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단역 및 조연으로 얼굴을 알리다, 2016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대근’역으로 시청자들의 공분을 산 동시에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그 사람’. 그의 이름은 허준석(36)이다.
영화 ‘홈’에서 어설픈 세 아이의 아빠로 변신한 배우 허준석은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하기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배우이자 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
영화 ‘홈’에 출연한 그를 지난 28일 서울 홍대입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홈’은 깨어진 뒤 다른 조각으로 덧붙여진 ‘가족’과 그를 지키고픈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엄마의 사고 후 의지할 데 없어진 준호(이효제)는 아빠가 다른 남동생 성호와 성호의 아빠 원재, 원재의 딸인 지영과 함께 살게 되면서 작은 행복을 느끼지만 언제 헤어질지 몰라 불안하다. “아버지가 다른 형과 친형제나 다름없이 자란 내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묻고 싶었다”는 김종우 감독의 첫 장편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부산독립영화제, 에스토니아 탈린 블랙 나이츠 영화제, 프랑스 투르 아시아 필름 페스티벌 등에 초청됐다.
허준석은 이 영화에서 성호와 지영의 아빠 원재를 연기했다. 두집 살림을 꾸려 모든 불행을 야기한 ‘나쁜 어른’이지만 악역은 아니다. 우유부단하고 어설프며 정 많은 평범한 인물이다.
“원재는 친자식인 성호와 지영이 이름만 부르고 준호를 ‘저기’라고 불러요. 죄책감 때문에 오히려 잘해주지 못하는 거죠. 하지만 동생들을 보살피고, 속 깊은 준호에게 연민을 느끼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요.”
준호의 시각과 감정선이 중심인 이 영화에서 원재는 상처받은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어른이다.
영화 ‘홈’ 아역배우 김하나, 임태풍, 이효제(왼쪽부터). |
허준석은 2009년부터 드라마와 장·단편 영화에 주·조연, 단역을 가리지 않고 출연했다. 연극으로 배우생활을 시작했지만 인지도가 뒷받침돼야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방향을 틀었다. 초반 작품들에서 그는 주로 악역이었다. 수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점점 발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늘 비슷비슷한 역할을 하다 보니 소모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한계를 알게 되면서 혼란스러웠어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이병헌 감독이 ‘기가 막힌 게 있다’며 건네준 단편 시나리오를 읽고 제가 연출하게 됐죠.”
단편 ‘강냉이’로 연출에 재미를 느낀 그는 이후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과 감독까지 한 ‘애드립’을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선보여 호평받기도 했다.
연출을 시작한 뒤 본업인 ‘배우’로서의 커리어도 차츰 변화하고 있다. 올해 초 종영한 드라마 ‘이판사판’에서는 정의로운 변호사로, 지난해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보도국 캡으로 변신해 악역 이미지를 씻었다. 영화 ‘힘내세요 병헌씨’(2013)로 인연을 맺은 이병헌 감독의 영화에 늘 등장하면서 짧지만 임팩트 있는 웃음을 담당한다. 현재 촬영이 한창인 류승룡, 이하늬 주연의 ‘극한직업’에서는 모자란 악당 정 실장으로 분한다.
실제로도 허준석은 유머러스하다. 위트가 있고 웃음엔 장난기가 묻어난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는 “함께 작업한 감독님이 다시 찾아줄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한다.
“혼란에서 빠져나와 연기를 즐기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이제 시작이죠. 지금 이대로도 너무 행복해서 목표 같은 건 정해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마음 맞는 사람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함께할 팀을 꾸리고 싶어요. 마동석 형님처럼요. 정말 멋질 것 같지 않나요?”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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