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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원더풀 체코·슬로바키아] 화려하지 않지만 고즈넉하고 평온… 낭만 가득한 중세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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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08 10:00:00 수정 : 2018-03-07 20: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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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에서 슬로바키아 트렌친으로
체코 프라하의 가이드 엘리스와 저녁을 먹고 플라멩코 공연을 보기 위해 ABC극장으로 향했다. 봄의 축제 기간에는 국립극장 이외에도 여러 곳의 극장에서 다양한 공연이 진행된다. 체코의 민족적 정서가 강한 음악에 빠져 있다가 색다른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기대에 이번 공연 관람을 예약했다.

플라멩코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전통 민요와 무용, 기타 반주가 어우러진 민족예술로 잘 알려져 있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은 피레네산맥을 경계로 유럽과 분리되어 있다. 그로 인해 아랍의 오랜 지배를 받는 등 여러 민족의 문화가 서로 영향을 미치며 융합되어 있다. 플라멩코의 유래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아랍의 음악과 집시와 유럽 문화들에 영향을 받아 독특한 노래와 춤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특히 복잡한 멜로디의 노래는 아랍의 영향을 받은 듯하고 격한 율동감은 집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차량을 인수하기 위해 방문한 체코 프라하 시내 렌터카 사무실.
프라하의 봄의 축제에서 감상하게 된 플라멩코 공연은 스페인의 플라멩코 가수 로시오 마르케스의 공연이다. 그녀는 1985년 스페인 우엘바 태생으로, 우엘바는 캐스터네츠를 손에 든 한 쌍의 남녀가 기타반주와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대표적인 플라멩코 형식인 판당고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9살 때부터 플라멩코를 시작했다는 그녀는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공연하면서 유명한 플라멩코 가수의 한 명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젊고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그녀의 노래는 슬픈 선율을 타고 낮게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가슴 강하게 파고드는 울부짖는 듯한 그녀의 노래는 색소폰과 피아노 등의 재즈풍 연주와 어우러져 가슴 깊이 전달되는 듯하다.

체코 프라하에서 슬로바키아 트렌친으로 가는 길 주변의 넓은 평야는 초록빛과 노란빛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한가운데 풍력 발전기 수십 대가 고속도로를 따라 우뚝 솟아 있다.
스페인 민요의 기본 정서라고 하는 칸테혼도(깊은 노래)에 기반을 두면서도 다양한 음악과의 접목을 통해 플라멩코의 영역을 넓혀가는 가수답게 그녀의 음악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멜로디와 리듬으로 깊은 울림을 남긴다. 나비가 자유롭게 움직이듯 자유로운 그녀의 노래는 관객석을 날아다니며, 이곳이 체코 프라하가 아닌 스페인의 작은 공연장인 듯 착각하게 한다. 가만히 눈을 감으니 몽환적인 플라멩코 음악과 함께 스페인의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온다. 그녀의 애수 어린 목소리는 공연이 끝나고도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몸 구석구석의 원초적인 감각을 일깨우며 슬프고도 애잔한 밤이 깊어간다. 프라하에서 맞이하는 스페인의 밤이다.

슬로바키아 트렌친은 슬로바키아 서쪽 하르강변에 있으며 로마시대에 건설된 도시다.
다음날, 지난밤의 슬프고 애잔한 멜로디를 털어내고 다시 프라하의 아침을 맞이한다. 오늘은 체코 제2의 도시 브르노를 거쳐 슬로바키아로 향할 계획이다. 프라하에서 슬로바키아의 ‘타트라 국립공원’까지 360㎞를 자동차로 운전해야 하는 긴 여정이다. 타트라 국립공원은 알프스산맥의 동쪽 끝에 있으며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에 걸쳐 있다. 두 나라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지역이다. 긴 시간을 운전하는 중간에 체코 제2도시 브르노에 들러 잠시 쉰 다음, 슬로바키아의 트렌친에 들러 언덕 위에 위치한 트렌친성을 볼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침식사 후 차량을 인수하기 위해 렌터카 사무실을 방문하면서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 준비된 차량이 예약한 오토매틱이 아니라 수동 차량인 것이다. 예전에 수동 차량을 운전해 보았지만 지금은 워낙 오토 차량에 익숙한 상황이어서 수동 차량 운전에 자신이 없었다. 렌터카 사무실은 오토 차량이 없다며 그냥 인수하라고 한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좌석에 앉아 시동을 걸어보니 시동이 꺼지기 일쑤다. 결국 예약한 대로 오토매틱 차량을 달라고 다시 이야기해보았다. 돌아오는 답변은 시내 사무실에는 차가 없고 공항 사무실에 차량이 있으니 공항까지 다녀오라는 것이다. 유럽은 아직도 오토매틱보다는 수동 차량이 일반화되어 있다.

트렌친성 주위 자그마한 성당. 트렌친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아늑하다.
슬로바키아 트렌친 언덕 위에 위치한 트렌친성.
차량을 예약할 때 다시 한 번 주의시켜주지 못한 것을 탓할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 실랑이를 벌일 수 없어 결국 시내에서 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공항 사무실에는 오토매틱 차량이 있어 인수받고 출발했지만 예정 출발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어지고 말았다. 결국 브르노에 들러 차 한 잔을 마실 여유는 사라지고 말았다. 브르노를 그냥 지나쳐 트렌친으로 향하기로 하고 서둘러 차를 몰고 공항을 나선다.

고속도로가 뻗어 있는 넓은 평야는 초록빛과 노란빛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한가운데 풍력 발전기 수십 대가 고속도로를 따라 평행으로 우뚝 솟아 있다. 파란 하늘과 초록 평야가 어우러진 풍광은 분주했던 아침의 유쾌하지 않은 마음을 날려 준다. 건물 하나 보이지 않은 채, 대자연의 품안에 파고들 듯 한산한 고속도로를 달린다. 

브르노를 지나친 차량은 체코 국경을 통과해 트렌친에 도착했다. 원래 같은 나라여서 그런지 국경을 통과하는 데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트렌친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체코의 국경선과 가까운 트렌친은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와 120㎞ 떨어져 있으며 슬로바키아에서 9번째의 도시라고 한다. 슬로바키아의 서쪽 하르강변에 있으며 로마시대에 건설된 도시다.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트렌친성이 유명하며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시내 경관이 일품이다.

두어 시간 운전하여 도착한 트렌친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아늑하다. 거리에 사람들이 붐비지 않고 한산했지만, 시내 광장의 식당가에는 제법 좌석이 꽉 차있다. 정신없이 차량을 인수하고 출발한 탓에 허기진 것을 느끼지 못하다 차에서 내리자 배고픔이 밀려온다. 시내를 둘러보기 전, 미에로베 광장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먼저 했다. 차려진 음식은 체코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음식만으로는 체코인지 슬로바키아인지 구분이 어렵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받아들고서 슬로바키아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통용 화폐가 다르다. 체코는 코루나를 쓰는 반면(물론 유로화도 통용은 가능하다), 슬로바키아는 유로화를 사용한다.

트렌친성 조망루에서 바라본 트렌친은 작은 중세의 도시처럼 아름답고 이채로운 분위기를 선사한다. 슬로바키아 트렌친은 슬로바키아의 서쪽 하르강변에 있으며 로마시대에 건설된 도시다.
트렌친성 내부 모습.
트렌친성은 화려하지 않지만 성벽을 따라 산책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식사를 마치고 둘러본 자그마한 미에로베 광장은 조용하다. 수세기에 걸쳐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는 광장은 중세의 분위기를 간직한 건물에 둘러싸여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광장을 산책하고 트렌친성으로 이동했다. 도로인 듯 산길인 듯 좁은 비포장 길을 따라 성에 도착해 자그마한 성당 근처에 주차하고 매표소를 찾았다. 높다란 성벽이 가까이 보이는데 입구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마침 성당 앞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영어가 낯설어 수줍어하며 손짓으로 설명한다. 매표소를 지나 도착한 트렌친성은 화려하지 않지만 성벽을 따라 산책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조망루에서 바라본 트렌친은 작은 중세의 도시처럼 아름답고 이채로운 분위기를 선사한다. 트렌친성 위로 한낮의 햇살이 아름답게 부서진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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