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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원더풀 체코·슬로바키아] 구름 뚫고 오르니 또 다른 하늘이…‘레저의 천국’ 타트란스카 롬니차

입력 : 2018-04-05 10:00:00 수정 : 2018-04-04 20: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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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4m 롬니츠키봉 정상까지 올라 가는 케이블카 / 하이 타트라의 절경, 운 좋아야 볼까말까 한다더니… / 변덕스러운 산 위 날씨에 발 아래 온통 구름… 구름… / 스키·트레킹·행글라이딩… 레저 즐기며 아쉬움 달래
슬로바키아어로 ‘호수’를 뜻하는 ‘플레소’는 빙하가 녹아 생긴 호수로 하이 타트라 산맥 아래 있다.
깊은 밤, 치유의 공기가 몸속 구석구석 스며든 듯 아침을 맞이하는 몸이 가볍다. 가벼운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여니 하이 타트라의 높은 산봉우리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방안을 가득 채운다. 깊은 심호흡으로 맑고 차가운 공기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 채운다. 해는 이미 머리 위로 높게 떠올라 환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다.

하이 타트라는 각종 휴양시설을 갖춘 세 개의 휴양도시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져 있다. 모든 휴양지에는 산을 오르는 케이블카와 체어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다. 머무는 숙소에서 5㎞ 떨어진 가장 고풍스럽고 조용한 마을, 타트란스카 롬니차에는 타트라 산맥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케이블카가 높이 2634m의 롬니츠키봉 정상까지 연결되어 있다. 케이블카는 일정이나 체력 때문에 정상까지 오르기 힘든 사람들을 한 번에 실어 나른다. 해발 1751m에 만년설이 만들어낸 산정호수, 스칼나테 플레소에는 케이블카 환승역도 설치되어 있다. 슬로바키아어로 ‘호수’를 뜻하는 ‘플레소’는 빙하가 녹아 생긴 호수로 하이 타트라 산맥 아래 있다. 이곳에서 환승해 만년설이 쌓여 장엄한 하이 타트라 산맥을 마주하고 정상에 오르면 된다. 산에 오르는 일은 쉽지만 정작 어려운 것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하이 타트라의 장관을 만나는 일이다. 높이 오를수록 날씨가 변화무쌍한 데다 구름으로 뒤덮여 있어 운이 좋아야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고풍스럽고 조용한 마을 슬로바키아의 타트란스카 롬니차에선 높이 2634m의 롬니츠키봉 정상까지 연결된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운이 좋아 타트라의 장엄한 자연과 마주하게 되기를 기원하며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타트란스카 롬니차로 이동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한적한 마을길을 따라 케이블카 승강장까지 걷는다. 동유럽의 알프스, 하얀 만년설을 뒤집어쓴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주위를 감싸고 청량한 기운을 북돋아 준다. 길 한편에는 스키를 신은 사람 조형물이 나무에 걸터앉아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겨울의 스키를 비롯해 하이 타트라 지역은 레저활동의 천국이다. 트레킹, 스키, 온천, 동굴탐사는 물론 행글라이딩과 패러글라이딩 등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법으로 하이 타트라의 자연을 즐긴다. 슬로바키아인들에게는 이곳에서 레저를 즐기는 것이 가장 인기 있는 여가활동이라고 한다.

주변의 경치에 빠져 승강장에 조금 늦게 도착했더니 예약 시간의 케이블카가 떠났다고 한다. 케이블카는 1구간이 스칼나테 플레소까지 운행하고, 2구간은 플레소에서 롬니츠키봉 정상까지 운행된다. 다행히 사람들이 많지 않은 데다 뒤에 있던 여행객이 자신은 스칼나테 플레소에서 쉬다가 다음 케이블카로 이동해도 괜찮다며 양보해 준 덕에 스칼나테 플레소에서 바로 환승해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관람객이 많을 때는 두 구간의 이용시간을 사전에 예매하고 제 시간에 도착해야 예정대로 여행을 마칠 수 있다. 스칼나테 플레소에서 예약한 케이블카를 놓치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울 수 있다.

케이블카는 바람에 흔들리며 산을 향해 초록의 대지 위를 나는 듯이 나아간다. 파란 하늘과 초록 대지가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하는 동안 케이블카는 어느새 스칼나테 플레소에 도착했다. 호수는 내려올 때 감상하기로 하고 서둘러 케이블카를 갈아타고 정상을 향했다. 케이블카의 경사가 급격히 가팔라지더니 새하얀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멀어져 가던 푸른 호수도 하얀 구름으로 시야에서 사라진다. 밑으로는 푸른 대지가 설원으로 변해간다. 정상에 오르는 동안 간간이 맑은 하늘을 만날 수 있었지만 정상에 도착해 보니 하이 타트라의 절경이 온통 구름으로 가려져 있다.

케이블카 승강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만나는 스키를 신은 사람 조형물.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정상에서 50분간 경치를 감상하고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온 일행들과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하지만 그 시간 안에 구름이 걷힐 기미는 없다. 구름을 헤집고 2634m라고 적힌 이정표에서 사진만을 찍은 채 주위를 둘러본다. 몇 발자국 떼어 산책을 하고자 했으나 으스스한 날씨와 하얀 구름이 시 야를 덮는다. 산 위의 날씨는 가늠하기 어렵다지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싶다. 예약된 시간을 양보하고 뒤늦게 오르는 사람들이라도 맑게 갠 하이 타트라의 절경을 감상하길 바라며 카페에 앉아 남은 시간을 기다렸다. 주위 벽에는 정상에서 찍은 풍경 사진들이 걸려 있다. 사진만으로 하이 타트라의 절경을 상상하고 있는데 또 다른 문 앞에 ‘태양 대사관(Sun-Embassy)’이라는 재밌는 이름의 안내판과 깃발들이 보인다. 마침 옆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분들의 차림새가 여느 관광객 같지 않아 이곳에서 일하느냐 여쭸더니 이곳이 천문대라고 설명해준다.

정상까지 올라 발아래 구름만 본 아쉬움 탓인지 용기 내어 천문대 구경을 시켜 달라 부탁하니 흔쾌히 받아줬다. 발아래 놓여 있는 굵은 전깃줄 케이블들을 조심하라는 부탁을 받으며 난간 같은 계단을 오르니 커다란 천체 망원경이 있다. 돔은 닫혀 있어 망원경을 통해 우주의 아름다움을 직접 볼 수 없었지만 천문대에서 관측하고 있는 하늘과 별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높이 2634m의 롬니츠키봉 정상 이정표. 정상에 오르는 동안 간간이 맑은 하늘을 만날 수 있었지만 정상에 도착해 보니 하이 타트라의 절경이 온통 구름으로 가려져 있다.

구름에 가려 하이 타트라의 절경을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태양 대사관이라는 재밌는 이름의 천문대를 구경할 수 있어서 뜻 깊은 시간이었다. 산 정상에는 천문학자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면서 천문대를 구경시켜주고 친절한 설명을 해준 것에 감사함을 전했다. 헤어지면서, 태양 대사관에 걸맞게 대사님이라고 해야 할지, 박사님이라 해야 할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니 쑥스럽게 웃는다.

케이블카는 다시 구름을 뚫고 초록의 대지 위로 내려왔다. 스칼나테 플레소에 도착하니 많은 하늘이 펼쳐진다. 정상에서는 구름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던 야속한 경치였지만 맑은 하늘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구름을 이고선 산봉우리들이 신비롭게 보였다. 다음 기회에는 아름다운 자태를 오롯이 보게 되기를 기대하고 아쉬운 마음을 거울같이 맑은 호수로 달랬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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