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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폭력없는 ‘정상가족’을 위한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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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29 21:29:14 수정 : 2019-03-22 18: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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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의 희생자는 약자들/ 일단 관련법 정비 처벌 강화를/‘폭력 불관용 문화’ 만들어가야/ 정부·학부모 함께 최선의 노력을

‘이상한 정상가족’은 지난해 출간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킨 책의 제목이다. 저자는 남들 보기에 어엿한 ‘정상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자녀학대 및 아동 대상 폭력의 실상을 생생하고도 설득력 있게 증언하고 있다.

 

최근 전 국민의 공분(公憤)을 샀던 사건 가운데, 죽음을 맞이해서야 비로소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에서 벗어난 엄마를 위해 둘째 딸이 아빠의 엄벌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림으로써 더욱 큰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낸 바로 그 사건을 접하자니, 그동안 자신의 비밀을 공유해준 몇몇 제자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엄마와 자신을 버려둔 채 외항선을 타고 세상을 떠도는 아빠를 무척이나 원망했었는데 아빠 또한 어린 시절 지독한 학대와 폭력의 희생자였음을 알게 됐다는 제자, 아빠의 폭력으로 인해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등학교에선 왕따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아빠 역시 할아버지의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내면서 분노조절 장애를 겪고 있음을 뒤늦게 알아챈 후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는 제자, 아빠의 이유 없는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집에서 독립하는 것이기에 졸업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던 제자. 모두 하나같이 겉보기엔 지극히 정상적인 가족 안에서 부모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을 것만 같은 사랑스러운 딸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이들이 그토록 가슴 아픈 사연의 주인공일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가정폭력의 역사는 뿌리가 매우 깊지만 그것이 범죄로 인식되고 실상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정폭력의 역사가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보여주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사례로 ‘엄지손가락의 법칙(rule of thumb)’이란 영어 표현이 있다. 이는 ‘눈대중’이라는 의미를 갖는 숙어인데, 남편은 아내를 때려도 무방하나 아내를 때릴 때 회초리 굵기가 자신의 엄지손가락보다 굵어서는 안 된다는 영국의 관습법에서 파생됐다고 한다. 눈대중이란 일상 언어 속에 아내 구타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었던 셈이다.

 

1989년 발표된 ‘결혼 증명서=구타 증명서’라는 제목의 논문도 특별히 아내 구타의 심각성을 폭로하고 관련법을 제정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문은 낯모르는 남녀 사이에 발생한 폭력은 범죄로 처벌 가능하나, 부부 사이에 발생하는 폭력은 가족의 은밀한 사생활로 간주돼 국가의 개입이 불가하다는 입장이 고수되고 있는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동시에 가정폭력의 대부분은 보고조차 되지 않는 과소보고의 전형적 실례인바, 추정컨대 약 8분에 1명꼴로 미국 어딘가에서는 남편에 의한 아내 구타가 자행되고 있음을 경험적 데이터를 통해 입증한 바 있다.

 

아내 구타 및 자녀 학대는 물론이요 불거지고 있는 데이트 폭력을 거쳐 노인 학대에 이르기까지 가정폭력의 희생자는 가족 안에서 파워가 없는 약자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가족 내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근절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을 테지만,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일단은 관련법을 정비함으로써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해 보다 엄격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터. 하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우리네 정서를 고려할 때, 손쉬운 문제 해결 수단으로 어느 정도의 폭력을 용인해온 사회 체질을 송두리째 바꾸지 않는 한, 법의 강력한 제재만으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한마디로 여하한 상황에서도 폭력은 절대 불허하는 ‘폭력 불관용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리라.

 

책 ‘이상한 정상가족’에는 스웨덴에서 자녀의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키기까지 정부와 학부모가 함께 기울인 노력을 생생하면서도 감동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처음 자녀의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자 했을 때 학부모 반응은 부정 일변도였고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사랑의 매’를 들지 않고 어떻게 자녀를 키울 수 있겠느냐는 부모의 항변을 향해, 스웨덴 정부는 자녀를 훈육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음을 소개하고, 체벌은 그중 가장 손쉬운 방법이긴 하나 실상 효과는 미미하고 미약함을 다양한 실험과 객관적 데이터를 동원해 설득함으로써, 마침내 대다수 국민의 동의를 얻어 자녀 체벌 금지법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가벼운 체벌도 넓은 의미의 폭력임이 분명하다는 데 동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한 결과, 자녀 학대는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눈에 띄게 폭력이 감소하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스웨덴의 경험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딸이 아빠의 ‘사형’을 청원하기까지 얼마나 극심한 폭력을 헤쳐 왔는지, 지금도 얼마나 큰 두려움과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지 우리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폭력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 학습을 통해 대물림되기도 하고 폭력에 대한 사회 전반의 무감각이 폭력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함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차제에 대상을 불문하고 폭력은 절대 불허하는 성숙한 문화를 우리의 일상 속에 뿌리내릴 수 있길 기원해 본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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