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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의 한국은 지금] 한국의 '등대' IT노동자.."또 다른 별칭 하청노동자"

입력 : 2018-04-21 13:00:00 수정 : 2018-04-21 13: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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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IT강국이다.
하지만 IT강국이라는 명예 뒤에는 철야 등 장시간근무에 시달리는 IT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업계에 만연한 하도급 관행과 장시간 근로도 문제지만 업종의 특성상 장시간 근로를 할 수밖에 없는 근무환경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타 업종 종사들이 정부의 근로자 휴가비 지원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일과 생활의 균형이 이뤄질 거로 기대를 모으지만 이들은 “잠이나 더 잤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IT관련 종사자들은 업계에 만연한 하도급 관행과 장시간 근로도 문제지만 업종의 특성상 장시간 근로를 할 수밖에 없는 근무환경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본 취업을 준비한다는 3년 차 개발자는 "같은 일 하며 하청노동자 취급 당하기 싫다”며 "해외 취업을 꿈꾼다"고 말했다.
■ 주 52시간 근무 “우린 해당 없어”
IT업계 종사자들은 스스로 등대지기라고 말한다.
이 말은 업계에 만연한 장시간 근로를 빗댄 말로, 이들은 야근이 일상화하여 모두가 퇴근한 늦은 밤에도 회사는 등대처럼 주변을 밝혀 여기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등대지기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이들의 반복되는 야근은 업무의 특성 때문이다.
대형 IT기업을 제외하면 직원 100명 이하의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가 많아 인력확보에 늘 어려움을 겪는 한편 운영, 유지보수, 프로젝트, 사업제안 등 다양하고도 복잡한 일들이 많다.

이에 한 기획자(프로젝트 매니저)가 앞서 언급한 모든 일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으며, 여기에는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 팀 단위로 함께 움직여 구성원 전체가 동시에 야근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또 운영과 관련해서는 발주사의 요구를 만족하고 문제를 처리해야 해서 이들이 정한 일정에 맞춰 움직여야 하고, 예를 들어 밤에 장애가 생기면 처리를 위해 자다가도 이불을 박차고 PC 앞에 앉아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 52시간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며, 늘 부족한 시간 탓에 한 IT개발자는 “꿈에서 잠자는 꿈을 꿨다”고 하소연했다.
IT 종사들을 위한 모자. 사정을 설명하고 목적지에서 깨워달라는 문구를 적었다. 재미로 만든 모자지만 그만큼 힘든 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선릉, 가산디지털단지, 구로디지털단지 등에 IT관련 기업이 많아 관련 모자를 만들었다고 적었다. (사진= SNS 캡처)
■ 하도급 관행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원인”
IT업계에 만연한 하도급 관행도 문제로 지적된다.
IT기업은 발주사와 갑을 계약을 맺어 단기 또는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프로젝트는 사업 초기 일정이 정해지지만 업무 중 발생하는 발주사의 요구와 변경사항이 매번 발생하여 정해진 일정에 추가 업무가 더해진다.

그 결과 반복적인 야근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계약 초기 업무 범위 등을 문서로 만들어 요구범위를 한정하기도 하지만, 영세한 업체가 대부분이라 일거리 수주를 위해 부당한 요구임을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는 하청으로 내려갈수록 심해져 실무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한편 하도급 관행은 과거부터 문제로 지적돼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약칭 하도급법)’이 지난 1월 16일 시행됐지만, 발주사의 입찰 범위에 이들 중소 IT기업에 못 미쳐 일거리를 얻기 위해 중견기업으로부터 재하청받게 돼 기업은 을도 아닌 병이 되고 맨 아래 근로자들은 자연스레 정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아래 단계로 내려갈수록 비용이 줄어 장시간 근로를 하면서도 보수는 표준단가보다 적게 받는 등 악순환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 “뿌리 깊은 관행“
업계서 10년 차 기획자로 일한 A씨는 “가장 큰 문제는 알면서도 반복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기가 나쁘면 일거리가 줄고, 줄어든 일거리에 여러 IT기업이 몰리다 보니 수주를 위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진다“며 ”운영 업무가 뒤따르는 프로젝트의 경우 손해를 감수하고 수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프로젝트를 끝내기 전까지 발주사와 합의를 끌어내고 업무를 관리하고 진행하는 게 기획자 업무지만 갑사와 대등한 관계는 형성될 수 없다. 가끔 그들의 요구하는 부당한 업무를 최소화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고 갑을 관계 의식이 강한 우리 사회는 앞으로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 발주사와의 관계를 위해 조용히 있을 뿐이다”라고 의견을 덧붙였다.

반면 일본 취업을 준비한다는 3년 차 개발자는 “대학 졸업식 날 선배들이 ‘이제 고생문이 열렸다. 미리 잠을 자둬라‘라고 말해서 일 못 하는 이들의 변명으로 생각했는데, 이 생각이 매우 어리석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며 “한국은 IT강국이지만 대우는 최하위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대우가 다르다. 같은 일 하며 하청노동자 취급을 평생 당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한 커뮤니티에 앞선 A씨의 주장처럼 갑을관계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례가 전해졌다.
내용을 보면 주 52시간 근무시행 후 대기업인 KT임직원들은 오후 5시쯤 업무를 종료하지만 자회사와 협력사에는 휴일 근무를 늘리고 평일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글쓴이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입을 굳게 닫았다. 업무 등 불이익을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재된 글. 글에는 대기업인 KT임직원들은 오후 5시쯤 업무를 종료하지만 자회사와 협력사에는 휴일 근무를 늘리고 평일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적혀있다. (사진=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이번 취재는 IT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일부에서 장시간 근로 문제와 하도급 문제 그리고 갑을관계에서 오는 부당한 대우 등이 발생하고 있다.
이 모든 문제를 하루아침에 모두 개선하는 힘들겠지만 조금 바꿔나갈 필요는 분명 있어 보인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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