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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의인문상식] 고백 vs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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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16 21:38:43 수정 : 2018-03-16 21: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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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들, 죄 짓고도 혐의 입증 요구
고백은 진실 밝히는 대안 될 것
근대는 인류 사회의 획을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인간이 신을 대신하여 세상의 주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근대를 기준으로 인간이 자신의 잘못에 대처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다. 고백과 입증도 근대를 기준으로 중요한 차이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사회는 왜 고백이 중요했을까. 고백은 마음속에 숨긴 일이나 생각한 바를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만약 내가 잘못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근대인이라면 완전 범죄를 꿈꾸거나 처벌을 최소로 받기 위해 잘못을 감추려고 시도할 수 있다. 반면 고대인은 신이 내가 한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상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에 속이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빠르고 느린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 사실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고대인도 감추고 싶은 욕망을 품을 수도 있지만 고백의 사회문화를 받아들였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이러한 고백의 문화는 종교 사상의 분야에 다양한 자취를 남기고 있다. 예컨대 고해성사는 신도가 목회자에게 죄를 숨김없이 밝혀 용서를 구하는 종교의례이다. 사람은 불완전하므로 잘못과 죄를 범할 가능성이 많다. 용서를 받지 못하고 평생 잘못과 죄를 쌓아만 간다면 한 사람의 삶은 미래를 열어가면서 과거에 지은 잘못의 무게로 인해 자신을 꿋꿋하게 버티기가 쉽지 않다. 고해성사가 바로 이러한 인간의 고뇌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문화는 유일신의 문화가 아니므로 신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드러내는 삶의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그렇다고 동아시아의 고대인이 털끝만큼의 잘못과 죄를 범하지 않은 순백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없다. 잘못과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대학’에서는 신독(愼獨)과 성의(誠意)를 강조했다. 사람이 공개된 시공간에 있을 때 타자를 의식하므로 비행을 저지르기가 쉽지 않다. 반면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없으면 평소에 못하던 언행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낼 수가 있다. 신독은 바로 이러한 측면에 주목해 사람이 혼자 있을 때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는 삶의 기술을 터득하라고 요구한다. 성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욕망이 과연 진실한지 아닌지 끊임없이 되물어보고 진실하지 않으면 자신을 통제하라고 요구한다. 이처럼 동아시아인은 신이 아니라 늘 자신을 타인처럼 마주하고 고백하는 문화전통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일기(日記)는 고대의 고백 전통이 현대 문화의 층위에서 남아 있는 습관이다. 그날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서술해 사람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갖는 것이다. 거울이 자신의 외모를 비춘다면 일기는 자신의 내면을 비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은 일정과 인상을 중심으로 다이어리를 쓰지 일기를 잘 쓰지 않는다. 근대인은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 수 있는 증거를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진실의 일기보다 일정의 다이어리를 쓴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사회가 등장하면서 사람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게 경쟁할 수가 있다. 이로 인해 삶은 철저하게 경쟁에 유리한 방식으로 재구성됐다. 경쟁 과정에서 잘못과 죄를 지을 수 있지만 그것이 들통나면 결코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따라서 근대인은 자신의 잘못이 명백하게 밝혀지기 전에 먼저 고백을 하지 않고 의혹을 제기한 상대에게 입증을 하라고 요구한다. 첨단 과학수사의 기법이 개발되면서 증거를 찾는 능력이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진실을 아는 사람이 적거나 증거가 빈약한 경우가 많다.

대중의 사랑을 받던 문화예술계 인사나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정치인 등이 불미스러운 일로 검찰의 조사와 법원의 판결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들은 참담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만 자신의 혐의와 의혹에 대해 입증해 보라고 요구하고 있다. 고백은 여전히 사회의 피로를 줄이면서 진실을 밝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들에게 고백을 바라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용서를 기대한다면 현실을 잘 모르는 순진한 발상일까.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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