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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없는 저성장, 저출산·고령화…중산층 무너지고 서민층 나락으로 떨어졌다 [일상톡톡 플러스]

입력 : 2019-03-19 05:00:00 수정 : 2019-03-18 11: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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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구의 소득 격차는 지난 20여 년간 최고 속도로 확대해 소득 불평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으로 악화했는데요.

 

특히 2010년대 들어 '고용 없는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저출산·고령화 문제까지 겹치면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19일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의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의 처분가능소득 상위 10% 경곗값을 하위 10% 경곗값으로 나눈 배율(P90/P10)은 2016년 5.73배에서 2017년 5.78배로 악화했습니다.

 

OECD는 소득 상위 10%선에 걸친 값(P90)을 소득 하위 10%선에 걸친 값(P10)으로 나눈 이 배율을 국가별 소득 불평등을 재는 주요 지표로 활용합니다. 배율이 상승할수록 소득불평등도는 높아지는데요.

 

우리나라 10분위 경곗값 배율의 수준은 OECD 회원국 중 미국(6.3배·2016년 기준), 리투아니아(5.8배·2016년 기준)에 이어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소득불평등도가 OECD 회원국 중 미국과 리투아니아를 제외하면 가장 심하다는 뜻인데요.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지니계수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2016년 5년 만에 악화로 전환하면서 0.355를 기록한 데 이어 2017년에도 같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지니계수가 0이면 완전평등, 1이면 완전 불평등을 의미합니다. 0.4를 상회하면 불평등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지니계수를 기준으로 본 소득불평등도는 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31위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보다 소득불평등도가 높은 국가는 멕시코(0.459·2014년), 칠레(0.454·2015년), 터키(0.404·2015년), 미국(0.391·2016년)밖에 없는데요.

 

우리나라의 도시 2인 이상 가구의 지니계수(처분가능소득 기준)는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급격히 치솟았습니다.

 

1997년 0.257이었던 지니계수는 1998년 0.285, 1999년에는 0.288로 뛰었습니다. 이후 개선과 악화를 겪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었던 2009년 0.295로 정점을 찍은 뒤 여전히 외환위기 당시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했는데요.

 

소득 상위 20% 계층의 평균소득을 소득 하위 20% 계층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도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 2016년 6.98배, 2017년 7.00배로 확대됐습니다.

 

이는 소득 상위 20%가 소득 하위 20%의 7배를 번다는 뜻입니다.

 

◆상위 20% 소득, 하위 20%의 7배

 

분배 악화는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어졌는데요.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47배로, 같은 4분기 기준 자료집계가 시작된 2003년 이후 가장 나빠졌습니다.

 

이 조사는 상위 소득 구간에서 표본의 누락이 많고, 금융소득은 실제보다 낮게 보고되는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보다는 배율이 낮습니다.

 

더 큰 문제는 분배 악화하는 속도입니다. 우리나라의 소득분배 악화 속도는 OECD 회원국 중에 거의 독보적인 수준인데요.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에 따르면, 우리나라 20세 이상 인구 중 소득 상위 10%에 속하는 계층의 소득집중도는 2016년 기준 43.3%로 1996년(35%) 대비 급증했습니다. 상위 1% 소득집중도 역시 1996년 7.8%에서 2016년 12.2%로 높아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난 20년간 소득집중도 상승 폭은 WID에 소득집중도 지표를 공개한 OECD 회원국 중 아일랜드와 함께 가장 높았습니다.

 

아일랜드의 소득 상위 10%에 속하는 계층의 소득집중도는 1996년 28.2%에서 2016년 37.2%로 치솟았습니다. 상위 1%의 소득집중도도 1996년 7.1%에서 2016년 11.5%로 뛰었습니다. WID는 120여 명의 전 세계 학자들이 소득 불평등과 관련된 각국 지표를 공개하는 국제 통계 사이트입니다.

 

앞으로 소득분배 문제가 개선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는데요.

 

다만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일자리가 줄어든 피해가 취약계층에 집중했고, 일자리가 줄어든 데 따른 노동소득·사업소득 감소는 이전소득 증가로는 만회가 안돼 향후 소득 격차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입니다.

 

◆소득분배 개선 희망? “소득격차 더 커질 수 밖에 없는 사회·경제 구조”

 

우리나라는 부모가 흙수저면 자식도 흙수저가 되는 이른바 '세습 공화국'이 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분배정의연구센터 주병기 교수는 지난 10일, 우리나라가 갈수록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사회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주 교수는 '한국사회의 불평등'이란 논문에서 그 어려움의 정도를 수치화해 '개천용지수'로 명명했는데요.

 

부모의 학력과 소득분포, 자녀의 소득 등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개천용지수는 2000년대 초반 15∼20%에서 점차 올라 2013년 35%로 높아졌습니다.

 

이 지수는 '기회가 평등할 때 성공할 사람 10명 중 기회 불평등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의 수'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그런 사람이 10명 중 2명이었다면, 2013년에는 3명 이상으로 늘었다는 뜻인데요.

 

개천용지수와 비슷한 개념으로 국가별 비교에 쓰일 수 있는 게 '지니 기회 불평등 지수(GO지수)'입니다. 소득 불평등을 보여주는 지니계수를 변용한 것입니다.

 

GO지수는 지니계수처럼 수치가 높을수록 기회 불평등이 심한 사회라는 뜻입니다. 한국은 2013년 기준 GO지수가 4.51로 나타났습니다.

 

이보다 약 10년 전 수치지만, 유럽 국가들과 미국을 대상으로 측정된 GO지수는 이탈리아(7.64)·미국(6.93)·벨기에(4.58)·프랑스(4.22)가 높은 그룹, 노르웨이(2.18)·스웨덴(1.09)·독일(0.88)이 낮은 그룹입니다. 우리나라는 높은 축에 속하는데요.

 

물론 타인의 성공을, 또는 자신의 실패를 모두 기회 불평등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주 교수는 그럼에도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지는 환경에 따라 발생하는 불평등에 대해서까지 개인에게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기회평등 원칙이 복지 선진국이 추구하는 사회정책의 기본 방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지는 환경'의 대표적인 사례가 부모의 학력과 소득입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차이가 기회 불평등으로 작용, 노력에 따른 성취를 가로막아선 안 된다는 게 기회평등 원칙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개천용지수와 소득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 또는 5분위 배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1996년 0.3033(시장소득 기준)이던 지니계수는 2006년 0.3583, 2016년 0.4018로 상승했습니다.

 

소득 불평등보다 부의 불평등은 더 심하다고 주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그가 인용한 김낙년 교수의 '한국의 부의 불평등'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상위 10%가 부의 60∼70%를 차지, 70%를 넘는 미국 다음으로 부의 집중도가 컸습니다.

 

◆韓 소득 불평등? ‘부(富)의 불평등’이 더 심각

 

이처럼 소득과 재산 불평등이 기회 불평등으로 작용해 자녀 학력 차이로 이어졌음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최근 공개됐습니다.

 

한국장학재단이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학기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 재학생 가운데 장학금을 신청한 학생의 46%가 9·10분위, 즉 소득 상위 20%의 자녀였습니다.

 

특히 상위 10%인 10분위(30%)가 상위 10∼20%인 9분위(16%)의 2배 가량 됐습니다. SKY 중에서도 서울대가 9분위 16%, 10분위 32%로 고소득층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SKY를 제외하면 9·10분위 비율은 각각 13%와 12%였습니다. 고소득층 비율이 SKY의 절반 정도(25%)에 그친 셈입니다.

 

심지어 SKY 대학 재학생 70% 가량은 장학금 신청이 필요 없을 정도의 '있는 집' 자녀들이라는 한국장학재단의 조사 결과도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이우진 고려대 교수는 '포용적 성장과 사회정책 연구' 논문에서 "소득·자산 불평등의 증가는 개인의 삶 전체에 누적되며, 다음 세대의 기회 불평등에도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교수는 "부모세대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이 심할수록 자식세대 소득 불평등도 증가하는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불평등 세습 또는 불평등 함정에 빠질 위험이 존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좋은 대학'이 높은 확률로 '좋은 일자리'로 연결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부모세대 소득과 재산이 자녀세대 학력과 일자리로, 다시 소득과 재산으로 순환하며 대를 잇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인식입니다.

 

세습 공화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 교수는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정부의 소득재분배 기능 강화, 고용형태(정규직-비정규직)·기업규모(대기업-중소기업) 등에 따른 임금격차 축소 등으로 소득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민간의 과도한 교육비(사교육비) 지출을 줄이고, 대학입학 전형에서 지역균형선발과 기회균형선발 등을 정착시켜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사다리'가 치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있는 집’ 자녀, 명문대 입학 확률도 높아…‘세습 공화국’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나라 상·하위 계층 소득격차가 심해진 원인은 무엇일까요.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를 계기로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소득분배가 악화하는 등 파멸적 현상이 본격화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9.8%의 고성장을 누리던 1990년, 2인 이상 도시가구 기준 '소득 5분위 배율'은 3.72배였습니다. 이듬해는 3.58배, 그 이듬해는 3.52배였습니다. 소득 5분위 배율은 최상위 20%의 평균 소득을 최하위 20%의 평균 소득으로 나눈 값을 말합니다.

 

이 수치가 급등한 것은 1997년 말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였습니다. 1997년 3.80배이던 5분위 배율이 1998년 4.55배로 뛰더니 1999년 4.62배까지 치솟았습니다.

 

지난해 4분기에는 5.47배를 기록했는데요. 소득 최상위 20%의 처분가능소득이 하위 20%의 약 5.5배에 달했다는 의미입니다.

 

고소득층 소득은 늘고, 저소득층 소득은 줄어든 결과입니다. 양극화가 날로 심해진 것입니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보건사회연구원 재직 시절 '불평등 변화와 재분배 정책' 심포지엄 발표문에서 '지니계수'를 사용해 소득분배 악화 추이를 분석했습니다.

 

그는 고령화, 1인가구 증가, 청년실업 등 사회·경제적 변화를 고려하면 이제는 모든 연령대, 모든 가구원의 소득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1996년 0.3033(시장소득 기준)이던 지니계수는 2006년 0.3583, 2016년 0.4018로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가처분소득 기준 지니계수도 같은 기간 0.2983→0.3251→0.3353으로 상승곡선을 그렸는데요.

 

5분위 배율로 따지든, 지니계수로 따지든, 소득 양극화는 최근 두드러진 현상이 아니라 오랜 기간 한국경제를 잠식해왔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갖는 셈입니다. 특히 양극화 지표는 IMF 사태 이후 급등했습니다.

 

◆양극화 지표, MF 사태 이후 급등…소득격차 확대 피해, 취약계층에 집중

 

우리 사회의 소득 격차 확대 피해는 비정규직과 청년층 등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소득 격차 확대 과정에서 양산됐는데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2000년대 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 차원에서 기업들이 주기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 채용을 확대하면서부터입니다.

 

동일한 일을 해도 비정규직은 임금·복지 등에서 차별을 감수해야 하고,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크지 않습니다.

 

청년 취업이 갈수록 험난해지는 것도 같은 연장선에 놓인 문제라는 시각도 있는데요.

 

일자리 이동 사다리가 무너진 상황에서 청년들은 처음부터 처우가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비정규직이 계속해서 양산되고 청년 실업이 심화할수록 빈곤층은 늘어나고, 소득 불평등은 더 악화할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청년 실업이 심화하면 소득분배는 더 악화할 공산이 큽니다. 이들이 저소득층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청년 실업률이 뛰기 시작한 2016년 이후 청년 빈곤층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포용복지연구단장의 지난 1월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토론회 발표문을 보면, 소득 하위 20% 계층 가운데 34세 이하 1인 가구 비중은 2017년 1분기 1.2%에서 상승해 지난해 2분기엔 4.1%로 뛰었습니다.

 

중위소득(전체 가구의 소득을 한 줄로 나열했을 때 정 가운데 있는 소득) 50% 미만인 빈곤층 중 임시·일용직 등 비정규직은 작년 3분기 기준으로 20.1%에 달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후 성장률이 둔화하면서 취약계층이 잘 살 기회, 상위계층으로 이동할 기회가 줄었다며 청년실업이 늘어나면 청년층 소득이 줄어들고 장기간 취직에 실패한 이들은 결국 계속 직장을 잡지 못하는 '영구실업' 상태를 겪어 소득 불평등이 더 확대했다고 지적합니다. 정부가 분배 개선을 추구하되, 하위 10% 소득 증대에 집중할지 하위 30%의 소득을 늘릴 것인지 등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할 시기라고 부연했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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