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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에어, 인니 사고기 유족에 '소송 불허' 조건부 보상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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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22 17:24:57 수정 : 2019-03-22 17: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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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발생한 인도네시아 여객기 추락사고 유족들이 여객기 목적지였던 수마트라주 방카 섬 팡칼 피낭에 위치한 데파티 아미르 공항에서 오열하는 모습. 뉴시스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해상에 추락한 라이온에어 보잉 737 맥스8 여객기 사고 희생자 유족들이 부당한 보상금 합의를 강요 받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고 몇주 후 한 호텔 컨퍼런스룸에 모인 유족들은 당시 13억루피아(약 1억원)의 정부 위임 보상금을 지급받는 조건으로 서약서 서명을 요구 받았다. 이는 인도네시아 법규 내에서 최소한도에 가까운 액수라고 한다. 사망 보상금으로는 턱없이 적은 액수지만 가장을 잃은 유족들은 자녀 학비 등을 위해 합의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한 유족은 NYT에 “액수가 적었지만 두 아이가 학업을 계속하려면 서약서에 사인을 해야 했다”며 “더이상 심리적 압박을 받기도 싫었다”고 털어놨다.

 

서약서에는 유족들이 보상금을 수령한 후 라이온에어를 포함해 투자자, 보험사, 보잉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없다는 조건이 명시됐다. 이는 보상금을 수령하더라도 항공사 등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항공법에 배치되는 일이다. 합의 조건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들어 있다고 NYT가 서약서 사본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의 항공사고 전문 변호사인 찰스 허먼은 “이런 것(서약서)은 전혀 본 적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보잉사 하청업체를 포함한 수백 곳의 다른 회사를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의 8쪽짜리 명단도 서약서에 포함돼 있었다. 보잉사 측은 이와 관련한 NYT의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사진=EPA 연합뉴스

일부 유족들은 이 같은 조건 때문에 서약을 거부했다. 당시 사고로 24세 아들을 잃은 라디에브 누르바나는 “(서약서를) 주의 깊게 읽거나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며 “잔인하고 불법적인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라이온에어 측은 유족들이 서약서 복사본을 집에 갖고 가서 살펴보는 것을 막았으며, 심지어 유족 측 변호사가 호텔로 와서 문서를 검토하는 일조차 금지했다고 한다.

 

20여 명의 유족들은 미국에서 보잉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중에는 사고 여객기 부조종사 하르비노의 유족도 포함됐다. 하르비노의 누나는 “해당 항공기에 결함이 있었고 비합리적으로 위험하게 제작됐다”고 주장했다. 하르비노의 유족 측이 소송전에 가담하자 라이온에어는 구두로 약속했던 연금 및 자녀 교육비 지급을 거절했다고 한다.

 

라이온에어 여객기 사고 후 5개월도 안 돼 에티오피아항공 소속 보잉 737 맥스8 항공기가 추락했다. 둘 다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으며, 에티오피아와 프랑스 항공 당국은 두 사고 사이에 ‘명확한 유사성’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해당 기종 조종석에는 안전운항에 필수적인 장치 두 개가 설치되지 않았다고 NYT가 전했다. 보잉 측이 기본사양으로 넣지 않고 옵션으로 판매했기 때문에 라이온에어 같은 저가항공사들은 비용 감축을 위해 추가 옵션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 중 하나가 ‘받음각 표시기’다. 이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받음각 센서에 입력된 값을 표시하기 때문에 조종사들이 이를 보고 센서 오류 여부를 탐지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받음각 센서가 오류를 나타낼 때 작동하는 ‘오작동 경고등’이다.

 

보잉사는 뒤늦게 오작동 경고등 설치 의무화에 나섰다. 그러나 두 건의 사고가 받음각 탐지 오류에 기인했을 정황이 있는 만큼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라이온에어 사고기 조종석음성녹음장치 등에 따르면 해당 여객기는 받음각 센서 고장으로 기수가 실제보다 20도나 높이 들린 것으로 측정되는 바람에 급강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맥스 기종에는 기수가 너무 높이 들려 양력을 잃고 추락하는 ‘실속’(失速)을 방지하기 위해 조종특성향상시스템(MCAS)이 자동으로 조종에 개입하도록 설계됐는데, 센서 오류로 MCAS가 오작동한 것이 잇단 참사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 가루다항공은 22일 보잉에서 도입하려고 했던 737 맥스 여객기 49대의 주문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가루다항공은 2014년 보잉 737 맥스8 여객기 50대를 49억달러(약 5조5000억원)에 구매하기로 하고 2600만달러를 선금으로 지급했으나, 현재 1대만 인도받은 상태다. 가루다항공 측은 보잉으로부터 선금을 돌려받거나 737 맥스 시리즈가 아닌 다른 기종으로 주문을 변경하는 방안 등을 놓고 보잉 측과 협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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