌이나 ‘랜선’ 이모, ‘랜선’ 집사(고양이를 키우는 사람) 등과 같은 신조어도 등장했다. 이는 SNS 등 인터넷이나 대중매체 등을 통해 알게 된 아이나 반려동물의 팬이 된 사람을 가리킨다.

초등학생 유튜버인 ‘띠예’(11·여)가 대표적이다. 띠예는 말없이 음식을 먹는 5분 길이의 먹방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소리를 강조한 영상 콘텐츠)로 방송을 시작한 지 약 3개월 만에 90만명에 가까운 구독자를 보유했다. 특히 바다포도를 먹는 영상은 12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띠예의 팬은 때 묻지 않은 초등생 특유의 순수한 모습에 힐링을 느낀 삼촌·이모 연령대의 사람이 다수다. 영상 댓글에는 “삼촌(고모)이 띠예를 보면서 힐링한다”, “그 모습 그대로 자라달라”는 응원 메시지가 많이 달렸다.

고양이나 강아지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도 잇따라 자신의 반려동물 영상을 올리면서 직접 키우지는 않지만 반려동물 문화를 즐기는 랜선주인과 랜선집사를 만들고 있다. 일곱마리 고양이와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의 일상을 다룬 유튜브 채널인 ‘크림히어로즈’는 구독자 수가 223만명에 육박한다. 강아지 래브라도 리트리버와 포메라니안의 일상을 담은 채널인 ‘소녀의행성’도 인기채널로 구독자가 72만명에 달한다.

◆“포노 사피엔스 세대엔 자연스러운 현상”

 

인간관계에서 온라인으로 소통이 활발해지는 것을 두고 스마트폰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현대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2015년 3월 ‘스마트폰의 행성’이란 기사를 통해 이 같은 현대인들의 모습을 ‘포노 사피엔스’라고 최초로 이름 붙였다. 포노 사피엔스는 ‘지혜가 있는 인간’을 가리키는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 ‘지혜가 있는 폰을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는 세대를 지칭한다.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기계공학부)는 자신의 저서 ‘포노 사피엔스’에서 “이들은 주로 ‘밀레니얼 세대’로 어려서부터 인터넷과 컴퓨터를 접했기 때문에 모바일과 SNS 이용에 매우 능숙하다”며 “더불어 온라인 게임 등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거나 거래하는 ‘문화’를 체험하면서 디지털 문명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쉽게 맺고 끊는 온라인 관계에 익숙해지다 보면 실제 인간관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박은아 대구대 교수(심리학)는 “오프라인은 인간관계 맺는데 인사도 하고 밥도 먹고 장소도 정해야 하는 등 들여야 하는 노력이 많지만 온라인은 이 같은 기회비용이 적기 때문에 편하게 여기는 것”이라며 “이런 편리성을 경험한 사람들은 인간관계 자체를 가볍게 여겨 편리함만 취하고 책임은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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