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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 늘리려면 공천 과정 투명성 확보부터 해야” [세계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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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19 21:49:51 수정 : 2019-03-19 21: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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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사회적 약자·취약계층 대변 장점/ 국민들이 후보 검증할 시간 줘야/ 석패율제 지역주의 완화 효과적/ ‘만18세 투표’ 부작용 최소화해야/ 선거구 획정안 지각 제출 ‘고질병’/ 現 의석수 유지 강제규정 넣었으면/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속빈 강정’/ 공약 실천 여부 끝까지 감시해야

“비례대표 의원을 늘리려면 공천 과정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죠. 국민이 각 당의 비례대표 후보가 누구인지 알고 검증할 시간을 줘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꽃’인 대한민국 선거의 관리·감독을 책임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지난해 10월부터 이끌어온 박영수 사무총장은 19일 비례대표를 늘리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박 총장은 그러면서 “필리핀, 아르헨티나 등 과거에 잘살다가 경제적으로 추락한 나라들을 보면 정치적 안정을 잃어버린 게 원인이 됐다”며 “우리나라는 민주화, 경제성장, 정치안정 등 3개의 축이 어긋남 없이 발전했지만 유권자의 뜻을 더 반영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가 매번 선거구 획정 법정기한을 넘기는 것에 대해선 “정말 큰 문제”라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현행 의석수를 그대로 한다는 강행규정을 넣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선거일이 임박해서 지역구와 후보자가 정해지면 유권자는 내 지역 후보자가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주장하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후보자 인성과 품성, 자질을 검증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당만 보고 찍게 되죠.”

1991년 중앙선관위에 입관해 29년간 선관위에서만 일해온 박 총장은 업무를 수행할 때 그 일을 완전히 장악한 다음 추진하라는 의미로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등 ‘대학’의 8조목을 강조한다.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박영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지난 18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을 직원들에게 자주 한다는 그는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자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며 “내년 국회의원선거를 이런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웃었다. 서상배 선임기자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최근 선거제도 개편을 합의하며 비례대표를 늘리자는 데 공감대를 이룬 모양인데, 선관위에서도 2015년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늘리는 걸 제안했다.

“비례대표 확대는 정당 득표율과 국회 의석수의 연관성을 높여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를 충실히 반영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다. 비례대표 제도에는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대변하는 장점이 있다. 다만 비례대표 의원을 늘리려면 공천 과정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최근 여야 4당도 밀실공천을 예방하기 위해 당헌·당규에 공천 기준과 절차를 명시한 뒤 선관위에 보고하도록 합의했지만 적어도 1년 전에는 명단을 발표하도록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선관위에서 2015년 비례대표 100석을 제안한 이유는 최소한 100석이 안 되면 연동형 비례제도의 정상적인 운영이 힘들다고 봤기 때문이다.”

―석패율제 도입도 거론되는데, 국내에서도 타당한가.

“지역주의가 강한 국내 정치 상황과 정당 구도에서는 필요한 제도라고 본다. 예를 들어 지금은 호남에 한국당 의석이 없지만 이 제도가 도입되면 지역구에도 후보로 나가면서 비례대표 명부에도 동시에 입후보할 수 있다. 지역구 활동을 열심히 한 경우 떨어져도 호남에서 비례로 당선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지역구 활동을 계속하면 특정 정당이 지역에 뿌리내릴 최소한의 기반이 만들어진다. 그 뿌리가 커지면 지역주의가 완화되고 지역구에서도 당선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어 선관위도 2015년 석패율제를 제안했다.”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추자는 주장도 많다. 보완대책도 필요할 텐데.

“만 18세에 이른 청소년은 독자적인 신념과 정치적 판단에 따라 선거권을 행사할 소양을 갖췄다고 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를 제외한 35개국이 만 18세 이하에게 선거권을 준다. 오스트리아 만 16세, 그리스 만 17세, 한국 제외한 나머지 국가가 만 18세다. 최근 여야 4당이 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기로 합의했지만 고등학교까지 정치화되는 걸 염려하는 의원들도 있다. 만 18세로 연령이 늦춰지면 고3 교실에서 생일에 따라 일부만 투표하게 된다. 학교현장의 정치화 등 교육에 미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견해도 있으므로 교육시설을 선거운동 제한 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줄이는 방안도 함께 도입해야 한다.”

―국회가 매번 선거구 획정 법정기한을 지키지 않고 있는데, 대안은 없나.

“공직선거법에 따라 국회는 선거일(내년 총선 4월15일)로부터 1년 전 선거구를 확정해야 한다.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선거일 13개월(지난 3월15일) 전에 선거구 획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넘기면 국회가 1년 전에 이를 확정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매년 지역구 정수를 늦게 결정해 늦어지고 있다. 올해도 획정안 제출시한은 이미 지났다. 선거구 획정 지연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회의원 지역구 수의 확정 절차 및 기한 등을 공직선거법에 강행 규정으로 넣었으면 좋겠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는 건 정말 큰 문제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선거일 42일 전에야 선거구가 확정됐다. 인지도 있는 기성 정치인은 상관없지만 정치 신인들에게는 자신을 알릴 기회가 줄어들어 불리하게 작용한다. 선거구를 빨리 확정할 수 있게끔 정치권에서 현재 논의 중인 선거제 개편을 서둘러 달라고 말하고 싶다.”

―국내에서도 매니페스토 운동이 도입됐지만 여전히 정책 선거보다 이미지, 이념, 네거티브 선거가 주를 이루는데.

“정책 선거가 잘 안 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당별로 정책의 차별성이 없다. 유권자가 원하면 다 들어주겠다고 한다. 재정추계를 안 하고 유권자가 좋아하는 걸 제안한다. 실현 가능성을 제대로 안 따지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당선자 공약에 대한 감시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면 대부분 잊어버린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공약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정책 선거를 하려면 유권자가 학습돼야 한다. 공약이 좋아서 표를 줬더니 지역이 발전되는 걸 학습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게 안 됐다. 정책 선거를 하려면 제도적으로 후보자들에게 재정추계를 하게 하고 당선자의 공약 실천 여부를 끝까지 추적해서 감시해야 한다. 정당 차원에서는 국방, 복지 등 분야별로 국가예산을 어떻게 쓸지 발표했으면 한다. 즉 특정 정당이 복지에 200억원을 쓰겠다고 했는데 해당 정당의 복지 공약 예산을 합산했더니 200억원이 넘어가면 일부 공약이 거짓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최근 끝난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도 부정행위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많더라.

“선관위에서 조합장선거를 위탁관리하면서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금품수수 등 관행은 여전하다. 다만 예전에는 법을 위반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돈을 주면 받고 또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최소한 주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조합장 선거는 선거인수가 적어 ‘돈이면 당선될 수 있다’는 인식과 금품수수에 대한 관대한 관행을 단기간에 개선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앞으로 예비후보자 제도를 도입하고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제도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해외에선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는 등 온라인 투표가 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떤가.

“온라인 선거를 당장 공직선거에 도입하긴 힘들다. 기술적 문제보다는 신뢰의 문제, 사회적 합의 문제가 있다. 블록체인 같은 분산저장 기술을 도입하면 해킹은 99.99% 방어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처럼 투표 하나하나가 중요한 사회에서 대리투표의 가능성을 용납하느냐다. 온라인 투표는 누군가 옆에서 볼 수도 있고 상호 거래가 일어날 수도 있다. 대리투표에 대한 사회적 수용 여부에 따라 온라인 투표 도입이 결정될 것이다. 현재 각 정당의 당대표 경선에는 온라인 투표가 활용된다. 당원 간 신뢰성이 있고 일부 대리투표를 수용하기 때문이다. 선관위에서는 공직선거 외에 각종 조합선거 등 위탁선거도 맡아 관리한다. 학교나 협회·단체, 공동주택 등의 선거는 100% 온라인 선거가 이뤄지는 반면 정치적 이익이 달린 선거는 여전히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치러지고 있다.”

―최근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대비되면서 정치자금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데.

“최근 홍 전 대표와 유 이사장의 유튜브 방송 문제로 제도 지적이 많았다. 현행 정치자금법의 대전제는 정치인이 자금을 받을 때는 후원회를 통해서 받으라는 거다. 유튜브 슈퍼챗, 팟캐스트 직접 후원을 통해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후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현행법상 불법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홍 전 대표와 유 이사장은 모두 국회의원이 아니지만 홍 전 대표는 정치자금법상 규율대상이고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유 이사장은 규율대상이 아니다. 이 때문에 홍 대표는 유튜브에서 기부를 못 받고 유 이사장은 가능하다. 형평성이 안 맞다는 의견이 있다. 예비 정치인 등 정치인으로서 모금할 주체를 확대하고, 그 방법도 후원회를 통하는 게 아니라 투명성이 확보되면 직접 모금하는 걸 허용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리=이현미 기자

 

대담=김용출 정치부장

 

박영수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경북 청도 출생(1964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연세대 행정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선관위 법제국장, 조사국장, 기획조정실장 등 역임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선거구획정위원회 제2대 위원장 △선관위 사무차장(차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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