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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미녀 선수’와 ‘괴물’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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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05 21:19:22 수정 : 2018-03-05 2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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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게 없었다. 평창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선수들의 외모는 이번에도 여전히 도마에 오른 생선이었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쉽게도 저울질당했다. 일본의 컬링 선수는 박보영을 닮은 귀여운 외모로 인기를 끌고 ‘스키 미녀들의 대결’에 초유의 관심이 쏠렸단다. 곽민정, 이슬비, 조해리 같은 여성 해설위원들에게마저도 ‘3대 미녀 해설위원’과 같은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한 일간지 기자는 평창올림픽 현장 뒷이야기를 담은 기사에서 김아랑 선수에게 ‘예쁘다’고 말해 달라는 대국민 부탁까지 했다. 차라리 농담이나 반어법이길 믿고 싶었지만 참 정직한 그 기사는 “예쁘단 말이 싫진 않죠?” 같은 질문을 선수에게 던지고 모두가 김아랑 선수의 외모를 칭찬하는 데 동참해 달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었다. 세계 최정상의 기량을 뽐내고 당당히 메달을 목에 건 선수마저 ‘예쁨’을 평가당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느껴지지 않았다.

박지원 편집부 기자
여자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가 이번 올림픽에선 좀 다르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사회 전반의 젠더 감수성이 신장됐다곤 해도 여자 선수들은 여전히 ‘예쁘다는 말이 칭찬인 시대’를 벗어날 수 없었다. 뛰어난 신체적 능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겨루는 스포츠 분야에서도 유독 여성 운동선수들에게는 ‘미모’나 소위 말하는 ‘여성성’을 강조하는 별칭들이 붙는다. ‘미녀 피겨 스타’처럼 미모를 강조하는 표현은 말할 것도 없고, ‘요정’이라든가 ‘미소 천사’ 같은 외모와 관련된 여리고 유약한 느낌의 애칭들이 흔히 보인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는 예쁠 필요도 없고 애초에 예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잘하든 못하든 여성 선수들에게 거의 예외 없이 적용되는 외모 평가는 그들을 운동선수나 하나의 인격체로 보기보다 ‘예뻐야만 하는 여자’라는 구시대적 프레임 안에 가두는 악습이다.

운동선수들뿐만이 아니다. 용기를 내 세상 앞에 모습을 드러낸 미투운동 고발자들조차 외모평가를 피해가기 힘들다. 국내 미투운동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핀 서지현 검사와 관련된 기사들에도 “예쁘긴 하네” “성형을 많이 한 것 같다” 등 얼굴을 평가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사건의 본질과는 무관해도 너무 무관한 ‘제3자에 의한 2차 가해’다. 뒤를 잇고 있는 다른 수많은 고발 사건들에서도 이 같은 댓글은 사라지질 않는다. 아무리 여성이 성적으로 핍박받아온 현실에 공감하며 분노해도 여성을 객체로 상정해 외모나 ‘여성성’으로 평가하려는 일부 대중의 습관은 아직도 고쳐질 일이 요원해 보인다.

이틀 뒤면 세계 여성의 날이다.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운동은 태평양 건너 국내에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그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혼자 눈물을 삼켰던 여성들이 세상 앞으로 나오고 있는 지금도, 우리 곁에는 아직도 본인이 괴물인 줄 모르는 ‘괴물’들이 넘쳐난다.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가해를 해야만 괴물인 것은 아니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거나 성적 대상화하는 모든 시각 역시 오래도록 여성을 괴롭혀온 ‘괴물’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의도했건 아니건, 능력이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여성을 외모 평가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 역시 ‘괴물’의 시선일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박지원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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