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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성폭력 사건은 흑백 아닌 '회색지대'에서 발생한다? [일상톡톡 플러스]

입력 : 2019-03-11 05:00:00 수정 : 2019-03-11 01:4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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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운동 이후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8명은 성희롱·성폭력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에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미투운동 이후 사회변화에 대한 의견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남성 1030명, 여성 982명 등 전국 성인남녀 2012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미투운동이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국민 인식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향후 과제를 도출하기 위해 실시됐는데요.

 

조사결과 응답자 76.7%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여성 85.9%는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미투운동이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국민 성인지 감수성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신고해도 사건이 합리적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답한 응답률은 35.6%에 그쳤는데요.

 

◆女 85.9% "재판과정에서 성인지 감수성 필요"

 

미투운동에 대한 지지는 70.5%였습니다.

 

여성은 80.7%였으며 남성은 60.7%였다. 연령대를 보면 여성은 40대와 30대가 각각 83.6%, 81.8%로 가장 높았고, 남성은 50대가 72.7%, 40대가 68.1%로 높았습니다. 남성 20대의 미투지지율은 47.2%였는데요.

 

미투운동을 이어가는데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로는 34.9%가 '권력을 악용한 성폭력을 남녀갈등 문제로 몰아가는 태도'를 꼽았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도 27.6%로 많은 응답을 받았는데요. 21.0%는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 7.8%는 학교와 직장 내 성차별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60.1%는 과거에 자신이 했던 말이나 행동이 성희롱·성폭력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응답했습니다. 61.8%는 타인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나 다른 사람이 했던 행동이 성희롱·성폭력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번 조사를 통해 성희롱·성폭력이 권력에 기반한 사회구조적 문제인 점을 환기시켰고 우리 국민의 성인지 감수성을 향상시키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향후 우리가 성희롱·성폭력에 대해 개별 조직과 사회가 민감하게 대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수사와 사법체계도 국민 의식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20대 남성 절반 이상 "미투운동 지지 안 한다"

 

비공개 촬영회에서 유튜버 양예원 씨를 성추행하고 양씨의 사진을 유포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최모(45)씨 측이 항소심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는 원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부는 지난 4일 오후 강제추행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은 최씨에 대한 항소심 첫 재판을 열었습니다.

 

이날 재판에서 최씨 측 변호인은 "원심은 피해자 진술 일부가 사실과 다르다고 해서 전체 진술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출입문이 쇠사슬과 자물쇠로 채워져 감금됐다는 것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는데도 그 이후 진술은 모두 사실이라고 인정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원심은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고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울 정도라며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쇠사슬과 자물쇠 등으로 감금되어 있다는 진술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양씨가)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감금은 감금죄로 별도의 범죄가 구성될 수 있을 만큼 주요 진술이고 진술 번복한 부분도 매우 중요한 것인데, 원심이 주요 부분으로 다루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피해자가 추행을 당한 이후 먼저 실장에게 연락해 촬영일정을 잡은 것은 학비를 구해야 하는 피해자의 특수상황과 성인지 감수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5개월이 지나 스스로 다시 실장에게 연락해 촬영을 요청한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이어 "해당 스튜디오가 다른 곳과 달리 성추행이 심했다고 피해자는 진술했는데, 다른 스튜디오에 가지 않고 먼저 다시 연락한 점을 보면 성인지 감수성을 벗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유튜버 성추행' 비공개 촬영회 항소심 첫 공판, 진술 신빙성 놓고 대립

 

양씨 측 변호인인 이은의 변호사는 "자물쇠와 쇠사슬 진술 관련 실제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진술한 것을 봐야 한다"며 "수사기관에서 피해자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야기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당시 그 정도의 공포를 느꼈고, 큰 자물쇠나 쇠사슬이라고 느낄만한 상황이 있었다고 납득할 수 있게 진술했다"며 "다른 피해자들도 동일한 이야기를 한 만큼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이 상당 부분 올라간다고 본다"고 설명했는데요.

 

그러면서 "쇠사슬과 자물쇠가 강제추행의 요건이고 중요한 것인지 재판부가 봐야 한다"며 "피해자 입장에서 성추행하고 사진기를 들이대 촬영하는데 어떤 카메라로 촬영하는지 등을 기억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지난달 검찰은 양형 부당을 이유로, 최씨 측은 양형 부당과 사실오인 등을 이유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공대위 "안희정 상고심 유죄 확정 촉구하는 서명운동 시작"

 

여성단체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고발 1주년을 맞아 안 전 지사의 상고심 유죄 확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전국 153개 여성시민사회단체로 이루어진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지난 5일 "새로운 1년을 시작하며 '성폭력 가해자 안희정은 유죄다'라는 외침을 다시 한 번 모아내고자 한다"며 이날 오후 8시부터 안희정 성폭력 사건 상고심 유죄 확정 촉구 탄원서명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공대위는 연명 탄원서에서 "2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 평가에 있어 성인지 감수성을 확인했고, 업무상 위력으로 자행한 성폭력을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고 처벌해야 할지 제대로 제시했음에도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아직 협소하다"며 "감정적 판결이라는 주장이 일간지 칼럼에 실리고, 가해자 측에서는 피해자를 가해자로 부르는 공격을 거듭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안 전 지사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수많은 업무상 위력, 성폭력에 대한 경종이 될 것"이라며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합리적 판단에 대한 기준, 위력에 대한 해석은 그동안 대법원이 쌓아올린 판례에 의거한 것이다. 이는 사회 저변에 여전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잘못된 인식, 태도를 변화시키는 지렛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공대위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 상고심 유죄 확정을 촉구하는 탄원서명운동과 함께 △항소심 판결의 사회적 의미를 짚는 캠페인 진행 △사건과 관련된 2차피해 사례 수집 △'가해자의 변명'을 드러내는 다른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 사례 수집 등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라 밝혔습니다.

 

안 전 지사는 지난해 7월부터 7개월 간 비서 김지은씨를 4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요. 안 전 지사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5년의 관련 기관 취업제한을 명령했습니다. 안 전지사는 이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했습니다.

 

◆재판 흐름 뒤바꿀 수 있는 '성인지 감수성' 논란 지속될 듯

 

안 전 지사 부인 민주원 씨가 지난달 2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감수성으로 재판하는 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며 재판부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민씨는 "1심도 2심도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했지만,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며 "성인지 감수성은 법적 증거보다 상위 개념인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안희정 전 지사 부인 민주원씨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통해 "피해자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 주장이 모두 사실인 것은 아니다.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이처럼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한 상황입니다. 자칫 재판부가 객관적인 상황보다 피해자 진술에 지나치게 비중을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용어의 의미가 모호해 재판 기준으로 삼기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은데요.

 

법조계 한 관계자는 "성범죄 사건은 기억이 온전하지 않아 관련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진술의 객관성을 판정하는 전문적인 분석 방법이 부족한 상황에서 오판의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 모니터링 보고서'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웹툰, 방송 등 일부 문화콘텐츠에 쓰이는 표현을 지나친 성인지 감수성 시각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는데요.

 

전문가들은 법관의 해석으로만 위력의 범위나 내용을 확대 해석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범죄성립 요건을 보다 객관적이고 구체화하는 입법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재판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논란은 한동안 법정, 나아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굴 것으로 보입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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