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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 삼성전자 회장 “후배에 진급 밀려 사직 의사 밝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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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21 15:22:42 수정 : 2018-09-21 15: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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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이 2000년대 초반 “후배가 상사로 발령 났을 때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공개했다. 재계에서는 권 회장이 말한 후배가 임형규 SK텔레콤 고문일 것으로 추측했다.

22일 권 회장이 자신의 경험을 담아 발표한 서적 ‘초격차’를 읽어보니 권 회장은 “후배가 먼저 승진했고, 후배에게 업무를 보고해야 하는 편치 않은 처지에 놓이게 됐다”며 “그 당시 회사가 자신을 내보내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권 회장은 학교 후배가 누군지에 대해서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학교 후배라는 점 △당시 삼성 반도체 사업부 근무한 점 △후배를 모신 기간이 8년 동안 이어진 점 등을 소개하며 힌트를 줬다.

임형규 SKT 고문일 가능성이 높다. 권 회장은 1952년생, 임 고문은 1953년생으로 모두 서울대 전기공학과 출신이다. 임 고문은 2000년부터 삼성전자 시스템 LSI사업부 대표이사 역할을 수행했고 삼성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을 거쳐 2008년 삼성전자 신사업팀장(사장)으로 이동했다. 

이 사이 권 회장은 2001년 삼성전자 시스템 LSI개발실장(부사장)이었고 2008년에서야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황창규 KT 회장의 이름도 거론된다. 황 회장 역시 임 고문과 같이 1953년생으로 서울대 전기공학과 출신이다. 황 회장은 2001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으로 승진했고 2009년까지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을 지냈다. 황 회장은 2002년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 총회 기조연설에서 ‘비(比) PC를 중심으로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고 강조했고 황 회장은 삼성의 법칙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딴 ‘황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권 회장은 당시 “삼성 반도체 시스템 LSI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때라 실적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후배가 상사로 임명됐다”며 “후배와의 경쟁에서 져서 기분도 나빠 부하직원들에게 먼저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권 회장은 이들 덕분에 버틸 수 있다며 고마워했다. 권 회장은 “후배들이 ‘평소 개인이 아닌 회사를 위해 일하자고 하더니 정작 본인에게 안 좋은 일이 닥치니 그만두겠다고 하는 거냐’고 항의했다”며 “내가 늘 해온 말을 내가 어기면 나는 정말 별 볼일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분이 나빴지만 함께 실력을 키우고 더 노력하자는 마음으로 이겨냈다”고 말했다.

아이폰이 공개되는 자리에 초청됐던 일화도 소개했다. 당시 권 회장은 아이폰을 보고 충격을 받았으며 깊이 반성했다고 강조했다.

아이폰이 세상에 나오기 전 권 회장은 노키아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관련 사업을 연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큰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 컴퓨터 업체였던 애플이 삼성전자에 모바일 AP에 대해 수차례 문의했다. 권 회장은 당시 담당자에게 몇 차례 애플이 모바일 AP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를 물었지만 말해주지 않았다. 2007년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아이폰을 발표하는 자리에 반도체 공급 업체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권 회장은 아이폰을 보고 ‘꼭 사고 싶은 제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권 회장은 “스마트폰은 통신사업과 연결돼 있어야 하는데 애플은 통신사업과 무관한 업체로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 큰 판단착오였다”며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해 가는데 안일하게 대처한 것은 아닌지 반성했다”고 강조했다.

권 회장은 임원이 된 이후 후배들에게 일보다 여유를 주고 싶어 했다는 노력도 책에 담았다. 권 회장은 “임원이 됐을 때 직장과 가정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선배가 있었다”며 “하지만 자신은 회사가 임원을 시켜준다는 것은 일하는 실력을 늘리라는 것이지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후배들에게 “소소한 일에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생각하는 시간을 더 갖길 바란다”고 충고했다.

권 회장은 오래 일하는 것보다 집중해서 일하고 쉴 때 쉬는 업무를 선호하며, 일주일에 한 두 차례는 일찍 퇴근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 회장은 삼성전자의 초격차가 전략을 위해 ‘애벌레’처럼 변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변신을 멈추면 몸집이 큰 애벌레가 되고 결국 새의 눈에 띄어 가장 먼저 잡혀먹히게 된다는 것이다. 애벌레가 번데기로 변하고 번데기가 나비로 환골탈태하는 과정을 통해 비상하길 희망한다는 메시지다.

권 회장은 “삼성의 초격차 전략이 독보적인 기술로 슈퍼사이클을 스스로 만들어 내겠다는 목표와 방향이라면, 차이를 끊고 끊임없이 변신해야 한다”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후배 경영자들의 성장을 바라며 조용히 물러나겠다”고 덧붙였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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