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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익숙한 풍경도 종이에 옮겨 그리다보면… 바람도 햇살도 화폭서 춤춘다

입력 : 2018-03-10 20:00:00 수정 : 2018-03-10 10: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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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풍경 # 그림으로 담는 풍경의 조각들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하고 나서 설계를 맡고 집 짓는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기어 다니던 아기가 첫 걸음을 떼어놓는 것처럼 무척 어려운 과정을 거친다.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서교동에 빈방을 하나 얻어서 무작정 개업을 했다. 팩시밀리와 전화기, 탁자 두어 개 그리고 의자 몇 개를 놓고 사업자등록까지 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아, 이곳이 설계사무실이라는 확신이 우선 나부터 들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서 제도판을 앞에 두고 ‘자~ 이제부터 뭘 좀 해야지’ 생각했으나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길거리로 나가서 홍보지를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뭔가를 하긴 해야 할 텐데 뭘 해야 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사무실을 개업하고 나서, 무턱대고 동네 집으로 들어가서 “내가 당신의 집을 제대로 설계해주겠노라” 꼬드겼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정도의 넉살도 배짱도 없어서 하염없이 일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오르거나 전화선을 타고 날아 들어오기만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러다 그러다 이렇게 멍하니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림을 그렸다. 매일 그렸다. 주로 내가 답사 다녔던 전통건축과 그 언저리의 동네들을 그렸다. 사놓은 지 10년이 훨씬 넘어 강직이 되어가고 있던 국산 수채화 물감과 15호, 20호 수채화 붓과 멍이 든 것처럼 보라색이 침착된 팔레트 그리고 이미 누렇게 변색된 수채화 스케치북을 앞에 놓고 그림을 그렸다.

사무실이 남향이라 햇살이 아주 잘 드는 창문 앞에서 포근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노라면 가끔 들르는 사람들이 내게 물어봤다. “아니 그걸 왜 그리고 앉아있어?” 그럴 때 딱히 내가 그들에게 해 줄 말은 없었다. 사람들은 ‘얼마나 일이 없으면…’ 하는 조금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일이 없기도 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단순히 풍경을 재현한다는 의미뿐만은 아니었다. 뭔가 땅에 대한 공부이며, 집을 지을 우리나라 땅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사진을 한참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 풍경들은 내가 찍은 것이고 당연히 내가 아는 풍경임에도, 그림을 그리느라 계속해서 바라보고 종이에 옮기다보면 사진만으로는 미처 보지 못했던 어떤 풍경의 조각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나무의 상세한 촉감, 무성한 그늘, 그늘을 파고드는 바람들, 햇볕 아래 심심해서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뒹굴거리는 동네 강아지…. 내가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사진만 찍었던 동네가 새로운 모습으로 내게 들어온다.

그러던 무렵 드디어 내게 일이 하나 들어왔다. 충주와 제천 사이에 집을 하나 짓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사실 그는 원래 알던 사람도 아니고 애초에 건축설계를 하려던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집의 공사를 맡을 그의 고등학교 동창이 도면이 있어야 집을 지을 수 있으니, 설계사무실에 가서 도면을 그려오라고 해서 여러 다리를 건너서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그렇게 전화선을 타고 일은 날아 들어왔고, 나는 드디어 오랜 숙성을 거쳐 전국의 많은 동네를 그린 다음에 첫발을 떼기 시작했다.

동네 풍경.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단순히 풍경을 재현한다는 의미뿐만은 아니라 일종의 땅에 대한 공부이자 땅과 나누는 대화이다.


# 한적한 시골 마을의 담배창고를 그리며

제천에서 건축주를 만나 설계를 계약하는 날은 마침 여름휴가 막바지 무렵이었다. 영동고속도로를 통해 가는데, 무척 막히는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 사이에 끼어 둥실둥실 떠서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데도 별로 짜증이 나지 않았다.

집을 세울 땅에 가서, 마치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 탐정처럼 동네를 샅샅이 뒤지며 돌아다녔다.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고 10년 가뭄에 찾아온 단비처럼 찾아온 반가운 일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을에는 낡은 집들과 외양간과 중간중간 작은 논과 밭이 있었고, 뒤로 나지막한 언덕으로 과수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모두 일을 하러 나갔는지 여름 끝자락의 끈끈한 날씨 때문인지 사람이라곤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평일 낮에 국립박물관에 가서 아무도 없고 넓고 높은 내부를 뚜벅뚜벅 걸어 다니며 전시된 유물들과 눈을 맞추듯, 텅 빈 동네의 풍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런저런 구성요소들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이윽고 아주 특이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호리호리한 2층 높이의 흙집이었다. 더위에 지친 듯 축 처져서 바닥에 납작 붙어있는 동네 집들과 달리, 키가 껑충한 2개 층의 통층으로 구성된 흙집은 훤칠한 미남처럼 보기 좋았다.

나의 주관적인 판단으로는 동네에서 제일 예쁜 건물이었는데, 용도는 담배창고였다. 사실 창고라기보다는 건조장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어서 허드레 물건 쌓아놓는 곳이 된 채 적당히 놀고 있는 건물이었다. 나는 그 흙집이 무척 맘에 들었고, 나지막한 동네의 스카이라인에 기분 좋은 파격으로 보였다. 그곳에 갈 때마다 마치 아는 이웃에게 인사하듯 그 앞에서 한참 들여다보았고, 심지어 사무실에 돌아와 설계를 할 때, 상관도 없는 그 건물을 그려보기도 했다. 여유가 생기면 저 건물을 사서 고쳐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머릿속으로 대체적인 설계를 해보기도 했다.

많은 조사를 하고 한참 계획을 하여 지을 집의 구성과 모양이 결정되었다. 아주 조용하고 변화가 없던 동네에 짓는 터라, 마치 예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집처럼 보이도록 최대한 소박한 형태로 집을 설계했고 집을 지었다. 그리고 새로 짓는 집의 높이를 내가 좋아하는 담배창고의 높이와 적당히 맞추고 박공의 형태도 비슷하게 만들었다. 동네 초입에 들어서면 오래되고 새로운 두 개의 삐쭉한 박공이 한 쌍으로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그 마을의 풍경 속으로 들어갈 집을 계획하면서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에 집을 짓기 시작해서 가을 무렵에 완공했다. 나름대로는 동네에서 튀지 않는 소박한 집을 짓고 싶었으나, 그래도 새 집은 새 집인지라 아무래도 조금은 생경한 것이 눈에 튀기는 했다. 조용하던 동네에 집을 새로 짓자 그런 것이 자극이 되었는지, 군데군데 그 동네에 원래 있던 집들이 헐리고 새 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몇 년 후 그 동네에 가게 되었는데, 내가 좋아하던 그 담배창고는 허물어지고 그 자리는 너른 마당으로 바뀌었다. 왠지 우리가 집을 짓는 바람에 그 좋은 건물이 사라진 것 같다는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마을이 만들어지고 균형이 잡히고 편안한 풍경이 되기까지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 풍경은 몇 그루의 멋진 나무나 몇 채의 비싼 건물이나 몇 군데의 조경 시설물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건축이 참 어려운 대목이 이 지점인데, 바로 시간이라는 요소가 개입되어야 완성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많은 시간과 많은 이야기가 바닥에 깔려야 그 동네만의 풍경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네덜란드 스헤인덜의 ‘글래스 팜’은 MVRDV 멤버 비니 마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완전히 파괴된 자신의 고향에 전통 농가의 형상을 디지털 세라믹 프린팅으로 재현하여 건물을 세운 것이다.
유리 외관으로 완전히 덮인 1600㎡규모의 건물은 주로 레스토랑, 상점 및 웰빙 센터와 같은 일련의 공공 편의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 농가의 풍경을 재현한 MVRDV의 글래스 팜(glass farm)

우리가 마을 풍경의 기억을 종이에 남겼다면, 전통 농가의 형상을 디지털 세라믹 프린팅으로 재현하여 건물을 세운 건축가도 있다. 네덜란드 노르트브라반트주에 위치한 스헤인덜(Schijndel)이라는 마을에 지어진 글래스 팜(Glass Farm)은 MVRDV 멤버 비니 마스(Winy Mass)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완전히 파괴된 자신의 고향인 스헤인덜 광장에 계획한 것이다. 서울역 고가도로에 자연을 입힌 ‘서울로 7017’의 설계자인 네덜란드 건축가 MVRDV는 실용적이면서도 참신하고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현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MVRDV는 대표 건축가인 비니 마스, 야코프 판레이스(Jacob Van Rijs), 나탈리 드프리스(Nathalie de Vries) 세 사람 이름의 머리글자에서 따왔다. 스헤인덜의 시장 광장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큰 피해를 입은 이후 수많은 증축 및 수리가 이루 어졌다. 비니 마스는 1980년부터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공동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 계속해서 편지를 써서 보냈고, 무려 7번째 제안 끝에 2000년 시의회는 교회, 시청, 메인 스트리트 사이의 광장에 들어설 새로운 구조물에 대한 그의 아이디어를 채택했다.

유리 외관으로 완전히 덮인 1600㎡ 규모의 건물은 주로 레스토랑, 상점 및 웰빙 센터와 같은 일련의 공공 편의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초기 계획안에는 극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건물의 외피는 전통적인 지역 농장의 형태처럼 보이는데, 진짜 벽돌을 쌓은 것이 아니라 사진을 디지털 프린팅하여 부착한 것이다.

특히 하나의 특정한 건물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지역 농장을 측정하고 분석한 데이터로부터 평균을 산출했다고 하는데, 평소 데이터를 중시하고 건축에 반영하는 건축가의 태도가 반영된 결과다. MVRDV와의 협력 하에 프랑크 판데르 살름(Frank van der Salm)이라는 아티스트가 남아있는 모든 전통 농장을 촬영했고, 그것을 통해 ‘전형적인 농장’의 이미지가 구성되었다.

높이 14m의 글래스 팜은 실제 농장보다 1.6 배 더 크기 때문에 예전보다 성장한 마을을 상징하기도 하고, 모든 것이 실제보터 커 보이는 아이들의 시선을 경험하게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인쇄된 이미지는 이 ‘증강된 역사’를 따르며, 예를 들자면 4m 높이로 겹쳐진 농장 문이 있다. 유리에 반투명한 인쇄물이 설치된 외관은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같은 효과가 나타나고, 시간대에 따라, 빛에 따라 변화하는 기념비가 된다. 여기에 거리를 지나다니는 이들의 모습이 겹치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묘한 광경이 펼쳐진다.

원래 있던 것을 살려내는 것, 혹은 못 쓰는 물건을 다시 살려내는 것을 재생이라고 한다. 도시 재생에 대해 무수한 청사진이 만들어지고 있다. 새로운 정부의 국정 100대 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고, ‘도시재생 뉴딜 정책’이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이다.

그런데 그런 재생을 하고자 한다면 원래의 모양이나 원래의 정서, 원래의 온도 등을 상세히 관찰하고 오래된 시간과 오래된 기억이 훼손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건드려야 한다. 그런데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많은 개발론자들이 무늬만 재생에 참여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그건 기우가 아니라 여태껏 우리의 도시와 건축 정책이 그들 ‘토건세력’, ‘개발지상주의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재생의 이름으로 벌어진 사업이라는 것이 멋진 구호와 멋진 청사진 뒤로는 남겨두어야 할 골목을 쓸어내고 집들을 뭉개놓고 그 위에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데 급급했던 것이 사실이다.

글래스 팜이 지어지기까지 건축가뿐만 아니라 시민들, 공공기관, 서포터들은 열띤 논쟁을 벌이며 여론조사 등을 생생하게 지역 언론에 소개하고, 건물 완공과 동시에 지역의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출판도 하는 등, 시민들이 함께 건축과정에 참여했다. 이런 것이 남겨야 할 풍경에 대한 창조적이면서도 진정성 있는 접근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아닐까 싶다.

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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