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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의인문상식] 제사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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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02 23:02:01 수정 : 2018-03-02 23: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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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걸맞은 형식을 고려할 때 / 갈등으로 고통받는 사람 줄여야 명절이 되면 ‘조상’ 모시느라 전국은 홍역을 앓는다. 이는 이번 설에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제사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생겨나고 있다. 이때 논의의 가닥은 전통으로 내려오는 제사를 제대로 지내야 한다는 주장보다 제사를 어떻게 간소화시킬지 아니면 제사를 어떻게 가족의 여가 활동으로 전환시키느냐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결국 제사가 전통으로 전해지는 삶의 형식이기 때문에 변화 없이 그대로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에 강력한 도전이 일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는 제사의 변화에 대해 절대 불가를 고수하고 논의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왜 제사에 대한 변화의 목소리가 나오게 되는지를 살펴보고 시대에 맞는 제사의 형식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가 됐다. 공자도 제사에 한정되지 않고 예(禮) 일반에 대해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야 하는 손익을 말했을 뿐만 아니라 겸손과 대중화의 관점에서 실제로 통용되는 예의 변화에 찬성을 한 적이 있다.

제사의 변화가 제기되는 시대적 원인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를 찾을 수가 있다. 우선, 지난날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조상이 후손의 삶을 거의 결정했다. 후손은 자신이 누리는 삶의 질에 대해 조상의 은덕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에 후손은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고마움의 마음을 제사로 나타내게 됐다. 오늘날 사람은 대부분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적 활동을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 이에 고마워해야 하는 건 조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어, 지난날 가족은 혈연공동체로서 거주지역의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므로 구성원은 가족의 자장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때 제사는 가족의 기원과 존재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의식이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행사였다. 오늘날 사람도 핵가족에 소속돼있지만 혈연과 무관한 타인과 계약 관계를 맺고 사회와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은 가족 행사보다 자신의 직장에서 지켜야 하는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므로 제사 참여가 필수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지난날 농업이 기간산업일 때 구성원은 자연의 주기에 따라 생활하며 가족끼리 시간을 같이 보냈다. 즉 슬퍼도 같이 슬퍼하고, 기뻐도 같이 기뻐하며, 사적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날 산업화와 정보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사람은 자연의 주기보다 각자 자신의 인생 설계와 활동 시간표에 따라 살아간다.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한 사람은 기쁜데 다른 사람은 슬플 수 있다. 이처럼 감정의 공유와 교류가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고 대화를 통해 노력해야 가능하므로 조상에 대한 똑같은 생각이 쉽지 않다.

그리고 지난날 생산력이 낮았던 터라 노동력을 많이 들여서 겨우 생계를 해결할 수 있었다. 휴가는 노동을 할 수 없는 시기 아니면 일하면 잠깐 틈을 내서 쉬는 방식으로 가능했다. 쉬기 좋을 때는 일해야 하고 쉬기 어려울 때 억지라도 쉬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현대인은 계약에 따라 법정 공휴일에만 쉴 수 있으므로 명절에 찾아오는 긴 연휴는 시간의 선물이므로 제사만을 위해 쓸 수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
끝으로, 지난날 사람은 자신이 죽더라도 제사를 지내면 잊히지 않고 후손들의 의식과 기억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사는 영생을 가능하게 하는 집단 기억의 중요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인은 종교 자유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제사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영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꼭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게 됐다.

이제 제사를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지내야 한다는 주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통적인 제사 방식을 고수한다면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 기성 세대와 신세대의 가족 의식, 공동체와 개인 의식의 중요성 등과 관련해서 개인과 사회의 갈등이 늘어나게 된다. 갈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을 줄이는 게 전통문화로서 제사가 현대인과 더 오래 호흡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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